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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잠 (1)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by 히말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잠이라는 것은 참 신기한 현상이다. 잠을 자지 않는 동물들도 많으며, 잠을 자는 동물들도 잠자는 시간과 패턴은 모두 다르다. 철새들은 비행 도중에 몇 초씩 쪽잠을 잔다.


돌고래는 뇌를 반씩 나눠 잠을 잔다. 그래서 잠자는 동안 움직이고 대화도 하고 할 거 다 한다. 미래 배경 생존 시뮬레이션 게임 <림월드>에는 인간의 뇌를 돌고래처럼 개조하여 하루 종일 활동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이 등장한다.


진화 적응 측면에서 볼 때, 잠은 불리한 측면이 너무 많다. 자는 동안에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면 어쩌려고 이런 대담한 행동을 한단 말인가? 이런 극단적으로 불리한 단점에도 불구하고 잠이라는 것을 진화시킨 것을 보면, 잠에는 단점을 모두 상쇄하고도 남는 엄청난 이익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kate-stone-matheson-uy5t-CJuIK4-unsplash (1).jpg 사진: Unsplash의Kate Stone Matheson


렘 수면과 비렘 수면


렘(REM) 수면과 비렘(Non-REM) 수면은 서로 다른 기능을 하며, 렘 수면은 적어도 파충류는 돼야 할 수 있다. 대개의 포유류는 잠 자는 중 겨우 9%의 시간을 렘 수면에 할당하지만, 인간은 25%를 할당한다. 렘 수면과 비렘 수면 모두 뇌 기능에 매우 중요하며, 특히 기억의 재배치에 결정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렘 수면이 신경망 인공지능 딥러닝(deep learning)에 필수적인 묶음 훈련(batch training)과 같은 방식으로 사례를 랜덤 제시하는 것이라는 재미있는 의견도 있다. (찬드라 스리파다, <호모 프로스펙투스>)


더 깊은 잠인 비렘 수면이 건강에 더 필수적인 것 같다. 수면 박탈 상태에서 다시 잠을 자게 되면 우선 비렘 수면에 우선적으로 시간이 할당되기 때문이다. 하루 세 시간만 자고 잘 지낸다는 사람들의 수면 뇌파를 분석해 보면, 비렘 수면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나 렘 수면 역시 중요하다. 아니, 필수적이라고 봐야 한다. 예컨대, 교감신경을 자극하는 (즉, 스트레스성인) 신경전달물질 노르에피네프린은 렘 수면일 때 최저 수준에 도달한다. 렘 수면이 없는 사람은 언제나 일정 수준 이상의 스트레스를 안고 사는 셈이다.


잘 자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퍼져가면서, 잠에 관한 수많은 책들이 나왔고, 나도 그중 많은 책을 읽었다. 그중 단 한 권을 나는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데,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다. 왜 잠을 자야 하는지, 매슈 워커는 단 한 단락으로 설득해 버린다.


과학자들이 수명을 늘리는 혁신적인 새로운 요법을 발견했다. 기억력도 강화하고 창의력도 더 높여 준다. 더 매력적으로 보이게도 한다. 몸매를 더 날씬하게 유지하고 식욕도 줄여 준다. 암과 치매도 예방한다. 감기와 독감도 막아 준다. 심장 마비와 뇌졸중, 당뇨병 위험도 줄여 준다. 행복한 기분은 높이고 우울하고 불안한 기분은 줄여준다. 관심이 가는지? (매슈 워커의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제6장 서문, 201쪽)


당연한 얘기지만 그 혁신적인 요법은 잠이다.


david-clode-Yg_sNKOiXvY-unsplash.jpg


현대인에게 사치가 되어 버린 잠


이제는 원산지인 스페인과 남미에서도 사라져가는 시에스타가 인간의 디폴트 세팅이라는 증거가 발견되었다. 수렵과 채집이라는 옛 생활방식을 거의 그대로 간직한 채 살아가는 부족들을 관찰한 결과, 학자들은 그들이 하루 두 번 잔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케냐 북부의 가브라족이나 칼라하리 사막의 산족은 밤에 7~8시간을 자고, 오후에 30분 내지 한 시간 정도를 또 잔다. 북부 탄자니아의 하드자족이나 나미비아의 산족은 여름에만 시에스타를 즐기고 겨울에는 한 번만 잔다.


