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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구원자가 된다 ep 27. 노획

by 히말

“이런 열여덟. ㅈㄴ 아프네.”

연신 욕을 해대면서 장혁수는 자판기에서 뽑은 힐링 포션을 들이켰다.

떨어져 나갈 것 같던 팔이 빠르게 아물었다.

오른손을 쥐었다 폈다, 반복해 보았다.

다 나은 것 같다.


“어때요? 간지 나죠?”

장혁수는 새로 얻은 검을 휘둘러 보였다.


- 오캄.

- 숏소드. 에픽 등급.

- 대미지 등급 D. 공격속도 2.5초.

- 발동 효과: 자신에게 가해진 ‘설명이 복잡한’ 스킬을 무효화합니다.


‘오캄의 면도날’에서 유래한 이름, 오캄.

그러니까 말도 안 되는 억지 설명은 아예 듣지 않겠다, 무시하겠다는 발동 효과다.

어떤 스킬이 무효화 되는지는 아마 주인인 남궁훤도 잘 몰랐을 것이다.

경험으로 하나하나 알아가는 수밖에 없으니.


공격속도도 빠른 한손검이니 탱킹에도 좋다.

힐러를 제외하면 누구라도 탐낼 만한 무기.

그걸 들고 빙빙 돌리면서 장혁수는 연신 웃어댔다.


“그거, 네 꺼 아니다. 일단 들고만 있어라.” 소현배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씨, 이게 내 꺼지, 왜 아녜요? 팔 떨어지는 줄 알았구만. 내가 탱킹했고, 내가 죽였는데.”

“미끼 역할은 잘했다만, 죽이지는 말았어야지.”

“날 죽이려고 한 놈인데, 살려두라고요?”


“누가 사주한 일인지 알아냈어야지.” 소현배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확실한 증거를 잡을 수 있었는데, 네가 망친 거야."

“전 그냥 한두 번 찔렀을 뿐이잖아요! 현배 씨는 화살을 도대체 몇 발을 맞춘 거야? 하나, 둘…”

장혁수가 손가락으로 셈하는 시늉을 했다.


“젠장. 이렇게 될 줄 몰랐는데. 죽이게 될 줄이야.” 소현배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손톱을 씹어댔다.

“죽일 놈이잖아요.” 장혁수가 가볍게 응대했다.

“어떻게 설명할 거야? 우릴 죽이려고 해서 죽였다고?”

“걱정 마세요. 그놈이 ’나를’ 죽이려고 해서 죽일 수 밖에 없었다고 말할 겁니다. 현배 씨는, 말마따나 죽이려는 생각이 없었던 것 같네요.”


소현배는 시체가 돼버린 남궁훤을 바라보며 조금 전 상황을 되돌아 보았다.


화살을 여러 대 맞고 바닥에 쓰러진 남궁훤을 향해 장혁수는 괴수처럼 울부짖으며 달려들었다.

남궁훤의 일격에 떨어뜨렸던 다마스커스를 왼손에 들고, 그는 쓰러진 남궁훤의 위에 올라타 난도질을 시작했다.

한두 번 찌른 게 아니다.

가죽 갑옷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찌르고 또 찔렀다.

피가 줄줄 흐르는 오른팔을 치료할 생각은 안 하고, 오직 복수귀가 되어 날뛰는 모습이었다.


‘살인마를 보는 것 같다. 설마, 저놈은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는 걸까?’


일어선 다음에도, 장혁수는 넝마 꼴이 된 남궁훤의 시체에 침을 뱉고, 발로 몇 번을 더 걷어찼다.

분풀이에 만족한다는 듯, 묘하게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낸 뒤, 장혁수는 오두막으로 들어가 자판기에서 힐링 포션을 샀다.


갑자기 아파 죽겠다면서 온갖 엄살을 떨면서, 힐링 포션을 들이키는 장혁수는 조금 전까지와는 다른 사람 같아 보였다.

마치, 광란 효과가 풀린 오크 같았다.


“죽인 건 아쉽지만, 놈이 고의로 우리를 함정에 빠뜨린 건 확실하니까.” 소현배가 체념하듯 말했다.

“그럼요. 아까 제 입으로 그렇게 말했잖아요.”

“말이 아니라 행동이기는 했지만, 자백한 거나 다름없지.”

“내 말이 그말예요.”


“그러니까, 내가 옹호해 주겠다는 거야.”

“그건 당연한 거 아녜요? 사람을 미끼로 써서 칼침을 맞게 했으면서. 무슨 선심이라도 쓴다는 듯이.”

“그래, 그래. 네 말이 맞다. 이번 일에는 네 공이 커. 그것도 대장에게 잘 이야기해줄게.”

“히힛. 고맙군요, 그건. 캬캬캬.”


