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권 자기 혁명] 히쓰 형제의 <자신있게 결정하라>
<자신있게 결정하라>의 저자 히쓰 형제는 클레어벨이라는 네티즌이 올린 사연을 소개한다. 남친은 너무 마음에 들지만 그 가족이 정말 끔찍하다는 고민이었다. 많은 댓글이 달렸는데, 그중 65%가 양자택일을 종용했다. 남친과 헤어질 것인가 말 것인가, 사랑을 우선할 것인가 정신건강을 우선할 것인가 따위의 틀에 갖힌 대답이 대부분이었다.
십대들은 자신이 택할 수 있는 여러 대안을 보지 못한다. 그저, "파티에 갈까 말까?"에만 골몰하기 일쑤다. 머릿속의 스포트라이트가 파티만 비추는 가운데 다른 선택안들은 생각해보지도 않는 것이다. (59쪽)
그런데 수 억 달러의 돈을 좌지우지하는 기업가의 결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히쓰 형제의 지적이다. 1994년 식료품 회사 퀘이커는 음료 브랜드 스내플을 18억 달러에 인수했다. 이사회 만장일치 결정이었다. 이사회는 10년 전 게토레이 브랜드를 인수해서 성공적으로 키워낸 CEO의 직감을 신뢰했다. 그러나 이것은 역사상 최악의 기업 인수 중 하나였다. 퀘이커는 3년 만에 스내플 브랜드를 3억 달러라는 헐값에 팔아야 했다. 18억 달러라는 인수 가격에 많은 분석가들이 우려를 표명했지만, 이사들의 머릿속에는 찬성이냐 반대냐 하는 양자택일의 선택지만 존재했다.
틀 밖에서 생각하기
화학자 프리스틀리는 1772년 가을, 유사한 양자택일의 문제에 직면해 있었다. 목사로 일하며 여덟 자녀를 부양하던 그는 늘 돈이 부족했다. 한 백작이 자신의 조언자 겸 자녀들의 가정교사로 일할 것을 그에게 제안했다. 높은 연봉을 제외하면 단점이 많은 제안이었다. 프리스틀리는 연구 시간이 부족할 것도, 나중에 백작과 관계가 틀어져서 해고될 경우 경제적으로 불안정해지는 것도 걱정되었다.
백작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인지 말 것인지, 전형적인 양자택일의 문제였지만 프리스틀리는 문제를 입체적으로 분해하고 재조립했다. 백작 제안의 장단점을 목록화한 그는,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이는 방식으로 계약서를 만들어 백작에게 역제안을 했다. 그는 연구 시간을 보장받고, 나중에 백작과의 고용 관계가 종료되어도 평생 연금을 받는 조건으로 백작과 계약했다. 틀 밖에서 생각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자신 있게 결정하라>는 의사결정을 나락으로 몰고 가는 네 종류의 방해물을 설명하고, 이를 극복할 방안을 아래와 같이 제시한다.
첫 번째 방해물은 범위 한정 성향이다. 몇 가지 선택지에 매몰되어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대개의 경우 선택지는 둘셋 밖에 되지 않는다.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남친과 헤어져야 하는지, 점심은 피자, 햄버거, 김밥 중에 뭘 먹을지 고민하는 경우다.
범위 한정 성향에 대한 해결책은 틀 밖에서 생각하는 것이다. 저자는 어디선가 갑자기 나타난 요정이 선택지를 모두 없애버렸다고 상상하라고 제안한다. 선택지가 모두 사라졌으니, 백지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프리스틀리가 했던 것처럼, 선택지의 장단점을 모두 적어보고 새로운 조합의 선택지를 만들면 된다. 유사한 문제를 이미 해결한 사람의 사례를 살펴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클레어벨의 경우라면, 문제를 남친과 헤어질 것인가 말 것인가의 선택으로 환원하는 대신, 남친과의 관계는 유지하고 남친 가족과의 관계는 개선하는 방향으로 재조립할 수 있다.
두 번째 방해물은 확증 편향이다. 하나의 선택지를 마음속에 이미 결정해 놓고, 그 결정을 지지하는 증거만 찾아다니는 것이다. 투자자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류다. 자신의 결정을 지지하는 증거는 적극 수용하지만, 반대되는 증거는 외면하거나 축소해석하려는 성향이다.
확증 편향에 맞서 싸우려면 불편한 질문을 직면해야 한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닐까 하는 질문이 그것이다. 대개의 경우,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재점검하는 것은 별 효과가 없다. 다른 사람들의 평가를 들어보고, 객관적 데이터를 찾아 나서야 한다.
