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을 취하면서 공격대는 앞으로의 일을 논의했다.
힐링 포션은 보충하면 되지만, 자정이 되기 전까지 스킬에 필요한 책은 재생되지 않는다.
물론, 제일 큰 문제는 인원이 하나 준 것이다.
게다가, 남궁훤은 전체에서 네 번째로 높은 레벨이었다.
자판기 앞이 성황이었다.
다 떨어진 힐링 포션을 채워 넣는 사람들.
돈이 없다면서 골드를 빌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길드 마스터가 셋이나 있는 공격대.
골드는 얼마든지 있었다.
단지, 바깥세상처럼 빈부격차가 존재할 뿐이다.
이준기는 얼음 화살을 10개 더 샀다.
화살 20개까지는 인벤토리 한 칸을 차지한다.
그래서 20개를 샀던 것인데, 이제 10개를 더 샀으니 인벤토리 압박이 심해졌다.
얼음 화살 30개, 화염 정령 한 마리당 세 발씩 쓴다면 10마리, 네 발씩 쓴다면 일곱 마리를 잡을 수 있다.
‘애매한데.’
이준기는 짧게 한숨을 쉬고 얼음 화살 10개를 더 샀다.
40개면 안전마진까지 고려해도 충분하다.
이렇게 마세라티 판 돈이 전부 사라졌다.
짧은 점심 식사를 마치고, 공격대원들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2시도 되지 않았다.
원래 계획대로, 오늘은 2층까지 진행하기로 결정했다.
공격대장 박충기의 마법막대 '파이어스타터'는 에픽급이고, 메인 탱커 한상태의 방패 '아스트라아제'는 무려 전설급이다.
이들 아이템보다 덜 유명하기는 해도, 에픽급 장비를 갖춘 이들이 몇몇 더 있었다.
너무 들이대지만 않는다면, 평타로 충분히 진행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
2층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 도착했다.
공격대장 박충기가 멤버들을 향해 간단히 말했다.
뒤는 없다는 각오를 해달라는 당부였다.
“2층이라. 긴장되는군. 준기는 긴장 안 돼?”
윤동직의 물음에 이준기는 모범생 대답을 했다.
“왜 아니겠어요. 긴장도 되고, 기대도 됩니다.”
3소대는 이제 4명으로 줄었다.
레벨이 제일 높은 문아린이 다시 2소대로 갔다.
“아쉽네요. 사상 최강의 루키, 준기님 활약을 좀 더 봐야 되는데.”
문아린이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바로 옆인데요, 뭐.”
“그건 그렇지만, 그래도 제 맘이 좀 그렇네요."
점검을 마치고, 공격대원은 대열을 지키면서 계단을 올랐다.
조용한 가운데 긴장감이 흘렀다.
- 2층으로 입장하시겠습니까? 1층으로 다시 내려올 경우 퇴각 페널티가 적용됩니다.
‘예’를 클릭했다.
주변이 빛으로 가득 차더니 모두의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다.
“삭막하잖아!”
“황무지군.”
“다른 던전이라는 느낌인데."
녹음이 가득하던 1층과 달리, 2층은 황무지의 적갈색으로 꽉 차 있었다.
무수한 선인장.
나무도 많이 있었지만, 푸르른 잎이 무성한 그런 나무는 아니었다.
지구의 식물과는 다른 것들이지만, 구원자들은 그냥 비슷하게 생긴 지구 식물 이름으로 불렀다.
'오크어로는 ‘빌게’라고 부르지만, 구원자들은 비슷하게 생긴 지구 식물 이름으로 부른다. 조슈아 나무(Joshua Tree).’
조슈아.
그가 죽음 직전에서 회귀한 목표.
아직 멀다.
달라진 경치에 대해 한마디씩 하는 사이, 2층 입구 지역을 순회하던 오크 무리가 공격대를 향해 달려왔다.
경치는 많이 다르지만 몹은 1층과 다를 게 없었다.
***
2023년 9월 12일.
회귀자 이준기의 첫 노숙.
박충기는 직접 돌아다니며 공격대원들 하나하나에게 수고했다는 인사를 전했다.
보급 상황도 점검했다.
2층에는 자판기가 없으니 힐링 포션이 부족해도 보충할 방법이 없다.
남는 사람에게 사서 부족한 사람에게 파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박충기는 한상태에게서 힐링 포션 두 개를 사서 장혁수에게 넘겼다.
"나중에 네 월급에서 깔 거다. 내가 알기론, 너 빚이 아직도 한 2천 정도 되지?"
박충기의 말에, 장혁수 대신 소현배가 대답했다.
"2천3백입니다, 대장님."
"거기에 천 더해야겠군."
"물약 작은 건데, 하나에 4백 아니에요?" 장혁수가 항의했다.
