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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y 14. 2024

양자역학과 나가르주나

[책을 읽고] 카를로 로벨리, <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 (3)

앞의 글에서, 카를로 로벨리는 소통이라는 개념을 통해 얽힘을 풀어냈다.

소통이란 무엇인가?

소통은 정보의 공유다.

여기에서, 로벨리는 정보에 관한 2개의 공준을 제시한다.


1. 한 물리적 대상에 관해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관련 정보의 (최대) 양은 유한하다.
2. 대상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우리는 항상 새로운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다. (101쪽)


저자는 이 2개의 공준으로 양자론이 "요약된다"고 단언한다. 살펴보자.



하이젠베르크의 원리 + 비가환성


첫째 공준, 즉 정보의 유한성은 하이젠베르크의 원리로 말할 수 있다. 속도와 위치를 동시에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유명한 얘기다.


둘째 공준은 이와 모순되는 것 같다. 유한하다더니 항상 새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이렇게 된다면 우주는 정보로 폭발할 것이다. (아직도 정보 패러독스가 풀리지 않은 블랙홀은 어쩔려고?)


해결책은 간단하다. "정보"가 아니라 "관련 정보"이기 때문이다. 어제 코스피 마감지수는 중요하지만, 1688년 어느날의 암스테르담 주식 시장 마감지수(그런 게 있었다 하더라도)는 그렇지 않다.


세상은 플랑크 한계로 표현할 수 있는 양자성, 즉 최소 단위가 존재하기 때문에 실상은 부드럽지 않고 울퉁불퉁하다. 그러나 우리가 보는 거시 세계는 그렇지 않다. 우리는 통계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미세한 요동은 서로 상쇄되어 없어진다.


그래서 개별 입자 수준에서는 업스핀과 다운스핀이 중첩되어 있더라도, 고양이는 살아 있거나 죽어 있거나 둘 중 하나일 뿐, 중첩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보통 세계를 큰 규모에서 보기 때문에 이 세계의 입자성은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보는 것은 수많은 작은 변수들의 평균치입니다. 개별 분자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 전체를 보는 것이죠. 너무 많은 변수가 관여하기 때문에 요동은 무의미해지고 확률은 확실성에 가까워집니다. (105쪽)


대체 슈뢰딩거는 왜 이 귀여운 냥이를 사례로 들어 로벨리를 빡치게 하는가 (사진: Unsplash의Theme Tower)



나가르주나


인도의 불교철학자 나가르주나는 2~3세기를 살았던 사람이다. 로벨리는 양자론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가르주나를 읽어봤냐는 질문을 들었다고 한다. 나는 강신주의 <철학 대 철학>을 통해 나가르주나를 처음 접했는데, 실로 경이로웠다.


https://blog.naver.com/junatul/222390905811?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강신주의 해설에 따르면, 나가르주나는 불교의 '공'을 끝까지 밀어붙인 사람이다. 자신의 이론 조차 공하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내 불교 이해 수준은 오쇼의 <금강경 해설>을 여러 번 읽은 정도라서 미천하지만, 붓다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한 것이 나가르주나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아라한은 자신이 아라한으로 이쪽 기슭에 잠시 머무르며 중생을 돕는다는 사실 자체를 인식하지 않는다.


나가르주나의 주장을 양자론적으로 말하자면, "실체라는 것은 없다" 정도로 축약할 수 있다. 세계는 실체의 네트워크가 아니라 관계의 네트워크라는, 즉 점의 집합이 아니라 선의 집합이라는 로벨리식(로벨리만 이런 주장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양자론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나는 존재하는 걸까요? 아니요, 나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누가 별을 보고 있는 걸까요? 나가르주나는 아무도 없다고 말합니다. 별을 보는 것은 전체의 한 요소이며, 그것을 내가 관례적으로 나라고 부를 뿐인 것입니다. (132쪽)


나는 현대물리학이 인식론과 거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물리학자 카를로 로벨리의 입에서 나온 이런 말을 볼 때, 내 생각이 그렇게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지만, 우리의 관심사는 거의 2천 년 전 인도의 한 수행승이 실제로 어떻게 생각했는지가 아닙니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그가 남긴 글에 담긴 발상의 힘입니다. (135쪽)


물론, 우리는 나가르주나의 인식론을 실천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수도 있다. 붓다가 그렇게 하도록 가르쳤듯이 말이다.


나가르주나의 공空은 깊은 위안을 주는 윤리적 태도를 길러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자립적인 실체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음으로써 집착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무상하기 때문에, 절대적인 것은 없기 때문에, 삶은 의미가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136쪽)


나가르주나 - 알고 보니 naga와 arjun을 붙여 쓴 것이다. 거창한 이름이 아닐 수 없다. 서양식으로 하자면 드래곤-헤라클레스다.


자, 다음은 이 책에서 가장 논쟁적이라 생각하는 파트, 의미론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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