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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04. 2024

세상의 모든 전쟁

[책을 읽고] 브뤼노 카반 기획,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전쟁에 관한 책은 무수히 많다.

이런저런 전쟁을 모아 이야기로 엮는 것만큼 손쉬운 작업도 많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책들이 아주 많다는 것이 증거다.


반면, 이야기를 따라가지 않는 방식으로 전쟁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어떨까?

바로 이 책이 그런 시도의 결과물이다.


전쟁의 사회사, 문화사 전문가라는 브뤼노 카반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세계적인 학자 8백 명을 이끌고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이 책의 모든 챕터는 각기 다른 사람이 썼으며, 책임 편집자만도 세 명이나 된다.


***


이런 책이 기획되고, 실제로 쓰여 세상에 나온 점은 정말 훌륭하다.

다만, 기획자와 편집자가 글의 퀄리티를 제어하지 못한 점은 아쉽다.


서문, 시민군, 용병, 환경 파괴, 대영제국의 신화, 게릴라와 반란 억제, 중국, 식민지 병사, 소년병에 관한 글은 매우 훌륭한 반면, 드론, AK-47, 파르티잔, 영웅에 관한 글은 대체 왜 실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새로 알게 된 것들과 생각해 볼 문제를 많이 던져준 고마운 책이다.


이제, 밑줄 친 부분들을 따라가며 느낀 점을 가볍게 서술해 보겠다.



- 냉전은 〈전쟁〉이라고 규정되었으나, 두 주요 교전국 사이에 직접적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미 홉스가 말했듯, 전쟁을 우선적으로 특징짓는 것은 교전이나 전투가 아니라 적대적인 의도, 즉 대결하려는 지속적인 의지다. (55쪽) - 역시, 홉스!

- 지하드의 테러 행위는 〈국민 무장〉의 한 형태로 간주할 수 있다. (56쪽) - 분명히 충분히 의미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테러를 전쟁이라 부르면 부작용이 더 크지 않을까?

- 보통 프랑스 혁명군을 국민개병제의 시초로 보지만, 식민 미국의 minuteman을 그 시초로 볼 수도 있다.

- 동인도회사는 절정기에 약 15만 명의 병사를 보유했다.

- 영미권과 달리 대륙 국가들에서 국민개병제가 더 오래 유지된 이유 중 하나는, 국민들이 직업 군인을 신뢰하지 않은 점이다. - 달리 말해, 국민개병제가 반드시 더 나쁘고 미개한 제도는 아닐 수도 있다.


영미권과 대륙 국가들이 서로 다른 체계를 발달시켜 온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사실이다.

법 체계에서 볼 수 있듯, 영미권이 대체로 논리를 중시한 반면, 대륙권은 가능한 한 많은 디테일을 직접 규정하려 한다.

또 하나의 중요한 차이라면, 대륙권에 비해 영미권이 기업에 대단히 우호적이라는 점이 있다.

동인도회사의 15만 대군도 놀라운 일이지만, 블랙워터나 바그너그룹 같은 현대적 용병 기업 역시 영국에서 시작되었다.



- 대영제국이 결정적으로 쇠퇴한 시점으로 1956년 수에즈 위기를 꼽는 학자들이 많다.

- 1960년대, 예멘에서 민주화 운동이 발생하자 사우디, 프랑스, 영국이 적극 개입해서 민주화 운동을 짓밟았다. - 사우디는 발등의 불이니 그렇다고 치고, 프랑스, 영국은?


다들 알다시피, 프랑스와 영국은 전통적 라이벌이다.

그런데 이들이 힘을 합쳐 싸운 상대가 몇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러시아, 독일, 그리고 이집트(수에즈 운하)다.

이 책에서 지적하는 대로, 수에즈 위기가 영국 패권 쇠퇴의 계기라면, 악행에 대해 대가를 받은 것이라 할 수 있겠다.


- 용병(민간군사회사)이 없었다면 부시 행정부는 사담 후세인 정권을 전복시키지 못했을 것이다.

- 신자유주의로 인해 용병 활동이 더 활발해졌다. 저렴한 비용으로 전쟁을 치를 수 있어서다.

- 제1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다른 교전국들보다 전쟁법을 더 잘 준수했는데, 이는 당시 패권국이 영국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 지금 미국은?


- 전쟁 자체보다 전쟁 준비가, 정규전보다 비정규전이 환경을 더 크게 파괴한다.

- 2차 대전 이후, 말레이시아 독립 게릴라들이 활동을 시작하자, 영국 정부는 게릴라가 제거되면 독립 정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했고, 이를 지켰다. - 프랑스와는 다르다.

- 반란으로 독립을 쟁취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에리트리아, 코소보, 동티모르, 남수단 정도뿐이다. - 뼈 아픈 인류사의 한 단면이다.


