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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중에 영양제 먹어도 될까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영양제 각론 (14) 영양제가 단식을 깰까?

by 히말

영양제가 단식을 깰까?


한 가지 또 중요한 문제는 비타민, 미네랄 섭취가 단식 상태를 깨는가 하는 질문이다. 거의 모든 전문가들이 단식을 깨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러나 이런 대답에는 간헐적 단식을 독려하려는 좋은 의도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어떤 의도가 묻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비타민, 미네랄 제제에는 주요 성분 이외에도 부형제와 첨가물이 들어 있다. 우리는 탄소 기반 생명체다. <프로젝트 헤일매리>에 등장하는 락키(Rocky)의 경우는 규소 기반 생명체이므로 부형제로 들어간 이산화규소가 단식을 깰 것이다. 우리는 안심해도 좋다.


그런데 독특한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 영양제에 유효 성분으로 불소를 넣는다든지, 지용성 비타민을 태블릿 형태로 만들겠다는 특이한 생각을 사람들이 가끔 부형제로 전분이나 (말토)덱스트린을 사용하기도 한다. 전분은 당연히 탄소 기반 물질일 뿐만 아니라 음식이다! 한 잔에 15kcal나 되는 콤부차도 단식을 깨지 않는다고 많은 간헐적 단식러들이 주장한다. 그런데, 전분 조금 먹었다고 단식이 깨진다고? 그럴 수 있다. 영양제를 제대로 챙겨 먹기 시작하면 하루에 15개 정도 먹는 건 순식간이다. 그게 전부 전분 부형제라고 생각해 보자. 알약 하나에 전분이 0.5그램만 들어 있어도 15개면 7.5그램이고, 30kcal다.


이렇게 썰을 풀었지만, 사실 농담이나 다름없는 얘기다. 부형제로 전분이나 덱스트린을 쓰는 재치 넘치는 업체가 많지는 않다. 부형제로 뭐가 들어 있는지 한번 쳐다보자는 이야기다. 음식과 마찬가지로, 영양제도 성분표를 적어도 한번은 진지하게 읽어보자.


markus-spiske-Zm9kFMnrGB4-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Markus Spiske


귀차니즘을 넘어 성분표를 읽어보자


다만, 비타민, 미네랄을 넘어 건강기능식품으로 넘어가면 이 문제는 농담이 아니게 된다. 건강기능식품은 말 그대로 식품이다. 홍삼은 먹을거리이고, 대개 단맛이 첨가된다. 단백질 파우더는 순수 단백질이라 해도 그램당 4kcal의 훌륭한 음식이다. 당류나 탄수화물이 섞인 것은 정크푸드나 다름없다. 당류 폭탄이나 다름없는 아침 대용 셰이크 시장이 날로 커가는 것을 보면, 마케팅의 힘이 위대함을 새삼 깨닫는다.


비타민, 미네랄 젤리 역시 그냥 식품이라 봐야 한다. 성분 표를 보자. 일반적인 비타민 C 정제는 비타민 C 비중이 적어도 90% 정도는 된다. (일부 특이한 사람들이 만드는 재치발랄한 제품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러나 비타민 C 젤리는 비타민 C 비중이 50%도 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당연하다. 젤라틴도 넣어야 하고 설탕이든 대체 감미료든 단맛 나는 것도 넣어야 하는데 비타민 C 자리가 남아날까.


마찬가지 의미에서 발포 비타민 제제도 추천하지 않는다. 건강 생각해서 챙겨 먹는 비타민, 미네랄에서 단맛을 찾지 말고, 단 게 당기면 훨씬 맛있는 것을 따로 먹자. 단맛이 나는 건기식 중에 괜찮은 것으로는 이눌린이 있다. 이눌린은 섬유질 덩어리인데도 원래 단맛이 나는 것인데, 이게 죄는 아니다.


empreinte-02O1bXB_fgk-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Empreinte


괜찮다고 말해줘


내가 지금 먹는 이것으로 단식이 깨질까 하는 의문을 품는 이유는, 뭔가 핑계가 필요해서다. 콤부차를 마시고도 단식 중이라고 말하고 싶은데, 전문가라는 사람이 그렇게 인정해 준다면 이 아니 좋을쏘냐. 이 문제는 결국 규율(discipline) 문제다. 자신만의 규칙을 세우고 지키면 그만이다. 그래서 간헐적 단식 중 콤부차나 닭 수프가 괜찮냐는 질문에 대해 전문가들의 대답이 다른 것이다. 15kcal 정도는 괜찮다고 스스로에게 약간의 여유를 허락하는 것이, 엄격한 규칙을 정해놓고 포기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질문의 본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방탄 커피다. 방탄 커피는 빼박 식품이다. 당연히 단식을 깬다. 지방을 덩어리로 넣으니 칼로리도 높다. 그러나 단식을 깨지 않는다고 다들 믿는다. 그렇게 믿어야, 방탄 커피로 단식을 이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방탄 커피는 당연히 단식을 깬다. 그러나 방탄 커피를 금지하면 간헐적 단식이 대단히 어려워진다. 그래서 허락하는 것뿐이다.


간헐적 단식을 하는 이유가 키토시스 때문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MCT 오일만 넣은 방탄 커피는 키토시스를 깨지 않는다. 버터는 이름(부티르산=버터산)에도 불구하고 장쇄지방산이 대부분이니까 키토시스를 바사삭 깨뜨린다.


나의 경우를 이야기하면, 비타민, 미네랄은 물론 콤부차 1잔까지는 괜찮다고 정해 놓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콤부차를 마시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는 카페인 기반 생명체라서 커피를 꼭 마셔야 하는데, 입맛이 싸구려라 라테밖에 못 마신다. 그래서 매일 라테로 단식을 깨니 콤부차가 비집고 들어올 자리가 없다.


굳이 수미쌍관이라는 수사법을 쓰려는 것은 아니지만, 중요하므로 다시 강조하겠다. 언제 먹느냐 하는 문제는 사실 별로 중요하지 않다. 모든 비타민, 미네랄의 특징을 살려 최적의 타이밍과 방법으로 먹으려고 하다가는 그냥 지쳐서 나가떨어지거나, 은연중에 잊어먹고 그 사실을 깨닫지도 못할 확률이 높다. 언제 먹느냐에 신경 쓰지 말고, 빼먹지 않고 매일 챙겨 먹는 습관을 들이는 것에 집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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