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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12. 2023

영양제, 꼭 먹어야 할까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영양제 (1) 영양제 딜레마

영양소를 식품으로 섭취하려면


<시지프의 신화>의 유명한 첫 문장에서, 알베르 카뮈는 우리에게 진정 중요한 문제는 딱 하나뿐이라고 말했다. 굳이 살아야 하는가 하는 그 질문에 대답할 수 없다면, 인생에 관한 그 어떤 질문도 의미 없다. 너무 거창한 비유일지도 모르지만, 영양제도 마찬가지다. 선결문제부터 해결하자. 영양제를 먹어야 하는가?


당연한 얘기지만 모든 영양소는 식품의 형태로 섭취하는 것이 가장 좋다. 우리 몸이 진화하여 적응한 방식대로 하는 것이니,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가장 작다.


황제내경에도 의식동원이란 말이 있고, 히포크라테스도 음식이 곧 약이라고 말했다. 수천 년을 내려온 각종 요리법은 식자재들 사이의 상보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찬 성질의 돼지고기가 유독 매운 양념과 어울리고, 오이의 냉한 기운을 부추로 보한 오이소박이가 맛있게 느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생존 기계를 쾌적하게 운전하기 위한 유전자의 진화적 장치다. 그러나, 현대인의 식탁에는 이런 탐지 체계를 무력화시키는 각종 중독성 물질이 가득하므로 다 옛날이야기인 것도 사실이다.


사진: Unsplash의Bruna Branco


미량 영양소를 식품으로 섭취하려면


비타민 D3를 알약으로 섭취하는 것보다 좋은 햇볕을 쬐는 것이 낫고, 비타민 C 정제를 먹는 것보다 과일이나 채소를 먹는 것이 나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현대인의 생활 패턴으로는 매일 30분씩 해를 보는 일이 쉽지 않다. 반소매 티셔츠에 반바지를 입고 햇볕을 즐기는 것은 금수저가 아닌 다음에야 주말 또는 꿈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광고에 흔히 나오는 것처럼, 알약 한두 개 분량의 비타민 C를 섭취하려면 레몬이나 사과를 궤짝으로 먹어야 한다.


문제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예컨대 미국 FDA 권유에 따라 하루에 비타민 C를 겨우 100mg 섭취하기로 결정했다고 가정하자. 이걸 사과로 섭취하려면 사과를 2.17kg 먹어야 한다. 이것만으로도 이미 문제가 심각하지만, 사실 이걸로도 100mg의 비타민 C를 못 채운다는 말이 있다. 요즘 사과는 예전의 "진짜" 사과에 비해 모든 영양소가 심각하게 결핍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농약과 비료로 토지를 강탈하는 현대 농법으로 인해, 토질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땅에 미네랄과 영양소가 부족한데, 그걸 흡수해 자라는 식물에 미네랄과 영양소가 충분할 리 없다. 2004년에 발표된 텍사스 대학교 도널드 데이비스(Donald Davis)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1999년에 생산된 사과의 비타민 C 함량은 1950년에 생산된 사과에 비해 38%나 적었다고 한다.


https://pubmed.ncbi.nlm.nih.gov/15637215/


식품을 통한 섭취가 좋다는 주장을 하기 전에, 우리가 유토피아가 아니라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한 번쯤 다시 떠올려 봐야 한다. 자본주의의 마법은 돈으로 모든 것을 환산할 수 있게 한다. 식품 산업도 마찬가지다. 식품 산업의 작동 원리는 다른 모든 산업의 작동 원리와 마찬가지로 이윤이다. 정크 푸드가 범람하는 가장 큰 이유는 다름 아닌 자본주의다.


많은 저자들이 음식 같이 생긴 것 대신 (진짜) 음식을 먹으라고 조언한다. 그냥 지금 냉장고에 있는 식품들을 살펴보라.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것들도 반 이상이 음식 같이 생긴 것들이지, 진짜 음식이 아니다. 정제 곡물, 과당, 설탕, 각종 가공식품들은 우리 몸에 존재하는 비타민 B군과 미네랄을 소진시킨다.


그런데 음식 같이 생긴 물건들만 비타민과 미네랄을 소진시키는 것도 아니다. 진짜 음식들도 비타민과 미네랄을 소진시킨다. 예컨대 견과류와 콩류에 풍부한 피트산은 거의 모든 미네랄과 킬레이트(chelate) 결합을 형성해 소화되기 어려운 튼튼한 덩어리로 만든다.


일부 처방 약도 비타민이나 미네랄을 심각하게 소진시킬 수 있다. 예컨대 고지혈증 치료제 스타틴은 코엔자임(Coenzyme) Q10의 혈중 농도를 드라마틱하게 감소시킨다. 이와 관련된 연구 결과는 너무 확실해서, 

스타틴을 처방하는 의사는 코엔자임 Q10을 함께 처방하는 것이 보통이다. 결핵약인 이소니아지드는 비타민 B6를, 백혈병과 류마티스 관절염 치료제인 메토트렉세이트는 엽산을 소진시킨다. 이 때문에 이들 약을 처방하는 의사는 각각 비타민 B6와 B9을 같이 처방한다.


그런데 이런 사실들은 어떻게 발견되었을까? 당연히 누군가가 문제를 겪고 나서 조사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약의 부작용은 임상 시험 단계에서 반드시 확인해야 하는 사항이지만, 모든 가능성을 전부 조사할 수 없는 만큼, 임상 시험은 완벽할 수 없다. 필수 영양소가 우리 몸에 부족해지는 방법은 우리가 아는 것만도 무지하게 많은데, 우리가 아직 모르는 방법도 아주 많을 것이다.


사진: Unsplash의Avinash Kumar


흡수되어야 돈값을 한다


이번에는 흡수 과정을 따져보자. 2000년에 발표된 코넬 대학교 리우(Liu) 교수팀 연구에 따르면, 사과 100그램 섭취를 통한 항산화 및 항암 효과는 비타민 C 1,500mg를 경구 투여하는 경우의 효과와 대등하다고 한다. 이런 연구의 제목만 읽고, 자연산 비타민 C 5mg가 합성 비타민 C 1,500mg와 대등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의학 논문 제목은 대개 연구 결과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연구팀은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사과의 항산화 효과에서 비타민 C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작으며, 대부분의 항산화 효능은 파이토케미컬에 기인한다.


https://news.cornell.edu/stories/2000/06/apple-phytochemicals-fight-cancer


그렇다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유효성분만 뽑아내 사용할 경우, 예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예상했던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모든 성분을 알아내기도 쉽지 않지만, 그 성분들 사이의 모든 상호작용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자연에 존재하는 비타민 C는 다양한 물질과 함께 존재한다. 반면, 시판되는 비타민 C는 유효 성분만 추출한 것이다. 아스코르브산(ascorbic acid)뿐이다. 천연 식품에는 비타민 C와 길항작용을 하는 다양한 다른 영양소도 포함되어 있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알약으로 먹는 비타민 C는 그냥 아스코르브산 덩어리일 뿐이다. 이 상황에서 같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그냥 밥만 먹인 우리 집 흰둥이가 체계적으로 훈련받고 영양식을 먹어온 투견과 대등하게 싸우기를 기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식품 섭취로 필요한 영양소를 모두 채우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매일 과일 두 박스에 야채 세 박스는 먹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성분만 추출한 영양제를 먹는 것인데, 과연 이게 제대로 흡수되어 몸속에서 제 기능을 할지는 별개의 문제다. 결국, 섭취한 영양소를 인체가 얼마나 활용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인데, 여기에서 생체이용률이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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