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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16. 2023

영양제를 먹어야지, 부형제가 아니라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영양제 (3) 부형제

언제나 먹히는 공포 마케팅


영양제 소비자는 건강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이왕 몸에 좋은 거 찾는 사람들에게, 몸 생각해서 더 좋은 거 먹어라 내지 몸에 나쁜 거 피하라는 구호처럼 쉬운 마케팅도 없다. 그래서 지치지도 않고 또 한 차례 마케팅 폭풍이 몰아친다. 이른바 부형제 논란이다.


영양제에 있어 부형제는 가공식품의 식품첨가물 같은 존재다. 식품첨가물 중에서도 증점제나 유화제와 비슷한 포지션이다. 모양을 만드는 것이 주된 역할이라서 그렇다.


우리는 소시지를 먹고 싶어 소시지를 사는 것이지, 아질산나트륨을 먹고 싶어 소시지를 사지 않는다. 그러나 거의 모든 소시지는 아질산나트륨을 포함하고 있다. 아질산나트륨 없이 소시지를 만들면 세균 오염 가능성도 대폭 높아지고, 무엇보다 때깔이 안 나오기 때문이다.


영양제도 마찬가지다. 필요한 물질만 뭉쳐 판매하면 좋겠지만, 아주 여러 가지 이유로 그게 쉽지 않다. 대량 생산 난이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지든가, 보관 내지 운송에 어려움이 꽃 피든가, 먹기가 쉽지 않아 사람들이 외면하든가, 지금 나열한 문제점이 전부 다 나타나든가 한다.


부형제를 먹고 있었다고? (사진: Unsplash의Jamie Haughton)


부형제 없이 제작, 판매가 가능한 대표적인 영양제가 비타민 C다. 아스코르브산 가루를 작은 봉투에 담기만 하면 된다. 먹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레모나 생각하고 입에 털어 넣었다가는 쓴맛을 보게 된다. 말 그대로 시다 못해 쓰다. 비타민 C 전도사인 이왕재 박사도 가루 형태의 비타민 C는 써서 못 먹겠다고 말한다. 게다가 산성이라 치아에 좋을 리가 없다.


그래서 먹기 좋게 알약 형태로 만든 것이 우리가 흔히 보는 바로 그 비타민 C 알약이다. 쉽게 말해 아스코르브산을 모래로 뭉쳐 놓은 것인데, 결과적으로 시거나 쓰지도 않고 먹기도 편하다. 가루 형태의 아스코르브산을 캡슐에 넣어 놓은 형태도 있다. 그런데 돼지 껍질은 그렇게 막 먹어도 될까? 그리고 그 돼지 껍질, 깨끗하기는 할까? 게다가 가루형 비타민 C에도 포장 편이성을 위해 부형제를 섞기도 한다. 덩어리지지 않고 모래처럼 사르르 캡슐 안으로 예쁘게 쏟아져야 공정이 매끄럽고, 무엇보다 생산 단가가 낮아진다.


돼지 껍질이 싫다면 식물성 원료 캡슐도 가능하다. 그러나 식물성 어쩌고 하는 마케팅은 둘째 문제로 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원료로 어떻게 만들었는지는 따져 봐야 한다. 원료 자체가 문제일 수도 있고, 원료는 괜찮아도 가공 과정에서 안 좋은 일이 얼마든지 일어나는 세계가 우리가 사는 세계다.


사진: Unsplash의Amit Lahav


이산화규소와 스테아린산 마그네슘


부형제로 가장 많이 쓰이는 두 가지 물질은 이산화 규소와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이다. 이산화 규소는 지구상에 아주 많이 존재하는 물질, 모래다. 모래야 뭐, 먹어도 소화되지 않고 언젠가 몸에서 나간다. 그렇다고 해도, 우리가 닭도 아닌데 일 삼아 모래를 먹는 것이 과연 현명한 일인가 하는 의문은 남는다.


