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리처드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 (1) - 큰 그림
간단 요약
간단히 요약하면, 이 책의 논지는 다음과 같다.
1. 이기적 유전자의 긴 팔은 개체의 몸을 벗어나 주변 환경에까지 미친다.
2. 그럼에도 여러 가지 장점이 있어 유전자들은 대개 개체라는 운반자를 중심으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무려 대니얼 데닛이 이 책의 후기를 썼는데, 그가 생각하는 이 책의 한 문장은 다음과 같다.
동물이 하는 행동은 그 행동을 ‘위한’ 유전자가 행동을 수행하는 특정 동물 몸에 있든 없든, 해당 유전자가 달성하는 생존을 최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후기 중에서)
이 책의 진가는 '다르게 생각하는 방법'을 제시했다는 데 있다.
대니얼 데닛은 도킨스가 확장된 표현형을 통해 유기체를 재발견하게 도왔다고 썼다.
앞서 요약했듯이, 복제자인 유전자는 유기체라는 경계 내에서 활동하지 않는다.
그들의 협력과 암투는 유기체의 몸은 물론, 다른 유기체들, 그리고 주변 환경까지 뻗어나가는 방대한 영역에서 벌어진다.
그런데도 유전자들은 유기체 내부에 모여 있는데, 도대체 왜 그래야 한단 말인가?
이 책의 특징
'유전자의 긴 팔', 즉 확장된 표현형에 관한 내용은 이미 그의 전작 <이기적 유전자>의 마지막 장에 나온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새로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하려는 것은 논증 내지 설득이다.
그래서 이 책의 목표 독자는 다른 진화생물학자들이고, 내용은 전문용어로 버무려져 있다.
가끔 도킨스는 더 쉬운 설명을 위해 비유를 동원하지만, 근본적으로 이 책은 학문적 논증을 취지로 한다.
논문 방어라고 생각하면 좋다.
이 책에서 그가 논증하려는 것은 다음 세 가지 정도다.
1. 내가 주장하는 것은 유전자 선택론이지 유전자 결정론이 아니다.
2. 유전자의 활동은 유기체라는 경계 내에 국한되지 않으며, 다른 유기체의 몸, 그리고 주변 환경까지 뻗어 나간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기체 내부에 모여 머무르는 전략은 유전자에게 많은 이점을 가져다 준다.
특히 첫 번째 논점, 즉 유전자 결정론에 관해서 그는 책의 거의 절반을 할애하고 있는데, 그가 <이기적 유전자>라는 책을 통해 얻게 된 유전자 결정론자라는 오명이 그를 얼마나 (여러 가지 의미에서) 힘들게 했는지 상상이 된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말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우리나라 국민들은 지난 반년 동안 절절히 깨닫고 있다)
사실 나는 대니얼 데닛의 후기에 나오는 다음 한 문장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유전적 결정론이란 무엇인가? 도킨스(p. 37)는 굴드가 1978년에 쓴 정의를 인용한다. “우리가 누구인지 이미 프로그램되어 있다면 그런 형질들에서 벗어나기는 불가능하다. 우리는 기껏해야 해당 형질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을 뿐이지 의지나 교육, 문화를 이용해서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이것이 유전적 결정론이라면 도킨스는 유전적 결정론자가 아니다(E. O. 윌슨도 아니며, 내가 아는 한 저명한 사회생물학자나 진화생물학자 누구도 그런 사람은 없다). (후기 중에서)
'저명한'까지 갈 것도 없이, 생물학을 전공한 사람이 굴드가 정의한 유전적 결정론자가 된다는 생각은 하기 어렵다.
너무 무식한 이야기 아닌가.
나는 굴드의 책을 읽은 적도 없고, 이런저런 교양서를 통해 그의 주장을 대강 알고 있는 정도지만,
굴드가 평생을 걸쳐 그 고생(!)을 하고 이론으로 정립한 게 겨우 그 정도라는 사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세계 각지를 떠돌며 화석을 파헤친 그의 생고생은 그가 장수하지 못하는 데 기여했을 것 같다. 퍼플렉시티는 내 주장에 반대하지만.)
아무튼 이 책의 특징은, 이 책이 일반적인 의미의 과학교양서가 아니라는 것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너무 유명해서, 과학적 논증을 위해 쓴 글이 출판되어 대중에게 판매되었을 뿐이다.
일단 이 정도로 이 책에 대한 소개를 마친다.
지적 유희를 더 즐기고 싶다면, 각론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그것이 다음 글에서 내가 하려는 것이다.
(얼마나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