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으로 갓생 살기 - 영양제 각론 (2) 비타민 D 섭취
비타민 D의 효능을 나열해 보면, 이건 뭐 원숭이를 대동한 서커스 약장사가 파는 만병통치약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다. 진시황이 제대로 된 방법으로 불로초를 찾았다면 2200년 전에 비타민 D가 발견됐을 수도 있겠다.
가장 잘 연구되고 알려진 비타민 D의 효능은 칼슘 흡수를 돕는 역할이다. 그래서 골다공증에 흔히 처방된다. 뼈 건강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효능은 비타민 D의 가장 마이너한 힘이라고 생각한다. 비타민 D의 능력은 항암, 심혈관 질환 예방, 항바이러스, 인슐린 기능 개선, 혈압 안정화, 자가면역질환 개선 등등 무수히 많다. 아직 연구되지 않은 다른 효과도 분명 더 많이 있을 것이다.
비타민 D의 부작용은 뭐가 있을까? 반대파가 열심히 연구하여 찾아낸 것이 바로 고칼슘혈증이다. 비타민 D는 칼슘 흡수를 높이므로 논리적이기까지 하다. 고칼슘혈증은 별것 아닌 듯 보이는 이름과는 달리 무시무시한 증상이다. 칼슘이 그냥 혈액 내를 떠돌아다니기만 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넘치는 칼슘은 연성조직(soft tissue)에 쌓이는데, 근육이나 지방 조직에 쌓이는 것은 그다지 큰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혈관에 쌓인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장 안 좋은 상황이 바로 관상동맥에 쌓이는 것이다. 관상동맥에 칼슘이 얼마나 쌓였는지 알아보는 점수 체계로 CAC(Coronary Artery Calcium) 점수라는 게 있을 정도다. <저탄고지 바이블>을 쓴 아이버 커민스와 제프리 거버는 심혈관계 건강 관리를 위해 이 점수가 제일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관상동맥에 CT를 주기적으로 쏴주라는 (나로서는 본말이 전도된 것으로 밖에는 안 보이는) 조언을 할 정도다.
생각해 보자. 칼슘이 혈관에 쌓이는 것이 정상적인 일일까? 우리 몸은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 비타민 D를 경구 섭취하는 것이 자연적인 일은 아니지만, 만약 그런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우리 몸은 그런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 다시 말해, 단지 비타민 D가 많다는 이유로 우리 몸이 뼈에서 칼슘을 뽑아내 혈관으로 옮겨 쌓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관상동맥 칼슘 침착은 칼슘과 비타민 D의 체내 농도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즉, 이 현상은 몸이 고장 났다는 증거다. 실제로 <저탄고지 바이블>은 CAC 점수를 전반적인 몸의 건강 척도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단지 관상동맥 관리나 심혈관계 질환 방지를 위해서 CT 촬영을 매년 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 책의 저자들은 관상동맥에 칼슘이 쌓이는 현상이 인슐린 저항성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책에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이요법을 통해 CAC 점수를 낮춘 환자들의 사례가 다수 소개되어 있다.
따라서 건강한 사람이라면 비타민 D 혈중 농도가 높아지는 상황에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 중 건강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는 매일 미세 먼지를 마시고, 미세 플라스틱을 먹고, 무엇보다 스트레스를 지속적으로 받는다. 그래서 건강을 좀 지켜보겠다고 비타민 D를 챙겨 먹으려는 건데, 건강한 사람만 비타민 D를 먹을 수 있다고 하면 이게 웬 해괴한 논리인가?
훨씬 더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바로 비타민 K2를 챙겨먹는 것이다. 비타민 K2는 칼슘이 뼈조직으로 이동하는 데 관여하는 비타민이다. 낫또, 미역, 블루베리, 잎채소 등에 들어 있는데, 앞 장에서 말했듯이 음식으로 챙겨 먹으려면 하루 세 끼 그것만 먹어야 하니까 그냥 보충제로 챙겨 먹자.
아,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칼슘은 영양제로 먹지 말자. 골다공증이나 약한 뼈의 원인이 칼슘 부족인 경우는 대단히 드물다. 칼슘과 철은 많은 전문가들이 보충제로 절대 먹지 말아야 하는 미네랄로 꼽는 것들이다.
견과류나 콩류를 챙겨 먹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콩류와 아몬드에 많이 들어 있는 피트산은 각종 미네랄의 흡수를 방해한다. 킬레이트(chelate) 결합을 통해 칼슘과 철을 옭아매서 몸 밖으로 배출시키는 데 탁월한 재능이 있다. 금속은 대개 양이온이므로, 거의 모든 필수 미네랄이 피트산에 의해 무력화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방법을 조언하는 전문가가 없는 이유는, 피트산이 동반 투신할 때 붙잡는 상대를 가리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지 않고 혼자만 실천 중이다.) 칼슘이나 철은 괜찮지만, 결핍되기 쉬워 영양제로 챙겨 먹기까지 하는 마그네슘이나 아연이 피트산과 동반 투신하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비타민 D의 적정 복용량은 얼마로 해야 할까? 요즘 비타민 D 논란은 대부분이 적정 혈중 농도를 두고 벌어지기 때문에,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많은 의견을 취합해 보면, 40~60은 별 문제 없이 좋은 효과만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수준의 저농도에서는 일일 섭취량 1,000IU당 농도 10이 증가하는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비타민 D 혈중 농도가 한국인 평균인 18~19 정도로 나왔다면, 매일 3,000IU의 비타민 D 섭취를 통해 3~4개월 내 50 정도의 혈중 농도에 도달할 것으로 기대하면 된다. 비타민 D는 지용성이라서 몸에 축적된다. 혈중 농도를 체크해서 좀 과하다 싶으면 잠시 섭취를 쉬어도 좋다.
비타민 D는 햇빛 노출을 통해 피부에서 합성되므로, 여름에는 혈중 농도가 상승하고 겨울에는 내려가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휴지기를 가지고 싶다면 여름철에 비타민 D 섭취를 쉬는 편이 낫다.
비타민 D는 다른 지용성 비타민과 마찬가지로 지방과 함께 먹어야 흡수가 잘 된다. 그러니까 하루 중 가장 기름진 식사를 하는 끼니에, 식사와 함께 먹거나 식후에 먹는 것이 좋다. 이는 지용성 물질 전체에 해당하는 이야기다. 따라서 비타민 A, E, K나 오메가-3, 코큐텐, 루테인, 달맞이꽃 추출물 등등은 모두 기름진 식사와 함께 먹을 때 흡수율이 높다.
비타민 D는 수면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 높은 비타민 D 혈중 농도가 긴 수면 시간과 높은 수면의 질과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난 많은 연구가 있는 반면, 낮은 멜라토닌 농도와 연관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나 비타민 D 혈중 농도가 높을 때 좋은 잠을 길게 잔다면, 낮은 멜라토닌 농도를 걱정할 이유가 없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잘 자는 것이지, 멜라토닌 농도를 높이는 게 아니다.
사족으로, 비타민 D는 사실 비타민이 아니라 호르몬이다. 즉, 우리 몸이 만들어 사용하는 물질이다. 그런데 요즘엔 아무 데나 비타민이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니 별 상관없지 않을까? 양배추에 들어 있는 MMSC(메틸 메티오닌 설포늄 클로라이드)가 궤양(ulcer)에 좋다고 비타민 U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