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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9. 지우다

by 히말

이준기는 거리를 두고 건물 주위를 한 바퀴 돌았다.

이런 것도 오두막이라고 부르나? 괴랄한 네이밍 센스군.


호수의 지름은 400 에서 500 미터 사이.

그 호수의 남동쪽 4 분의 1 을 뒤덮는 규모의 오두막이라니, 요새라고 불러도 좋을 정도다.

평수로 치면 1 만 평이 넘는다.


그동안의 경험과 요새 넓이를 감안하면, 최단 거리로 접근할 경우 세 무리 정도의 로밍 몬스터만 처리하면 보스에게 닿을 수 있다.


그러나 솔로잉 상황이므로 한두 무리를 더 처리하고 안전하게 진행하자.


이준기는 요새 입구쪽으로 다가가서 열쇳돌을 사용했다.

반투명한 젤리 같은 기운이 공기에서 사라졌다.


첫 번째 무리는 코볼드 궁수 5마리였다.

우두머리는 물론 코만도.


요새 바깥쪽의 넓은 공간을 활용해서 하나씩 풀링해서 처리했다.

공격을 감지하면, 궁수들은 일제히 이준기를 향해 활을 겨냥한다.

그들이 준비 동작에 시간을 소모하는 사이, 이준기는 멀리 달아났다.


사거리 바깥으로 나간 이준기를 향해 달려오는 적들을, 이준기는 활로 하나씩 저격했다.

마지막으로 코만도를 처리하고, 이준기는 불화살을 챙겼다.

순찰 영역이 겹치는 다음 두 무리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일단 시간을 들여 순찰 패턴을 읽었다.

다음으로는, 두 무리가 서로에게 호응할 수 없는 거리까지 멀어지는 걸 기다렸다.


전투 개시는 코만도에게 불화살을 쏘는 것으로 시작한다.

불화살의 지속 화염 대미지로 코만도는 화살을 시위에 걸지도 못한다.


무리가 궁수로 이루어진 경우에는 사거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뛰어야 한다.

무리가 보병인 경우에는 훨씬 쉽다.


두 무리를 처리하자, 경험치 바가 거의 찼다.

그리고 저택 가장 안쪽에 앉아 있는 부두 술법사의 모습이 멀리 보였다.


***


아무래도 지체 높으신 양반들은 공간을 넓게 쓰고 싶어 하는 모양이다.

부두 술법사와 호위 부대 하나가 그 넓은 공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호위 부대는 코볼드 코만도와 보병 넷.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부두 술법사 본인.


부두 술법사는 화염 계열과 암흑 계열 두 종류가 있다.

망토 색깔로 알아볼 수 있다.


화염 술법사라면, 스파크를 통해 화염 디버프를 쌓은 뒤, 화염구로 폭발시키는 전략을 쓴다.


- 스파크. 불의 책 1권 소모. 즉시 시전. 소소한 화염 대미지를 입히고, 화염 낙인 1개를 가합니다. 화염 낙인은 중첩됩니다.


이 던전 포맷의 부두 술법사라면, 1의 화염 대미지를 입히고 화염 낙인은 최대 10개까지 중첩된다.

화염 낙인 자체는 그냥 기분만 나쁠 뿐이지만, 그 상태로 화염구를 맞게 되면 생각이 달라진다.


- 화염구. 불의 책 2권 소모. 즉시 화염 대미지를 입히고, 화염 낙인의 수에 따라 지속적인 화염 대미지를 매초 입힙니다.


D 등급 던전의 화염 술법사라면, 스파크 10개 후 화염구로 총 70 대미지를 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D 등급 차원문 적정 레벨인 15레벨 탱커라도 죽기 직전이다.

현재 레벨 3, 생명력 20에 불과한 이준기라면, 아마 술법사가 오버킬 업적을 달성하겠지.


반면, 암흑 술법사는 검은 화살만 냅다 쏴댄다.


- 검은 화살. 어둠의 책 2권 소모. 암흑 대미지를 입히고, 1초 후에 중독 효과를 가합니다. 중독은 중첩됩니다.

화염 술법사는 미괄식, 암흑 술법사는 두괄식 대미지랄까.


이에 대한 이준기의 비책이라면, 스킬 피드백이다.


