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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26. 처단

by 히말

“남궁훤! 내가 잘못 본 게 아니었군!”

“갑자기 사라지는 거, 나도 봤어!”

다들 한마디씩 했다.


한상태가 의견을 냈다.

“일단, 본인 의견을 들어보고, 어떻게 할지 의논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놈이 아직도 던전 내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당연히 본인 말을 들어는 봐야죠. 그 후에는 반쯤 죽이겠지만.”

“고의가 아니라 실수라고 해도, 도망을 갔다면 그걸로 끝난 겁니다. 100% 죄를 물어야 해요!”


“오늘 이대로 더 전진하는 것은 어렵지 않나요?”

길수연이었다.


성나린이 동의했다.

“전원 탈진에, 스킬 쓸 책도 남아 있지 않아요. 힐링 포션을 사기 위해서라도 입구 오두막에 다시 들러야 할 것 같은데요.”


“이대로 2층에 올라가면 답이 없어요. 일단 입구 오두막으로 후퇴해서, 정비도 하고 남궁훤 문제도 논의해야 합니다.”

“남궁훤은 어떻게 합니까? 당장 찾아내야죠!”

“던전 바깥으로 나갔을 수도 있잖아요.”

“그럼 기자들에게 우리들이 전멸했다고 말했겠군요.”

“만약 그랬다면, 던전 밀고 나서 죄를 물으면 됩니다.”


***


남궁훤은 기가 막혔다.

어떻게 한꺼번에 덤벼든 오크 30마리를 전멸시켰지?

게다가 공격대원은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다.

탱커 한상태와 힐러 길수연을 너무 우습게 봤나?


애드가 발생했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공격대원 중 단 한 명이 사라졌다는 것도.

목격자가 없더라도 의심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한길협에서 제명되는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공격대원 14명과 그들의 소속 길드뿐 아니라, 모든 구원자들이 그를 적대시할 것이다.

아니, 적대시가 아니라 죽이려 들지 않을까?


빠르게 던전을 나가서, 다른 나라로 도망을 가는 수밖에 없다.

기자들 따위 무시하고 살기 위해 달려야 한다.


‘이상덕한테 도움을 구해야 하나? 아니, 직접 일을 시킨 건 사무총장 신학길이니, 그자에게 말해야 하나?’


절망적이게도, 둘 다 믿음이 가지 않았다.

실패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면, 당연히 도움을 거절할 것이다.

성공했다고 거짓말을 한다면, 박충기를 제거했다는 증거를 요구할 것이다.

며칠 기다려보고, 박충기가 죽은 것이 확실해지면 대가를 지급하겠다고 말하겠지.


‘이렇게 된 거. 신학길 이 새끼라도 죽이고 제3국으로 떠야겠다.’


남궁훤은 수풀 사이를 최대한 조용하게 이동했다.


***


박충기에게 소현배가 다가왔다.

소현배는 문경새재 길드 간사다.


“박충기 대장.”

“왜?”

“남궁훤이 고의로 그런 일을 벌였다면, 배후가 있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누구? 설마, 이상덕이?”


박충기 입에서 이상덕 이름이 튀어나오는 데는 0.1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렇다고 봐야죠.”

“그 자식이 개자식인 건 맞지만, 정말 이런 짓까지 했다고?”

“그걸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남궁훤을 잡아야 합니다.”

“벌써 도망가지 않았을까?”


“사주를 받은 거라면, 대장 시체를 확인하려고 싸움을 지켜봤을 겁니다. 소멸 스킬을 익힌 놈이니 일도 아니죠.”

“지금 가서 붙잡자는 거야?”

“도망가지 못하도록 오두막만 지키면 됩니다.”

“그렇군. 그렇다면 빨리 움직여야겠는데.”


“놈과 레벨이 비슷한 제가 가겠습니다. 하지만 우리들은 오크 무더기 잡느라고 스킬이 남은 게 없으니, 누군가 같이 가야 합니다.”

“누구?”

“우리 길드 내에서 해결해야죠. 장혁수와 제가 가겠습니다.”


***


입구에서 2층 계단까지 길을 뚫어 놓았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몹 무리가 많다.

정확히 갔던 길을 되돌아 오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그건 공격대도, 남궁훤도 마찬가지였다.


공격대는 몹 무리만 피해서 움직이면 되지만, 남궁훤은 공격대에게도 들키지 말아야 한다.

