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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뻔한, 동화

[영화 후기] 미키17

by 히말 Mar 02. 2025

*** 스포일러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


'크리퍼'가 등장하는 순간, 아주 잠깐 '알파 센타우리'를 떠올렸고,

곧바로 나우시카를 생각했다.

(외형만 보면 <듄>의 모래괴물도 많이 닮았다.)


조금도 신선하지 않다.


그게 끝이 아니다.

이 시점에서 이미 영화의 결말이 결정되었으니 말이다.


훨씬 나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더 킹>의 로버트 패틴슨 (하긴, 시나리오 때문인데 배우를 탓하는 것도)훨씬 나은 연기를 보여주었던 <더 킹>의 로버트 패틴슨 (하긴, 시나리오 때문인데 배우를 탓하는 것도)


***


지구는 누구의 것인가?


이 질문은 상당히 위선적이지만, 어쨌든 많은 순간 우리들이 잊고 사는 질문이다.

이 질문에 대해 영화 <바람숲의 나우시카>, 소설 <듄>, 그리고 게임 <알파 센타우리>가 대답한다.

가이아 이론'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바로 그 대답 말이다.


아니, 더 쉽게 생각하면,

아메리카 대륙이 누구의 것이었나, 하는 질문만으로도 충분하다.

이 질문은 영화 <아바타>로 매우 친숙하다.


신선함이 사라진 건 물론이고 이제 곰팡내 나는 이 질문을, 이 영화는 21세기가 1/4이나 지난 시점에 던진다.

그것도 모잘라서, 대답은 너무 유치해서 언급하기도 싫은 정도다.

동화라고 부르는 것, 칭찬이 아니다.


이미 40년 전에 훨씬 더 뛰어난 대답을 보여준 나우시카이미 40년 전에 훨씬 더 뛰어난 대답을 보여준 나우시카


***


봉준호 영화를 관통하는 딱 한 가지 요소가 있다면, 풍자, 내지 블랙 코미디일 것이다.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쩌면 철학적일 수 있는 질문을 대단히, 정말 깃털처럼 가볍게 다루고 있다.


SF적인 요소는 웃음 포인트일 뿐, 전혀 존재하지 않으니, 왜라는 질문을 하는 게 창피할 정도다.

정치라든가 사회라든가 하는 요소도 흑백 2분법 수준에서 딱 틀에 박혀 움직이지 않는다.


웃음 포인트라고 던져준, '삑사리' 장면들은 이미 봉준호의 전 작품들에 나왔던 것들을 재탕한다.

(다른 감독이 했다면 오마주 내지 표절이라고 했을 정도로 똑같다. 넘어지기, 가스 분사...)


선악 구도 역시 초지일관, 입체적인 인물이 하나도 없다. (미키18가 아주 조금 입체적일까?)

입체적일 수도 있었던 나샤와 카이, 인물 역시 그냥 원래대로 끝까지 간다.


동화, 라는 징표가 전혀 과장이 아니다.

딱, 여섯 살 (내지 그 이하) 아이의 생각 수준에서 질문하기를 멈춘다.

그러니, 나머지는 뻔한 동화 전개다.


봉준호 영화를 본다고 생각했을 때, 이런 영화를 기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비슷한 주제로 훨씬 더 잘 만든 영화인 <와일드 로봇>를 보는 게 낫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봉준호 영화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최근에 실망스러운 영화를 마구 찍어내는 송강호와 달리,

봉준호는 아직 믿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살인의 추억>, <괴물>, <마더>까지는 걸작이라고 생각한다.

조금 모자라지만 <기생충>도 이들 작품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플란다스의 개>는 데뷔작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점수를 잘 줄 수 있는 정도다. 

<설국열차>와 <옥자>는 아무래도 부족하다는 평가를 거둘 수 없다.


그런데 <미키17>은 <옥자>보다도 못하다.

역대 봉준호 감독 영화 중 최악이다.


박찬욱은 종종 자기 고집 때문에 대중성을 포기하는 것으로 박한 평가를 듣는다.

아무도 보고 싶어하지 않는 잔인한 장면을 넣는다든가 하는 점이 그렇다.


그런데 봉준호는 이제 대중성을 제외한 모든 것을 버린 모양이다.

실망스럽다.

(물론, 이 정도로 꾸준히 좋은 영화를 만든 감독은 전 세계 영화 역사를 통틀어 없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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