기괴하게 웃는 장혁수를 보니 소현배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저놈. 정말 같은 편에 둬도 괜찮을까?’


장혁수는 노획한 오캄을 이리저리 돌려보며 웃었다.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소현배는 목소리에 힘을 실어 말했다.

“레벨 차이에도 불구하고, 잘 싸워줬어. 그건 인정하지. 하지만 그 칼, ‘오캄’은 안 돼. 사람을 죽이고 빼앗은 물건을, 전리품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에? 왜 아니에요? 전리품이지.”

“지금 너랑 말싸움할 기분 아니다. 암튼 이제 조금 있으면 공격대가 도착할 거야. 박충기 대장이 알아서 처리하겠지.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다. 너도 쉬어.”

“네, 그러죠, 뭐. 히힛! 이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캬캬캬!”


***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에 소현배는 잠에서 깼다.

본대가 도착한 것이다.

사람들은 거적때기로 덮지도 않은 채 방치된 남궁훤의 시체를 보고 기겁을 했다.


“꺄악! 시, 시체가.”

“남궁훤인가?”

“저렇게 잔인하게…”

“아주 피떡을 만들어 놨군.”

“둘이 저렇게 한 거예요? 소현배, 장혁수가?”


오두막 문을 열고 나오는 소현배를 향해 박충기가 물었다.


“이거, 네가 한 짓이냐, 설마?”

“화살은, 제가 맞습니다.”

“난도질은?”

“장혁수요.”

“어디 있어?”

“근처에 없나요?”


소현배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장혁수는 어디에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피곤해서 잠깐 눈을 붙였는데, 잠이 들었고, 그 사이에 장혁수는 어디론가 가버린 모양이었다.


‘설마, 미쳐버린 건 아니겠지. 남궁훤을 죽이고 나서 눈빛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주변 사람들에게 장혁수를 찾아볼 것을 부탁하고, 박충기는 소현배에게 물었다.

“그래서, 현배야. 놈이 자백을 했냐?”

“네. 말로 한 건 아니었지만, 자꾸 추궁을 하니까, 장혁수를 죽이려고 무기를 꺼냈습니다. 실제로 공격도 했고요. 그걸로 충분히 증거가 되지 않을까요?”


“2대1인데 덤볐단 말야?”

“아, 그건 아니고, 제가 장혁수를 미끼로 썼습니다.”

“미끼?”

“장혁수가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놈을 추궁하고, 놈이 발뺌을 하거나 장혁수를 공격하면 내가 스나이핑 하기로 했습니다.”


“그랬더니 공격했다?”

“네. 박충기 대장은 나중에 도착할 거라고 하니 웃으면서 칼을 꺼내더군요.”

“내가 목표였다는 걸 인정한 거야?”

“대놓고 인정했다고 보기에는 애매하죠. 하지만 애드를 낸 것이 고의라는 건 확실합니다. 누군가 사주를 했냐는 질문에도 과잉반응을 한 걸 보면, 사주도 있었던 것 같고요. 그렇다면 정황상 누가 사주를 했는지는 뻔한 것 아닙니까?”


“알았다. 수고 많았다.”

만족할 만한 증거는 못 잡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박충기가 소현배의 어깨를 토닥거렸다.


“그런데, 대장님.”

“응?”

“장혁수가 남궁훤이 가지고 있던 무기를 빼앗았습니다. 그게 자기 전리품이라고.”

“내가 잘 타이를게. 그건 우리들 사이에서 경매라도 해서 힐링 포션 사는 데라도 보태야지.”

“네. 제 생각도 그렇습니다.”

“너와 혁수가 수고한 데 대해서는, 나중에 길드에 돌아가서 사례를 하마.”


공격대원들이 근처의 숲에서 장혁수를 발견했다.

늑대 시체에 난도질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눈이 풀려 있는 듯도 하고, 기묘하게 웃고 있는 듯도 한, 무서운 얼굴이었다고 한다.

역시 약쟁이라고, 조심해야겠다고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박충기는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당사자인 소현배는 부아가 치밀었다.

박충기는 길드에서 오캄을 구입해서 장혁수에게 상으로 주겠다고 했다.


장혁수의 아버지, 즉 장오현이 회장으로 있는 대기업, 서라벌 그룹은 문경새재 길드의 메인 스폰서다.

제멋대로인 장혁수를 길마인 박충기가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건 그 때문이었다.


‘제길. 이럴 줄 알았으면 저놈을 미끼로 쓰지 않는 건데.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이고 그 무기까지 낼름 할 줄이야.’


결국 남궁훤의 목숨을 끊은 자가 그의 무기조차 탈취하게 된 셈.

사람들은 단순하지만 무서운 사실을 실감했다.

구원자에게 최고의 사냥감은 구원자라는 사실을.


소현배.png 소현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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