- 피드백. 어둠의 책 1권과 마나의 책 1권 소모. 적이 시전하려는 스킬을 무효화하고, 해당 스킬 시전에 소모된 책으로 시전 가능한 스킬 하나가 랜덤하게 선택되어 적을 향해 시전됩니다.


최종 전투에 임하기 전에, 이준기는 우선 팬던트를 작동시켰다.

다행히, 부서지지는 않았다.


- 마력 저항의 펜던트.

- 장신구. 에픽 등급.

- 착용 효과: 원소 저항 +5%p

- 사용 효과: 7 개 영역 중 하나를 골라 원소 저항을 1시간 동안 25%p 만큼 증가시킵니다. 또한, 선택한 원소 계열의 첫 번째 공격을 무효화합니다. 사용할 때마다 아이템이 영구히 파괴될 가능성이 10% 존재합니다.

화염 저항을 선택했다.


이제 1시간 동안, 화염 저항은 30%, 암흑 등 기타 영역 저항은 5%다.


***


불화살이 코볼드 코만도를 향해 날아갔다.

코만도가 불화살의 지속 화염 대미지로 움찔거리는 사이, 보병들이 달려 왔다.


부두 술법사도 자리에서 일어나 두 걸음 정도 앞으로 다가왔다.

망토 색깔은 검은색.


검은 화살 시전을 시작한다.

이준기는 뒤로 돌아 달렸다.


타깃이 마법 사거리에서 벗어나자, 술법사가 시전을 멈추고 다가왔다.

검은 화살의 시전 시간은 2초.


반면, 이준기가 써야 할 피드백의 시전 시간은 무려 5초다.

OK 목장 결투처럼 그냥 대놓고 맞시전하다가는 골로 갈 뿐이다.


이준기는 불화살을 날렸다.

1초에 한 번씩, 5초 동안 불에 타는 고통을 안겨줄 불화살.


불화살을 맞고 움찔거리면서도, 술법사는 검은 화살 시전을 시도했다.

계속해서 시전이 끊기는 것을 보면서, 이준기는 5초 동안 피드백을 시전했다.


그 사이에, 피가 반쯤 깎인 코볼드 코만도가 공격 대열에 합류했다.

코볼드 코만도가 쏜 불화살이 이준기의 상반신을 향해 날아왔다.


- '마력 저항의 펜던트'가 불화살 공격을 무효화했습니다.


바로 이 공격을 막기 위해, 이준기는 화염 저항을 선택한 것이었다.

5초나 걸리는 피드백 시전이 끊기면 안 되니까.


부두 술법사의 공격에 대비한 것이 아니라, 코만도의 공격에 대비한 것.

코만도의 불화살을 저항한 이준기는 피드백 시전을 끝냈다.


검은색과 연푸른색이 섞인 바람이 부두 술법사를 휘감았다.

그의 손끝에서 검은 화살이 나오는 듯 싶더니, 그를 향해 되돌아갔다.


- 피드백에 의해 부두 술법사의 검은 화살이 무효화되었습니다.

- 피드백에 의해 부두 술법사에게 검은 화살이 시전되었습니다.


이준기는 거리를 벌리기 위해 다시 뛰었다.

다가오는 코볼드 코만도를 향해 마지막 불화살을 날렸다.


코볼드 코만도가 불에 타 죽어가는 사이,

이준기는 앞으로 달렸다.


보병들의 검날을 오크 분쇄자의 검으로 쳐내고,

훨씬 뒤에 서 있는 부두 술법사를 향해 달렸다.


독 대미지로 몸을 가누지 못하는 술법사를 향해 검을 내지르는 동시에 외쳤다.


"마나 폭발!"


- 마나 폭발로 24의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역시, 암흑 술법사라 암흑 대미지를 상당히 많이 저항했다.


그때, 상태창으로 메시지가 떴다.


- 4레벨을 달성하였습니다.


코볼드 코만도가 죽은 것이다.


레벨업 효과로, 마나 책 두 권과 어둠의 책 한 권이 재생되었다.


이준기는 무빙탱을 하며 부두 술법사에게 마나 폭발을 연속으로 날렸다.


- 마나 폭발로 45의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 마나 폭발로 81의 대미지를 입혔습니다.


부두 술법사의 몸이 폭발했다.


***


던전 클리어 보너스로 이준기는 5레벨이 되었다.

업적도 달성했다.


-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 던전 솔로잉.

