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대니얼 데닛, <직관펌프> (5)
진화 저술가 맷 리들리의 <본성과 양육>은 유전자와 소프트웨어 서브루틴의 깊은 유사성을 지적하고 있다고, 리처드 도킨스는 자신의 책에서 밝혔다(고, 데닛이 이 책에서 밝히고 있다).
<데이비드 커퍼필드>나 <호밀밭의 파수꾼>이나 나오는 단어들은 거기에서 거기다. 두 소설이 엄청난 차이를 보이는 것은 단어들의 배열 순서에서 기인한다. 마찬가지로, 생쥐나 인간이나 유전자 단어는 별 차이 없다. 배열 순서가 그 엄청난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런데 단어보다 더 나은 비유가 바로 소프트웨어 서브루틴(함수, 라이브러리)이다.
예컨대 내가 주소록 프로그램을 새로 만든다고 해서 한글 입력 부분을 전부 다 밑바닥에서부터 코딩할 필요는 전혀 없다. 무료로 공개된 한글 입력 라이브러리가 얼마든지 있다. 감사한 마음으로 가져다 쓰면 그만이다.
마찬가지로, 포유류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새로운 유전자 코드를 만들 필요도 없다. 자신의 유전자 풀에 이미 가지고 있는 (많은 부분이 정크 DNA 형태로 존재한다) 수많은 기능 중에 활용할 것을 고르면 된다. 그 연장통에는 포유류용, 파충류용은 물론 어류, 곤충류, 심지어 세균 시절부터 쓰이던 연장도 들어 있다. 이들이 모두 소프트웨어 서브루틴이라는 비유로 훌륭히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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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자 없이도 설계는 존재한다
다음으로, 데닛은 설계자 없이 설계가 존재함을 보이기 위해 애쓴다.
자연 선택 자체는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 알 필요가 없다. 따라서 이유를 표상하는 존재가 있기 전에 이유가 있었다. (40장 중)
너무 당연한 얘기라서, 정말 논증이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아래 사진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예컨대 숫자는 인류가 만든 것이지만, 숫자가 있기 전에도 '수'라는 것은 존재했다. 데닛은 자신이 말하는 '이유'가 숫자가 아니라 수와 같다고 말한다.
생명체는 진화를 통해 훌륭하게 설계된 행동을 타고 나지만, 이 설계에 대해 알 필요는 없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지향적 태도를 버릇처럼 취하며 만물에서 행위자를 보는 인간은 다르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설계를 보면 설계자를 생각하는 것이다.
통풍구를 개미탑의 적재적소에 배치하여 냉방을 하다니 흰개미는 어찌 이리 똑똑할까! (40장 중)
자연선택을 설명하는 비유로 훌륭한 것이 있어 (풀어서) 인용하려고 한다. 우리 선조가 처음에 배를 만들었을 때를 생각해보자. 고대 인류가 유체역학이나 재료화학을 알고 있었을 리가 없다. 그들은 이런저런 궁리를 해서 배를 만들었고, 바다에 띄웠다.
그렇게 만들어진 배가 제대로 배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바다 그 자체다!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배는 돌아오지 못한다. 조상들은 무사히 돌아온 배를 흉내내면 된다.
문법 규칙, 단어, 종교 행위를 비롯한 수많은 인류 문화의 기본적 특징도 마찬가지다. 설계한 사람이 아무도 없고, 우리의 유전자에 들어 있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꽤 근사하게 설계되었다. (52장 중)
문법, 단어, 종교 등 밈 역시 자연선택으로 훌륭하게 설명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