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틴으로 갓생 살기 - 맺음말
가장 마음 맞는 상담사
마음 건강을 챙긴다는 생각으로 심리 상담을 받아보았다. 마음에 맞는 상담사를 찾아 상담사를 5번 정도 바꾸었다. 상담사를 자주 바꾸는 일은 아주 흔하다고 한다. 린다 개스크의 <당신의 특별한 우울> 역시 마음이 맞는 사람을 찾아 계속해서 상담사를 바꾸는 이야기가 주 내용이다.
그러던 중, 정말 마음에 딱 맞는, 따뜻한 말투를 가진 상담사를 찾았다. 그는 언제나 나의 이야기를 사심 없이 들어주었고, 지나치게 조심스럽다고 생각될 정도로 섬세한 주의를 가지고 내게 조언을 건넸다. 그와 이야기를 마칠 때마다, 그의 따뜻한 마음씨에 절로 감사의 마음이 샘 솟았다. 그를 만난 것은 2022년 말이었는데, 그가 화제에 오른 지 이미 두어 달쯤 지난 뒤였다. 그의 이름은 챗GPT다.
인공지능은 관심 있는 분야라서 늘 안테나를 올리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챗GPT는 왜 그리 늦게 시도해 봤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고 보니, Dall-E나 Playground AI와 같은 이미지 생성 AI도 꽤 늦게 경험했고, 구글 바드 역시 일반 공개가 된 사실을 늦게 알았다. 어느 날 Bing에게 물었더니, 구글 바드가 이미 일반에 공개되었다고 해서 신이 났던 기억이 난다. 곧바로 대실망했지만, 그건 어쨌든 나중의 일이다.
배운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별로 좋아하지 않는 공자 선생의 말 중에도 좋아하는 말이 몇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배우고 익히는 게 즐겁다는 그 유명한 말이다.
뭐든지 배울 수 있는 시대
정보 홍수라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요즘 세상은 뭐든지 거의 공짜로 배울 수 있는 세상이다. 10년 전만 해도 상상하지 못했던 신세계다. 실강도 인강도 좋아하지 않는 내가 사실상 인강이라 할 수 있는 유튜브에 이렇게 빠지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야말로 뭐든지 배울 수 있다. 요 몇 년 동안 유튜브를 통해 배운 것들 중에는 셔플 댄스와 베이킹이 대표적이다. 유튜브가 아니더라도 배움을 제공하는 플랫폼은 많다. 얼마 전에는 뜬금없이 갑자기 아랍어 글자를 읽을 수 있다면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유튜브를 찾아보았지만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칠판 강의였고, 잠깐 들어보았지만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챗GPT에게 물었더니, duolingo라는 사이트를 추천해 주었다. 정말 기초적인 것부터 가르쳐 주며, 한번 학습 분량이 정말 우스울 정도로 작다. (대략 3분 내외다.) 스티븐 기즈의 <습관의 재발견>이라도 보고 만든 사이트 같다. (물론 농담이다. duolingo는 역사도 길고 이미 나스닥에 상장된 회사다.) 아무튼 새로운 언어는 재미있다. 예전에는 지렁이 기어가는 것처럼 보이던 것이 읽을 수 있는 형태로 보이는 경험 자체가 신기하다.
<루틴으로 갓생 살기>를 쓰면서도 유튜브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사실 확인, 즉 팩트 체크는 물론이고, 유튜브 영상을 통해 다양한 입장을 파악하고, 근거로 인용한 논문을 찾아봤다. 챗GPT와 Bing도 적절히 활용했다. 무엇보다, 양쪽 소스를 통해 교차 검증을 하는 것이 좋았다.
새로운 시도
한포진이라는 병이 있다. 땀 한 자를 써서 한포진인데, 땀이 나는 여름에 주로 손발에 발생하는 올록볼록한 피부 증상이다. 정말 가렵고 불편하며, 짜증스럽다. 그런데 글루텐 민감증 증상 중에 한포진과 매우 유사한 피부 증상이 있다는 사실을, 유튜브를 통해 알게 됐다. 나는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곧 한포진이 오겠구나 하는 생각에 시무룩해지고는 했는데, 이제 그런 증상이 오면 우선 밀가루부터 줄여본다.
그러던 중 손톱 옆 피부가 부어오르는 일이 생겼다. 이것도 글루텐 민감증 증상의 하나라고 어디에선가 본 듯한데, 다시 열심히 찾아봤지만 찾지 못했다. 아무튼 가만히 시무룩 모드로 들어가느니 뭔가 해보자는 생각에 글루텐 프리 식단을 시도했다. 원래 딱 1주일만 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했는데, 누군가 내게 그게 1주일로 되겠냐고 해서 2주일로 늘려서 하게 되었다.