현대 사회가 왜곡한 잠의 또 하나의 모습은 잠자리에 드는 시점이다. 인류 사회는 인공조명의 보급에 따라 잠드는 시간을 점점 더 뒤로 미뤄왔다. 해가 진 다음에 조명이 없다면 할 일의 범위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1970년 중앙일보 기사에 따르면, 10개월 전 사상 최악의 정전이 강타한 스웨덴 서해안 지방에서 출산율이 급증했다고 한다. 마우로 기옌 역시 <2030 축의 전환>에서 장기간 정전이 된 지역에서 출산율이 증가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1247226#home


낮의 길이에 따라 잠들고 깨는 시간이 바뀌고, 너무 더울 때는 한 차례 낮잠을 즐기는 것이 자연이 의도한 인간의 잠이다. 하버드 대학교 연구진은 2000년대 이후 시에스타 풍습이 사라져가는 그리스에서 비교 연구를 진행했다. 시에스타를 유지한 사람들에 비해, 낮잠을 포기한 사람들의 심장병 사망 위험이 6년 사이에 3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직장인으로만 한정할 경우 증가율은 60%에 달했다.


아쉽지만 현대 사회에 낮잠 시간이 다시 도입될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그러니 밤잠이라도 제대로 자야 한다. 잠이 부족해지면 위 인용문에서 예방할 수 있다고 말하는 모든 좋지 않은 일들이 일어날 확률이 대폭 상승한다.


현대인 대부분에게 잠이 부족하다는 것은 사실인 듯하다. 통계에 따르면, 일광 절약 시간제, 즉 서머 타임이 시작되는 시점에 심근 경색 환자가 급증하고, 서머 타임이 끝나는 날에 심근 경색 환자가 급감한다고 한다. 한 시간 덜 자고, 한 시간 더 자는 것이 만드는 차이다. 매년 수많은 사람들이 자동으로 참가하는 임상 실험 결과이니 믿을 만하지 않은가. 최근, 미국 내 수면 관련 학회들은 단체로 성명을 냈다. 득은 별로 없고 실은 많은 서머 타임 제도 폐지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https://www.sciencedaily.com/releases/2023/10/231031161926.htm


charlesdeluvio-S2AcayPkszE-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charlesdeluvio


잠을 얼마나 자야 할까


잠을 얼마나 길게 자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의견이 나뉘는 상황은 그 기저에 있는 사실관계에 대한 해석, 또는 관찰 결과 자체에 대한 이견 때문인 경우도 있겠지만, 훨씬 더 많은 경우 단지 이해관계가 달라서 발생한다. 그러니 잠을 적게 자도 된다고 주장하는 쪽이 어떤 사람들의 이익을 대변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면 상황이 한눈에 보인다. 서머 타임 도입을 누가 지지하는지는 뻔하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해가 지고 뜨는 시간에 맞추어 잠자고 일어나면 딱 좋겠지만, 해 지는 시각에 우리는 회사 문을 나서지도 못한다. (3시 반에 해가 지는 겨울 오슬로에서, 매일 퇴근할 때마다 마치 야근이라도 한 것처럼 몸이 뻐근했다.) 그래서 현실적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 적어도 "한밤중(midnight)"에는 깨어 있지 말자.


오후 10시에서 오전 2시까지가 체내 노폐물 청소에 가장 효과적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수면 위생 수준을 알아보는 간단한 테스트, SATED에 따르면, 무슨 일이 있어도 오전 2시에서 4시 사이에는 잠을 자고 있어야 한다.


미국 국립수면재단(National Sleep Foundation)은 18세 이상 성인에 대해 하루 7~9시간 수면을 권장한다. 권장 수면 시간은 나이에 따라 다르다. 65세 이상의 경우에는 7~8시간으로 충분하지만, 13~18세의 청소년은 8~10시간은 자야 하며, 12세 이하라면 하루에 12시간 이상 깨어 있지 말아야 한다.


https://www.sleepfoundation.org/how-sleep-works/how-much-sleep-do-we-really-ne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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