많은 기업들이 중요한 결정에 앞서 '악마의 변호인'을 활용한다. 이들의 역할은 조직의 결정에서 흠집을 찾는 것이다. 동료들이 오랫동안 숙고해서 내놓은 결과물에서 흠을 찾다 보면 감정이 고조되고 팀워크가 와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비대한 조직에서 흔히 나타나는 '집단사고'를 회피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반대의견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발 살짝 담궈보기' 전략도 좋다. 인재를 채용하고자 할 때,수습 계약을 통해 채용 대상자가 직접 일하는 모습을 단기간 관찰해 보면 면접보다 훨씬 더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정식 출시 전에 시제품을 활용해 시장 반응을 알아보는 것도 좋다.
세 번째 방해물은 단기적 감정 동요다. 결정의 부담은 스트레스를 불러온다. 스트레스는 성급하고 나쁜 결정으로 귀결될 수 있다.
감정은 단기적이다. 나중에 후회할 결정을 하지 않기 위해서는 거리를 둬야 한다. 약간의 창의성이 필요한 일이지만,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판단해 보는 것이 최선이다. '다른 사람'은 상황에 맞게 정할 수 있다. 주식 투자 결정이라면 워런 버핏의 입장에서, 개인적인 고민이라면 가까운 친구의 입장에서, 회사 업무라면 전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라고 저자들은 제안한다.
심리적 거리가 잘 확보되지 않는다면, 우선순위가 잘못된 경우가 많다. 스티븐 코비의 '중요한 것 먼저' 원칙을 지켜라.
인터플라스트라는 비영리단체는 개도국 아이들의 입술 기형을 치료하는 것이 사명이다. 그런데 의사를 개도국으로 파견할 때 가족 동반을 허용할 것인지가 문제가 되었고, 단체는 두 파로 나뉘어 극단적으로 대립했다. 그런데 어느날 신임 이사 한 명이 날카로운 질문을 던졌다. 우리의 고객은 의사인가, 환자인가?
결국 인터플라스트의 문제는 근본 가치와 우선순위의 문제였다. 인터플라스트는 의사를 직접 파견하는 대신 현지 의사를 고용해서 아이들의 기형을 치료했다. 현안에 매몰되어 목적과 수단이 전도되는 일은 종종 감정적 동요로 이어진다. 문제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나면 감정적 동요는 사라진다.
네 번째 방해물은 과신 편향이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중간 이상은 한다고 생각한다. 투자할 주식도 내가 직접 골라야 하고, 막히는 귀경길에서 운전도 내가 하는 것이 낫다는 믿음이다.
과신 편향에 대한 대비는 철저한 사전 준비뿐이다. 경영학계에 '사전부검(premortem)'이 화두가 된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무엇이 잘못될 수 있는지, 미리 생각해 보고 대비하는 것이다.
1981년 디지털 사진 기술을 개발한 코닥은 내부 검토를 통해 이것이 큰 위협이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디지털 이미지는 기존 사진에 비해 선명도도 떨어지고 비싼데다, 사람들은 사진을 직접 손으로 만지고 싶어한다는 이유였다. 자신의 결론을 맹신한 채로(과신 편향), 그 결론에 맞는 이유만을 늘어 놓은(확증편향)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코닥은 단 한 가지 질문, 즉 "만약 디지털 세상이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질문 하나만으로도 파국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전부검은 제대로 해야 한다.
선택지를 없애는 요정 (Option-removing Genie)
이 책에서 히쓰 형제는 의사 결정의 네 가지 방해물과 그 해결책을 제시한다. 좋은 책에는 배울 점이 가득 들어 있는 법이지만, 과욕은 포기를 부른다. 그래서 나는 이 책에서 가져갈 단 하나의 실천 아이템으로 '선택지를 없애는 요정'을 제안한다.
우리는 종종 범위 한정 성향에 빠져 좁은 시야로 세상을 본다. 처음으로 돌아가 클레어벨의 사례를 생각해보자. 그녀는 남친에게 부탁해서 남친 가족과의 관계를 개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친과 헤어질 것인가 참고 사귈 것인가 하는 양자택일의 문제를 고민하고 있다. 이때 마술 램프에서 요정이 나타나 선택지를 전부 없애버린다고 생각해보자. 문제를 근본에서 다시 살펴볼 수 있고, 해결책을 좀 더 넓은 범위에서 찾아볼 수 있다. 산소를 발견한 천재 화학자 프리스틀리가 아니더라도 선택지를 재조합하는 화학적 비법은 누구나 활용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