부형제 위험 마케팅에서 사용하는 논리는, 이산화 규소가 WHO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 지정 1군 발암물질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IARC에서 말하는 위험은 흡입독성에 관한 것이다. 어떤 물질이 인체에 유입되는 경로는 세 가지가 있다. 경구, 피부, 그리고 흡입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에서 문제가 된 것이 흡입 독성이다. 가습기 살균제에 사용되었던 물질은 경구 투여했을 경우 기껏해야 소화 불량, 설사, 구토 정도의 부작용을 보였을 것이다. 가습기 살균제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던 것은, 해당 성분이 기도를 통해 들어가 폐를 직접 타격했기 때문이다. 


이산화 규소도 마찬가지다. 모래를 흡입하다 보면, 미세한 모래 결정이 폐포에 흡착되어 폐포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수가 있다. 예전에 광부들에게 흔히 나타나던 진폐증이 이런 방식으로 발생하는 병이다. 석탄 가루를 입으로 먹었다면, 그냥 소화 불량에서 끝나고 며칠 뒤 배출되는 걸로 사태가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문제는 그게 호흡기로 들어갔다는 데 있다.


요약하자. 이산화 규소는 자연에 흔히 존재하는 물질인 모래이고, 먹으면 대개 그냥 배출된다. 공포 마케팅에서 사용하는 논리는 IARC의 1군 발암물질 표를 일부러 곡해한 것이므로 그냥 무시하면 된다. 이 글을 쓰면서 조사하다 보니 새로 알게 된 것인데, 모래를 챙겨 먹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피부, 모발, 뼈 건강에 도움이 된다면서 실리카(이산화 규소) 복합 제제가 건강기능식품으로 팔리고 있다.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은 스테아린산과 마그네슘이 결합한 물질이다. 분해되면 스테아린산과 마그네슘이 된다. 스테아린산은 코코넛 같은 식품에 포함되어 있는 지방산의 일종이고, 마그네슘은 많은 사람들이 챙겨 먹는 미네랄이다. 시아노코발라민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다만, 스테아린산 마그네슘이라는 결합물이 인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연구가 매우 부족하다. 다만, 이 물질도 이산화 규소나 소금, MSG 등등과 마찬가지로 반수치사량이 매우 높으므로 이걸 먹고 죽을 가능성은 없다고 봐도 좋다.


사진: Unsplash의Ze Paulo Gasparotto


나쁜 걸 더 나쁜 걸로 대체하는 전략


문제는 이런 부형제보다 더 나쁜 부형제를 쓰는 제품도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어쩌면 그런 더 나쁜 제품이 좋은 제품인 것처럼 마케팅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말토덱스트린을 보자. 말토덱스트린은 가짜 음식을 만드는 데 아주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녹말(전분)의 일종이다. 단당류도 아닌 것이 혈당지수가 97이다. 생산 단가도 너무 싸서, 그 무엇이든 이걸로 대체할 수 있으면 대체하는 게 이득인 물질이다. 자동차나 아파트도 이걸로 만들 수 있다면 이미 오래전에 그렇게 했을 것이다.


생각해 보자. 비타민 C를 모래로도 뭉칠 수 있는데, 녹말로 뭉친다면 더 잘 뭉쳐지지 않을까? 잘은 몰라도 말토덱스트린은 (식품 적합 등급의) 모래보다도 값이 더 쌀 것이다. 결정적인 한 방은, 이걸 부형제로 쓰면 "이산화 규소 무첨가"라는 글씨를 포장지에 대문짝만하게 새길 수 있다는 거다. 영양제보다 가공식품에서 훨씬 더 문제가 되는 것이지만, 무엇이든 무첨가한 제품이라면 일단 의심부터 해야 한다. 그걸 무첨가한 대신 뭔가 더 나쁜 것이 첨가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BPA free라는 문구가 의미하는 것은, "아직 테스트 결과가 없어서 유해성이 유명해지지 않은" BPA 유사 물질을 사용했다는 의미라는 사실을 상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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