그래서 에둘러 오느라 꽤 시간이 걸렸다.

오두막이 보이는 공터까지 와서 한숨을 돌린 남궁훤.

아직 공격대는 도착하지 않은 모양이다.


“남궁훤.”

나무 뒤에서 사람 하나가 나오며 말했다.


“헉, 뭐냐? 장혁수? 왜 여기 있지?”

“선배 덕분이지. 오크 30마리 잡느라고 정말 죽을 뻔했네. 좋은 경험이야. 경험치 바가 많이 찼어.”

“무슨 소리야?”


“네가 독화살 날려서 오크 무리 끌어오는 거, 내가 다 봤거든. 나는 탱커가 완전히 자리를 잡은 다음에 움직이는 주의라서 말야. 네가 독화살 날릴 때까지만 해도, 놀고 있었거든.”

“무슨 소리냐? 독화살이라니?”


“시치미 떼지 마시고. 할 말이 있으면 나랑 같이 갑시다. 박충기 공격대장이 기다리시고 계시니.”

“어, 어디에 있는데? 박충기 대장.”

“한 10분쯤 있으면 도착할걸?”

“아, 그래? 아직이란 말이지?”


웃는 표정으로 남궁훤이 숏소드 ‘오캄’을 꺼냈다.

장혁수도 자신의 무기 다마스커스를 꺼냈다.


남궁훤의 무기가 장혁수의 무기보다 월등히 좋다.

둘 다 그걸 잘 알고 있다.

무기도, 레벨도 현격한 차이.

남궁훤이 싱긋 웃자, 장혁수의 등을 타고 땀방울이 흘렀다.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지, 장혁수는 불리한 상황에도 상대를 도발했다.

“무기를 꺼냈단 말이지? 이건 실토나 다름없는데.”


“약쟁이 애송이. 한 수 가르쳐주마.”

남궁훤이 단검을 치켜들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귀검!"

남궁훤이 전광석화와 같이 움직이며 장혁수의 오른팔을 치고 지나갔다.

장혁수가 다마스커스로 맞받아 치려고 했지만, 상대방이 너무 빨랐다.


“으아아악!”

장혁수는 오른팔을 감싸 쥐고 바닥에 쓰러져서 울부짖었다.

무기도 이미 내팽개친 뒤다.

“파, 팔이…”


“그러게, 꼬맹아. 왜 까부냔 말이다.”

남궁훤은 바닥에 떨어진 장혁수의 다마스커스를 슬쩍 보았다.

레어템이지만 몇천만 원은 한다.

그걸 집어 인벤토리에 넣으려면 장혁수를 좀 멀리 치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남궁훤은 바닥에 쓰러져 울부짖는 장혁수의 복부에 발차기를 한 대 먹였다.


“끄억!”

장혁수가 고통에 숨을 삼키면서 옆으로 굴렀다.


그때.


휘유우우!

퍽!


“컥!”

어디선가 날아온 화살이 남궁훤의 왼쪽 어깨에 박혔다.

남궁훤은 왼손으로 들어 올리던 다마스커스를 떨어뜨렸다.


휘유우우!


또 하나의 화살이 날아왔다.


퍽!


“으아악!”

남궁훤은 몸을 숙여 피하려고 했지만, 이번에는 다리였다.


휘유우우!


계속해서 공기를 가르는 새된 위협음이 이어졌다.


퍽!


이번에는 오른팔.

고통을 못 이기고 남궁훤은 바닥에 쓰러졌다.


‘소멸… 소멸!’

소멸 스킬을 시전하려고 했지만, 정신 집중이 되지 않았다.


‘이런 젠장, ‘물의 화살’인가? 말로만 듣던…’

침묵 효과를 가진 스나이퍼의 속성 화살.

소멸을 쓰고 어디론가 숨어버려야 하는데, 스킬 발동이 봉쇄되었다.


휘유우우!


또다시 공기를 가르는 무서운 소리가 들렸다.

이제 틀렸다는 생각에, 힘이 풀린 남궁훤은 바닥에 드러누웠다.

스나이퍼 소현배의 얼굴이 떠올랐다.


소현배라면, 길드 문경새재.

제대로 보복을 당한 것이다.


“제기랄.”


한쪽 팔에서 피를 철철 흘리는 장혁수가 악귀와 같은 표정을 하고 그를 향해 달려드는 모습.

그걸 보며 남궁훤은 눈을 감았다.


장혁수.png 장혁수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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