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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판단하는 연습

루틴으로 갓생 살기 - 스스로 판단하기 (1) 미세 플라스틱

by 히말

생수에 미세 플라스틱 가득


2023년 5월, 이런 뉴스가 있었다.


https://www.joongang.co.kr/article/25165133#home


생수병에 든 물 1ml당 나노 플라스틱이 1억 개 정도 들어 있다는 뉴스다. 노르웨이, 중국, 벨기에가 참여한 연구팀은 시판 중인 생수 4개 브랜드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문제는 이 생수들이 노르웨이에서 판매되던 것들이라는 점이다. 나름 청정국이라 생각되는 나라 아니던가.


문제는 또 있다. 100나노미터 여과막을 통과한 물을 검사한 것이므로, 100나노미터, 즉 천만 분의 1미터 이하 크기의 나노 플라스틱의 개수만을 조사한 것이다. 그 이상 크기의 미세 플라스틱, 즉 마이크로 플라스틱은 검사 대상도 아니었다. 물론 크기가 어느 정도 이하인 미세 플라스틱 역시 빠진 숫자다. 검출 기술의 한계 때문이다.


검출된 나노 플라스틱의 평균 크기는 88나노미터였고, 평균 검출 수는 1ml 당 1억 6600만 개였다.


나노 플라스틱보다 훨씬 더 큰, 마이크로미터 수준의 플라스틱도 몸에 쌓이면 좋을 게 없다. 그러나 큰 덩어리들은 상대적으로 더 쉽게 배출되고, 인체 조직에 침투하는 정도도 훨씬 덜하다.


작은 크기의 물질일수록 문제가 더 심각하다. 나노 플라스틱은 일반적인 세포보다도 더 작은 크기다. 세포에 얼마든지 침투할 수 있다. 세포 대사를 방해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예상을 해볼 수 있다는 얘기다. 예를 들면, 적혈구의 지름은 약 8마이크로미터다. 무려 8,000나노미터다. 위 실험에서 발견된 나노 플라스틱의 평균 크기의 100배 수준이다.


the-blowup-t06aN6vewaQ-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the blowup


인체의 구성 물질 중 하나가 된 미세 플라스틱


2022년 3월, 암스테르담 대학 연구팀은 건강한 사람의 혈액에서 미세 플라스틱이 발견되었다고 밝혔다. 검사 대상 22명 중 17명의 혈액에서 PE, PS, PET 등 다양한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 이어 4월 6일에는 영국 헐-요크 의대 연구팀이 건강한 사람의 폐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고 발표했다. 특이한 점은, 폐의 상층부보다 하층부에서 더 많은 미세 플라스틱이 검출되었다는 것이다. 걸러지지 않고 중력의 영향으로 아래쪽에 쌓인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미세 플라스틱의 건강 위해성에 대해서는 아직 확립된 이론이 없다. 안전하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단지 연구가 부족할 뿐이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폴리스틸렌(PS)에 노출된 위암 세포가 그렇지 않은 위암 세포에 비해 더 빨리 성장하고 더 빨리 전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항암제에 대한 내성도 더 강했다.


GMO의 유해성이 아직 공인되지 않고 있는 현실, 그리고 과거 담배의 위험성이 인정되기까지 걸린 기나긴 역사를 떠올려 보면, 미세 플라스틱의 위험성이 공식적으로 인정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담배나 GMO보다도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담배나 GMO에 비해, 플라스틱은 우리 생활에서 훨씬 더 광범위하게 쓰이고, 산업 규모도 훨씬 크다. 담배나 GMO는 어느 정도 피할 방법이 있지만, 플라스틱은 그렇지 않다. 당분간 인류는 타조처럼 땅속에 머리를 묻고 아무 일 없다는 듯 행동할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생수를 식수로 사용해 왔다. 외국에 살던 시절을 제외하면, 독립해서 사는 모든 시기에 생수를 마셨다. 그만큼 수돗물을 믿지 못한 것이다. 가끔 회의 자리에 포장된 아리수가 나오면 물을 마시지 않았다. 우리나라 수돗물의 수질이 훌륭함에도 불구하고 생수 산업이 잘 나가는 이유는 그동안 쌓인 수돗물에 대한 불신이 한몫 단단히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jonathan-chng-OTDyDgPoJ_0-unsplash.jpg 사진: Unsplash의Jonathan Chng


책 읽는 데서 그치지 말자


로랑 슈발리에의 <우리는 어떻게 화학물질에 중독되는가>라는 책을 접한 것이 몇 년 전이다. 생활 속 화학 물질의 위험이 잘 분석되어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 가장 고민했던 두 가지가 물과 알루미늄이었다. 마실 물에 대해서, 저자는 고민 끝에 수돗물 쪽에 판정승을 내린다.


그런데 그는 프랑스인이고, 그가 판정승을 내린 수돗물을 파리의 수돗물이었다. 정수 촉매제는 보통 알루미늄이 쓰여 왔으나, 최근 알루미늄의 위험성이 부각되면서 일부 용감한 지자체는 촉매제를 철로 바꾸고 있다. 파리가 바로 그런 기특한 지자체 중 하나다. 그러니까, 로랑 슈발리에의 생수 대 수돗물 대결에서 저울추를 기울게 만든 결정적 한 방은 수돗물에서 알루미늄이 사라졌다는 사실이었다.


당연히 나는 우리나라 상황을 조사했다. 우리나라 정수장 중에 촉매제를 철로 바꾼 곳은 없었다. 이와 관련된 정보는 찾기도 어려웠다. 정수장 홈페이지에 공개되어 있지 않아, 어떤 논문을 통해 간접적으로 확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돗물의 위험 요소로는 알루미늄 외에도 녹슨 배관과 불소가 있고, 생수의 위험 요소 중 으뜸은 단연 미세 플라스틱이다. 다만, 로랑 슈발리에 본인도 생수 안에 미세 플라스틱이 이 정도로 많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결론적으로, 나는 정수장 촉매제가 아직 알루미늄인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생수가 낫다고 판단했다. 그때 내린 결론이 2023년 5월, 노르웨이 연구팀 실험 결과로 뒤집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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