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권 자기 혁명] 니시우치 히로무의 <가위바위보 이기는 법>
일본 도시 전설에 '소니 타이머'라는 것이 있다. 소니는 전자제품을 만들 때, 5년쯤 지나 신제품이 나올 시기에 맞추어 고장이 나도록 교묘한 장치를 해 놓는다는 이야기다. 나 역시 D사 컴퓨터가 보증 기간 종료 나흘 만에 고장 난 경험이 있다. 정말 그런 타이머가 있는 걸까?
일본 인구는 1억이 넘고, 대개 소니 제품 한두 개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림잡아 1억 개의 소니 전자 제품이 있다고 가정하면, 특정 시기, 예를 들어 2017년 11월에 전체의 0.001%가 고장 난다고 하더라도 그 수는 1000개에 달한다.
그런데 소니는 지속해서 신제품을 출시하고 있으므로, 그중 몇백 개는 신제품과 같은 제품군에 속할 것이다. 신제품 출시에 맞추어 자기가 가진 제품이 고장 나는 우연이 발생했다면, 언젠가 들어본 '소니 타이머' 이야기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데이비드 핸드는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에서 왜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가 하는 질문을 통계학의 시각에서 접근한다. '소니 타이머'의 예는 '아주 큰 수의 법칙'에 의해 설명된다. 아무리 확률이 작은 사건이라도, 충분히 많은 시도가 이루어지면 결국 그 사건은 발생하기 마련이다. 1할 타자도 언젠가는 안타를 친다.
통계적 사고
존이라는 사람이 있다. 천체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한동안 연구실에서 일하다가 알고리즘 매매 회사에 취직하여 금융시장의 변동을 예측하는 매우 정교한 통계학 모형을 만들었다. 그는 과학소설 동호회의 열혈 회원이기도 하다. 이 사람에 대해서, 다음 두 개의 진술 중 어느 쪽이 옳다고 생각하는가?
1. 존은 두 아이의 아빠이다.
2. 존은 두 아이의 아빠이고, 퇴근 후에는 수학 퍼즐을 풀거나 컴퓨터 게임을 한다.
2번을 골랐다면 잠깐 반성하자. 우리는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 이미 비슷한 문제를 만났다. 그런데 이 문제는 사실 더 뻔한 문제다. 2번 진술에 해당하는 사람의 집합은 1번 진술 해당 집합의 부분집합이기 때문이다. 2번 진술이 참인 모든 사람에게 1번 진술도 참이다. 이렇게 뻔한 확률을 거부하는 우리의 뇌는 뭐가 잘못된 걸까?
이 사례는 '결합오류'를 보여준다. 두 개의 독립 사건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그중 한 사건이 일어나는 확률보다 높다고 판단하는 오류다. 우리 뇌는 이야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이런 실수를 한다.
사람들은 존에 대한 서술을 기반으로 두 개의 진술 중 어느 것이 맞을까 생각해야 함에도, 거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래의 두 개 진술 중 하나에서 시작해서 앞의 서술이 맞을 확률을 생각한다는 것이다. 1번 진술의 사람보다는 2번 진술의 사람이 천체물리학, 통계학 모형, 과학소설 동호회와 어울리므로 2번을 선택하게 된다. 이것을 '검사(檢事)의 오류' 또는 '뒤집힌 조건문의 법칙'이라 부른다.
니시우치 히로무는 <통계의 힘>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도쿄대 교수다. <무조건 가위바위보 이기는 법>은 일상생활에서 올바른 결정을 내리기 위해 확률과 통계에 기반한 사고방식을 습관화하자는 내용이다.
총 판매금액의 50%를 당첨금으로 나누어 주는 복권을 생각해 보자. 전체적으로 보면 기댓값이 10원당 5원인 게임이므로 기댓값이 음수인 이런 게임은 하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그러나 복권을 어차피 구입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가정하고 당첨확률을 높일 방법을 생각해 보자.
로또의 경우, 숫자를 무작위로 하는 경우도 많지만 직접 고르는 사람들도 많다. 단순하게 생각하여 1~10중 하나의 숫자를 고르는 복권이 있다고 하면, 사람들은 좋아하는 숫자인 3이나 7을 많이 살 것이고, 불길하게 여겨지는 숫자인 4를 아마도 가장 적게 살 것이다. 이럴 때 4를 고른다면, 같은 돈을 내고 구입한 복권의 기댓값을 크게 높일 수 있다.