"그건 자판기 시세잖아. 그 가격에 사려면 아까 자판기에서 샀어야지."
"아, 정말. 난 물약 필요 없다고요. 잘 살아남을 자신 있어요."
"길드 욕 먹이지 말고, 챙겨줄 때 고맙게 받아라. 죽는 것보다는 낫잖아?"
넓게 퍼져서 노숙할 만한 상황이 아니라서, 그들의 대화는 이준기에게 똑똑히 들렸다.
이준기는 원래 역사에서 이 던전의 결말이 어땠는지를 생각하며 입에 쓴맛을 느꼈다.
15명 공격대에서 겨우 4명이 살아 나왔다.
메인 탱커 한상태, 메인 힐러 길수연, 공격대장 박충기, 그리고 장혁수.
세 명은 실력이 출중해서 끝까지 살아남은 것이고, 장혁수는 안 봐도 뻔한 얘기다.
협회장 이상덕은 강하게 반발했다.
한상태와 길수연은 중립 파벌이고, 박충기와 장혁수는 협회장 반대파다.
협회장파만 전원 몰살당한 것이 우연일 리가 없다는 생각을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다만, 개연성 있는 추측이라도 공공연하게 발언한 점은 경솔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아니면, 다들 쉬쉬하지만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협회장파와 협회장 반대파의 갈등을 표면으로 끌어내려는 의도로 한 고의적 행동이라고 봐야 한다.
물론 후자였고, 그 갈등은 그 다음 차례의 연합 공격대에서 표면으로 분출되고 만다.
***
던전 안의 계절은 묘하게도 던전 바깥과 비슷하다.
9월 초이니 아직은 늦여름이라고 할 수 있지만, 해가 들어가고 나니 쌀쌀해졌다.
황야에 어울리는 모닥불을 만들어 놓고 구원자들은 자기 전 시간을 잡담으로 보내고 있었다.
회귀 전 과거를 회상하던 이준기 옆으로 김새로미와 문아린이 다가와 앉았다.
“옆에 앉아도 되죠?” 김새로미가 이미 앉으며 물었다.
“그럼요. 제 땅이 아니긴 합니다만.” 이준기가 웃으며 대답했다.
"의외로 썰렁하시네요, 으하하." 문아린이 말했다.
"그래도 일단 웃기는 하셨으니 성공입니다." 이준기가 대답했다.
"실력이 너무 좋으신 거 같아요. 14렙 맞아요?" 김새로미였다.
"그냥 안 죽은 것뿐이죠, 뭐."
이준기의 대답에, 느닷없이 문아린이 덧붙였다.
"템빨 아녜요?"
"아, 맞아요, 템빨!" 조금 멀리 앉아 있던 하정태가 말을 받으며 다가왔다. "대체 형은 그런 걸 어디에서 났어요? 이퀄라이저였던가?"
"패시파이어요." 김새로미가 대신 대답했다.
"아, 맞다. 패시파이어. 도대체 그런 무지막지한 템을 어디에서 구한 거예요?"
"운빨이죠, 뭐."
"템빨에 운빨. 하하하." 문아린이 호탕하게 웃었다.
“윤동직 탱커님이 그러시는데, 준기 님은 공부를 열심히 하신다던데요. 이런 유형의 던전에 대해서도 공부해 놓으신 게 있으면 공유 좀 해주세요."
김새로미가 물었다.
섣불리 대답할 입장이 아니다.
이준기는 잠깐 생각했다.
이들에게 이번 던전에 관한 정보를 알려서 나쁠 건 없다.
믿어주기만 한다면 말이지.
"저 13, 아니 14레벨인데요."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인터넷이 안 되는데, 아무 얘기나 해주세요." 하정태가 말했다.
"그럼, 참고만 해주세요."
이준기는 이 던전에서 상대해야 할 적들에 대해 설명했다.
"어디에서 그런 정보를 얻으신 거예요?" 문아린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믿을 수 있는 정보처럼 들리나요?" 이준기가 물었다.
"그럼요!" 하정태가 말했다. "게임에 나오는 것들이랑 비슷하네요."
"앞뒤가 맞잖아요." 김새로미가 맞장구를 쳤다.
"그래도," 이준기가 말했다. "공격대장님 지시가 우선입니다. 제 이야기는 참고만 해주세요."
"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김새로미가 문득 꾸벅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오빠라고 불러도 되죠?”
뭐라 대답을 하기도 전에, 문아린이 이준기의 소매를 잡고 말했다.
“저도 오빠라고 부를게요. 준기 오빠.”
"헐, 이 분위기는 뭐지?" 하정태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는 뭐 별 상관없으시겠지만, 저도 형이라고 부를게요. 설마, 25살도 안 되신 건 아니죠?"
"설마요." 이준기가 대답했다. "군대 다녀온 게 언젠데."
"말 놓으세요, 준기 형."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