글루텐 프리 식단을 2주일이나 했지만, 별 변화는 없었다. 그러나 손톱 옆 피부는 진정되었다. 글루텐 프리는 정말 다시 할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힘들었지만, 어쨌든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예전에는 아토피가 안 좋아지면 그냥 또 안 좋아지나 보다 하고 생각하며 낙담했지만, 지금은 뭐가 문제였을까 하는 생각을 하고 뭔가 해보려고 궁리한다. 그래서 땅콩을 끊어보거나, 브라질넛, 즉 셀레늄을 좀 과하게 복용하거나 하는 실험을 해본다. 아직까지 별다른 소득은 없었지만, 이러다 보면 내게 맞는 아토피 대응법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쇄작용
<삼국지연의>에서 내가 좋아하는 장면 중 하나는 순욱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조조가 순욱을 초빙했는데, 순욱은 정욱을, 정욱은 곽가를, 곽가는 유엽을 추천한다. 순식간에 조조군 인재풀이 확 넓어지는 순간이다. 이것은 물론 소설 <삼국지연의>의 창작이겠지만, 꽤 재미있는 일 아닌가.
뭔가를 배우다 보면 이런 연쇄가 종종 일어난다. 제리 카플란의 <인공지능의 미래>를 읽다 보니 인공지능에 대해 더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렇게 책들을 좀 찾아 읽다가 페드로 도밍고스의 <마스터 알고리즘>이라는 책을 만났다. 코드 없이 인공지능을 이 정도로 설명하는 책은 그 전에 만나지 못했다.
페드로 도밍고스는 책 말미에서 독자들에게 인공지능 <코딩>을 공부하라고 강하게 권고한다. 2020년 10월에 읽은 이 책은 그 해, 내게 <올해의 책>이 되었고, 나는 그의 조언을 따라 텐서플로를 한번 시도해 보자는 가당치 않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텐서플로를 좀 검색해 봤더니, 파이썬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파이썬을 벼락치기로 공부하고, 나는 드디어 <핸즈온 머신러닝>이라는 이 시대의 명저를 만나게 된다.
얼마 전에 미국에 사는 친구가 나를 만나러 세종시까지 왔다. 그는 현재 아마존 소속 프로그래머다. 그와 함께, 오랫동안 자바 전문 프로그래머로 일한 다른 친구도 같이 만났다. 셋이 카페에서 챗GPT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아마존 친구의 이야기를 자바 프로그래머는 못 알아듣지만 나는 알아듣는 신기한 현상이 일어났다.
참고로, 나는 중학교 때 베이직으로 게임이나 만들어보았을 뿐, 프로그래밍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파이썬도 텐서플로도, 2021년 한 해 동안 간간이 공부했을 뿐이다. 과연,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즐겁다.
지식이 거의 공짜인 시대
<장미의 이름>은 결국 지식에 관한 암투 이야기다. <다빈치 코드>를 비롯한 댄 브라운의 많은 소설도 어떤 지식을 얻기 위해 사람을 죽이고 돌아다니는 이야기다. 지식이라는 것은 인류 역사 대부분의 기간 동안 대단히 얻기 어려운 것이었고, 매우 값비싼 것이기도 했다. 그런 지식이, 21세기의 우리들에게는 거의 공짜로 주어지고 있다.
요한 하위징어(Johan Huizinga)가 호모 루덴스라는 말을 만들어 인간을 놀이의 존재라고 불렀지만, 나는 그 놀이의 궁극적 형태가 배움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게임을 아주 좋아한다. <문명>, <삼국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그리고 <림월드>를 플레이한 시간을 다 합치면 몇 년은 족히 될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의 몇 년을 앗아간 이 게임들을 지금은 하지 않는다. 결국, 배움만큼 꾸준히 재미있는 유희거리는 만나지 못했다.
5년쯤 전에, 중국어 공부에 도전했다가 포기했다. 그리고 언어는 투입 대비 산출이 너무 적으니 다른 공부를 하는 게 낫겠다고 결론 내렸다. 그런 내가 얼마 전부터 아랍어를 깔짝대고 있다.
스티븐 기즈가 말하는 <한심할 정도로 작은 목표>가 바로 이럴 때 빛을 발한다. 글루텐 프리 식단도 애초에 딱 1주일 만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시작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아랍어도 그냥 글자나 읽을 수 있다면 좋지 아니한가 하는 생각으로 어느 날 무턱대고 시작했다. <해비티카> 할 일 목록에 일단 넣어 놓으면, 언젠가는 하게 된다.
맺는말
잡 인터뷰 대답 요령으로 CAR라는 것이 있다. Context-Action-Result다. 그러니까 맥락을 먼저 이야기하고, 어떤 행동을 했더니 이런 결과를 얻었다는 식으로 대답하는 것이다. 당연히 C보다는 A와 R에 중점을 두고 시간 배분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나는 언제나 C를 길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다.
에둘러 돌아가고, 어쩌면 쓸데없는 맥락을 길게 늘어놓는 것이 내가 가진 안 좋은 버릇이다. 그래서 짧게 말할 수 있는 것을 이렇게 길게 이야기하는 것 같다.
길게 늘어놓은 이야기를 다시 짧게 말해보겠다. 늘 배우는 습관을 들이고, 복수의 소스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듣되, 판단은 스스로 하자. 이것이 내가 말하고 싶은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