로또 당첨자가 없어서 이월된 경우는 어떨까? 지난번 당첨 숫자는 아무도 사지 않았다는 의미이므로, 지난번 당첨 숫자와 정확하게 똑같은 숫자를 사는 것도 좋은 전략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다른 사람들도 꽤 있을 것이므로 그 점은 고려해야 한다.
포탄을 피하는 방법
어떤 만화에서 본 장면이다. 주인공과 친구들이 전쟁 한복판에 떨어졌는데, 포탄이 떨어져 구멍이 생기자 한 친구가 그 안에 들어간다. 왜 재수 없게 포탄 구덩이로 숨느냐는 질문에, 그 친구는 답한다. 아무리 정확하게 쏘아도 똑같은 위치에 맞출 수는 없다고.
로또 당첨 번호가 2주 연속으로 같게 나온다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 검찰 수사 청원이 올라올 것이다. 그러나 포탄 사격이나 로또 추첨은 독립사건이다. 포탄을 앞에 쏜 그 자리에 정확하게 맞추려고 하는 것은 어렵겠지만, 저 경우 포탄은 그냥 적진에다 대고 무차별하게 발사했을 것이다. 따라서 그 구덩이에 다시 포탄이 떨어질 확률은 다른 어느 위치와도 다르지 않다. 로또 추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동전을 열 번 던져 아홉 번 앞면이 나왔다고 가정해 보자. 사람들은 이 경우 다음 열 번에는 뒷면이 압도적으로 많이 나오리라 추측한다. 동전 던지기의 확률은 50%라는 생각에 매몰된 것이다. 동전을 다시 던지는 일은 앞의 동전 던지기와는 무관한 독립 사건이다. 따라서 다음 열 번의 던지기에도 다섯 번 정도 앞면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다.
물론 이런 생각은 던지기에 사용된 동전이 사기 동전이 아니라는 가정하에 성립하는 것이다. 동전을 열 번, 스무 번 던져 앞면이 이상하게 많이 나온다면 동전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 보는 것이 현명한 생각이다.
경마에서는 남들이 고르지 않는 말을 고르는 것이 훌륭한 전략이 아니다. 배당금액은 높지만, 그것은 그 말의 우승확률이 낮음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숫자 뽑기에서 모든 숫자가 뽑힐 확률이 같은 것과는 달리, 경마에서는 말마다 우승 확률이 다르다. 그래서 사람들은 어느 말이 기본 체력이 뛰어난지, 오늘 컨디션이 좋은지를 알아내려고 애를 쓴다. 편향을 발견해서 기댓값을 높이려는 통계적 사고를 은연중에 하는 것이다. 역시 돈은 위대하다.
통계적 사고가 필요할 때
니시우치 히로무는 통계를 활용한 의사 결정이 후회와 불안을 최소화해준다고 한다. 심사숙고하여 최선이라고 생각한 결정을 따르면 후회의 여지가 줄어든다. 좀 더 생각하지 않고 무턱대고 도전한 결과가 실패로 나타날 때, 우리는 후회를 가지고 과거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다.
자기 안에서 정리가 되어 '이것이 최선이다'라는 신념을 갖고 도전했는데 실패하게 된 일은 전혀 자신의 가치를 훼손하지 않기에 후회하며 괴로워할 일도 없다. (32쪽)
불안 역시 불확실성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순간 대타를 내보내는 야구 감독의 마음은 불안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가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를 이용해서 최선의 선택을 했다면, 그의 머릿속에는 앞으로 벌어질 다양한 시나리오가 정리된 상태일 것이다. 상황에 대한 정리는 불안감을 크게 줄여준다.
통계적 사고는 반드시 최고의 선택지를 골라주는 것도 아니고,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결정이라면 '운칠기삼'의 3에 해당하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진인사대천명이란 멋진 말도 있지 않은가. 최소한, 경우의 수를 한 번 종이 위에 그려보는 것 정도는 해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이 책에서 배워야 할, 삶을 대하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