- 1920년 월스트리트에서 벌어진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로 38명이 사망했다. 1995년 오클라호마 테러와 9/11 이전 가장 많은 미국인이 사망한 테러 사건이다.

- 내전(1977~1992)으로 피폐해진 모잠비크에서는 칼라시니코프 소총의 영향력이 너무 커서 1983년에 도입된 국기에도 그려져 있다. 그리고 마을에서는 아들이 태어나면 〈칼라시〉라는 이름을 붙이는 일이 빈번했다. 미하일 칼라시니코프와 그가 만든 무기를 기리는 뜻에서 북한과 이집트에 그 기념물이 세워졌다. (274쪽)

- 독일군에서는 작전 현장에 고위 사령관이 직접 와 있어야 했다. 그래서 더 심각한 인명 손실을 입곤 했다. 1939년과 1945년 사이에 독일 국방군 소속 장군 220명 이상이 목숨을 잃은 반면, 미 육군에서는 22명의 장군만이 사망했다. (308쪽)


- 이를 보면 〈소년병〉이라는 명칭이 결국 얼마나 현실을 축소하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명칭은 이러한 현상이 어떤 신념, 의지, 달리 말해 자발적 선택이라는 사실을 묵살하는 데 기여한다. (385쪽) - 이 책에서 배운 가장 충격적인 내용. 생각해보면, 내전으로 피폐해진 나라에서 부모도 없이 생계를 해결해야 하는 소년, 소녀들이 군대를 선택하는 것은 대단히 합리적인 선택이다.


이 책에서 가장 훌륭한 단 하나의 아티클을 고르라면, <소년병>을 뽑고 싶다.

소년병이라는 이미지는 코카콜라 북극곰 만큼이나 정형화되어 있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 이것은 하나의 선택지다.

굶고, 약탈당하는 입장에 놓이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인 경우가 많다.

그것을 알기에, 이들을 징집하는 전쟁쟁이들도 소년병 징집에 열심인 것이다.


아프리카에서 소년병이 되는 아이들에게 주어지는 선택지는,

펄 벅의 소설, <대지> 3부작의 배경이 되는 군벌 시대 당시 중국 보통 사람들의 경우와 비슷하지 않을까.



- 프랑스의 모델을 본떠 징집병들로 군대를 구성하게 되면서 전쟁 포로가 전례 없이 대규모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1812년 12월에는 약 21만 명의 군인, 즉 나폴레옹 1세의 대육군 3분의 1이 넘는 군인이 러시아에 포로로 잡혔다. (415쪽)

- 1896년부터 쿠바에서 스페인 사람들은, 민간인이 저항 세력을 지지하는 일을 차단하려고 가시철망으로 둘러쳐진 공간에 민간인을 고립시키는 〈레콘센트라시온reconcentración〉을 실시했다. (422쪽) - 아마도, concentration camp의 어원.

- 민족 전체를 대상으로 벌인 전쟁으로서 식민국이 지닌 강제권의 근간을 이룬 것이 집단 책임 원칙이었다는 증거다. (423쪽) - 제국주의가 얼마나 사악했는지, 정말 치가 떨린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일제 시대를 다룬 영화, 드라마에 자주 나오는 장면 아닌가.


프랑스 혁명으로 촉발된 국민개병제로 대규모 군대가 동원되고, 이에 따라 대규모로 발생하는 포로 관리를 위해 포로수용소가 등장했다고 보면, 논리적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concentraion camp는 어원에서도 볼 수 있듯 스페인이 식민지 독립 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등장했다.

포로 수용소와 concentration camp는 다른 의미지만,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최근 관타나모에서도 비슷하게 운영되는 것이 현실이다.

"단체 기합"이라는 개념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우리들은, 이미 이런 개념이 내재화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전투원에 대한 인도적 대우로 시작된 포로 개념이지만, 실상은 특정 인종, 특정 민족에 대한 분노를 체계적으로 발산하는 방법일 뿐이다.


- 1914~1918년에 서부 전선에서는 대규모 공세가 이루어진 다음에는 거의 항상 프랑스 병사들이 프랑스 마을을 조직적으로 약탈했고, 후퇴할 때에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도지사들이 여러 차례 고소했다는 문헌 기록이 남아 있지만, 그 어떤 병사도 약 탈한 죄목으로 군사 법원에서 재판을 받지 않았다. (440쪽) - 십자군 얘기가 아니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의 이야기다.

- 남북 전쟁에 참전한 군인 약 3백만 명은 대부분 글자를 깨친 덕분에(남부 연합군의 경우 80퍼센트, 북부 연방군의 경우 90퍼센트) 편지를 많이 썼다 (443쪽) - 남북전쟁 당시 미국을 구성한 사람들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80~90%라니!


***


자, 이제 2권을 읽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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