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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03. 2018

"독립된 나라에서 독립운동하듯
살아가는 사람들"

[서평] 강준만의 <손석희 현상>

국정농단 사태로 나라가 시끄럽던 어느 날, JTBC는 덴마크에 도피 중이던 정유라가 현지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런데 단독 취재였던 이 뉴스에 대해 말이 많았다.

이날 JTBC는 덴마크에 체류 중인 정유라 체포 소식을 전하면서 정유라가 체포되는 순간을 찍은 화면도 단독으로 내놨는데, 정유라가 체포될 수 있었던 건 현지에서 정유라를 취재하고 있던 JTBC 기자 이가혁의 신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두고 저널리즘 원칙에 어긋난다는 의견이 나왔다. (252쪽)

죽어가는 사람을 구하지 않고 카메라를 들이대는 기자라면 당연히 비난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과연 이 사건이 그런 성격의 것일까? 리영희 선생은 보수는 욕심으로, 진보는 편 가르기로 망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정유라 체포 건을 두고 벌어진 저널리즘 논쟁을 보면 끝없는 가지치기로 이어지는 편 가르기는 역시 진보 진영의 특기다.

리영희 선생



흔히 진보가 보수에 대해 가지는 최대의 무기가 윤리적 우월이라고 한다. 정말 그런지는 차치하고라도, 진보 진영에서 윤리적 논쟁이 자주 벌어지는 것은 사실이다. 강준만의 <손석희 현상>에는 이 사건을 두고 오고 간 다양한 주장들이 실려 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한 결론은 단순하다 못해 무식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이 사건의 본질은 책에도 인용된 서상원 교수의 주장 그대로다. 문제는 '직업윤리와 사회윤리가 상충할때 어느 쪽이 우선인가'다. 정유라라는 중요 피의자의 신병 확보가 필요한 시점에서 취재 기자가 체포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신고를 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은, 중증 외상 환자의 상처를 봉합하는데 바느질 순서가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한다면 지나친 비유일까?

2016년 12월 3일, 광화문에서 청와대까지 행진하는 촛불 행렬 © 한국일보



손석희가 이끄는 JTBC는 언론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진 시대에 시민에 의한 명예혁명을 가능케 했다. 손석희의 JTBC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들을 기회조차 없었을 YTN 해직 기자의 딸이 보내는 편지는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초등학생이던 딸은 학년이 바뀔 때마다 아빠 직업란에 뭐라고 써야 할지 고민하고, 아빠가 감옥에 가자 정말 아빠가 큰 죄를 지은 건 아닐까 두려워한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응원에 진실에 다가가고, 나이가 들면서 철이 든 딸은 아빠가 정말 자랑스러운 일을 했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2016년 12월, 해직 3000일에 맞추어 개봉한 다큐 영화 <7년: 그들이 없는 언론> 시사회. 딸이 아빠에게 보내는 편지가 낭독된다.

"말 안 하고 알아달라고 하는 게 많이 이기적인 거 아는데 부끄럽잖아. 이런 말 하는 거. 아빠 내가 진짜 많이 존경하고 항상 감사하고. 너무너무 사랑해. 우리 아빠가 아빠라서 너무 행복하고. 조금 더 힘내서 세상에 보여주자. 정의가 이긴다는 걸." (234쪽)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언론 자유가 30년 전으로 후퇴한 것이 우리 사회의 현실이었다. 매년 세계 언론자유도 순위표에서 한국의 자리가 내려가는 걸 봐야 했다. 거대 자본, 그리고 권력과 결탁한 언론은 관성에 의지를 더해 썩어가는 중이었다. 그걸 되돌린 것은 한평생 올곧은 길만을 걸어오길 결심한 한 사람의 굳은 의지였다.

<손석희 현상> 표지 © 인물과사상사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에 들어간다고 말했던 사람은 많다. JTBC 행을 결정한 손석희에 대해서, 3당 합당 당시 김영삼에 비교한 사람이 있었다. 부끄럽지만, 나도 당시의 손석희에 대해 그렇게 생각했다. 별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내린 결론이었다.

검은 페인트 통에 흰 페인트 한 방울 떨어진다고 뭐가 바뀌냐고 한 사람도 있다. 현대 흑인 문학 걸작, 랠프 엘리슨의 <투명인간>에는 이런 얘기도 나온다. 흰 페인트를 만들 때 검은 안료를 약간 섞는데, 그래야 더 흰 페인트가 되기 때문이란다. 어느 쪽이든, JTBC와 손석희의 만남은 손석희의 패배라는 논리다. 그런데 현실은 달랐다. 검은 페인트 통에 떨어진 흰색 물감 한 방울이 전체를 정화해 버렸다. 마법과도 같은 일이 현실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그해 겨울은 영화보다 더 극적이었다.


2016년 12월 10일, 광화문에서 촛불을 든 한 어린이의 모습 ©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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