- 보상: 스탯 보너스 20, 에픽급 보상 상자 1개.


두근거리는 마음을 뒤로 하고, 이준기는 우선 차원문 소멸 보상인 레어 등급 보상 상자부터 열었다.


- 전리품을 획득했습니다.

- 명예로운 적의 흉갑.

- 가죽 조끼. 레어 등급.

- 착용 효과: 물리 공격 저항 +1%p. 오크에 대해서 추가로 물리 공격 저항 +5%p.

5레벨인 현재, 이준기의 물리 공격 저항은 2.2%다.


당분간 강인함 스탯을 찍을 생각이 없으니, 레벨업에 따라 계속 내려갈 것이다.

그걸 어느 정도 보완해주는 아이템이니, 괜찮은 편이다.

무엇보다, 던전 입구의 오두막 보급소에서 넝마 같은 옷을 주워입지 않아도 되니 좋다.


다음은 에픽 등급 보상 상자.


- 전리품을 획득했습니다.

- 패시파이어(Pacifier).

- 양손검. 에픽 등급.

- 대미지 등급 D. 공격 쿨타임 5초.

- 착용 효과: 물리 공격 회피율 +2%p.

- 발동 효과: 유효 타격시 50%의 확률로 적의 버프를 무효화시킵니다. 버프가 없는 적에게는 50%의 확률로 ‘둔화(Slow)’의 저주를 겁니다.


엄청나게 좋은 검이다.


대미지 등급이 D이니, C 등급 던전부터는 효용성이 떨어지겠지만, 발동 효과가 너무 좋다.

양손검이라 방패를 들지 못하는 문제가 있지만, 탱킹용으로도 손색이 없다.


던전은 클리어했다.

그러나 이준기는 당장 이 검을 써보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하나,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었다.

그 때문에라도, 이준기는 지금 당장 던전을 나갈 수 없다.

이준기는 맵을 돌아다니며 애꿎은 코볼드 무리를 사냥했다.


***


다음 날 아침, 햇살에 눈이 저절로 떠졌다.

혹시나 해서 밖에서 잤다.


몬스터가 거의 전멸한 던전이니 위험은 전혀 없었다.

6레벨을 달성하고 잠자리에 든 것이 어제 오후 9시경이었다.


밤 시간에 사냥하는 것은 좋지 않은 생각이다.

몬스터들은 대개 적외선 시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5레벨이라 할 수 없는 사기적 스탯과 에픽 양손검 앞에 코볼드들은 속수무책 쓰러졌다.

아침이 왔지만, 기다리던 소식이 아직 없었다.


이준기는 오두막으로 돌아와 자판기에서 기본 식량팩을 샀다.

빵처럼 보이는 물건이기는 한데, 맛은 없다.

아마, 오크족 음식 중에 그나마 인간들도 수용할 만한 맛을 고른 것 아닐까.


하나에 5골드나 하는 하급 치유 물약도 넉넉히 챙겼다.

던전 하나를 통채로 털었더니, 골드도 꽤 모였다.


그래도 소식이 오지 않아 팔굽혀펴기를 시작했다.

아무래도 11시는 돼야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오두막에서 잘 걸 그랬다.

괜히 지붕 없이 자는 고생을 했다.


11시 10분.

드디어 소식이 왔다.


- 누군가 던전에 진입했습니다.


국회 앞마당에 열린 차원문이라 더 일찍 들어올까 해서, 서둘러서 클리어했는데.

공격대는 결국 평소 스케줄대로 들어왔다.


11시에 차원문 앞에서 출정식을 하고 들어오는 것이 협회 표준이다.

인터뷰로 비장한 각오를 밝히는 생쑈를 해야 한다.


던전 진입 메시지는 다섯 번에서 끝났다.

정규 공격대가 아니고, 정찰대인 모양이다.


고레벨 구원자를 포함한 공격대일 수도 있다.

누군지 궁금했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이준기는 수풀 사이에 숨어 기다렸다.

입구 오두막에서 준비를 마친 구원자들이 문을 열고, 던전으로 들어왔다.


남자 셋, 여자 둘.

아는 얼굴은 없다.


복장 수준으로 보아 정찰대인 모양이다.

그들이 수풀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을 기다린 다음, 이준기는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출구 쪽 문을 열었다.

휘황찬란한 빛에 눈이 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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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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