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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11. 2017

나이테 속의 시간

[서평] <다시, 나무를 보다>

전 국립수목원장 신준환이 정년에 즈음하여 쓴, 나무에 관한 에세이집이다. 나무에 관한 가벼운 글을 읽으며 힐링하려는 사람들에게도 나쁘지 않겠지만, 책은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나무와 숲, 그리고 인간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간다. 서두에 나오는 고은 시인의 추천사를 읽고, 이 책이 문학적 서정성만 담았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

Photo by Jeremy Gallman


생리화학적 측면에서 살펴본 나무와 숲의 이야기는 물론, 공진화의 측면에서 본 숲의 생태계, 들뢰즈와 하이데거의 시간 개념, 동의보감에 나오는 계절별 생활 방식은 물론, 조선 시대 이름 모를 작가의 시조까지 그야말로 통섭적인 시각을 담은 글이 빼곡히 적혀 있다.


예를 들면, 유기농 작물이라고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하면서, 저자는 유기농 작물에 독성물질 농도가 높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식물은 곤충과 미생물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독성물질을 생산하는 경우가 많은데, 유기농으로 재배할 경우 병충해의 공격을 많이 받아 독성물질을 더 많이 생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고등 뿌리식물에서 발견되는 균근 곰팡이의 이야기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균근은 나무뿌리가 직접 흡수하지 못하는 일부 미네랄의 흡수를 도와주면서, 나무로부터 부산물을 나누어 받아 성장한다. 또한 균근은 더 독한 다른 미생물이 나무뿌리로 침투하는 것을 막아준다. 마치 우리 장 속에 있는 유익균이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유해균을 방어하는 것과 같다. 균근은 기생하는 나무의 성질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자라나는데, 향기로운 송이버섯이 바로 소나무 뿌리에 기생하는 균근이다.


좋은 것만 모아서 좋은 것을 만들기는 어렵다. 보기 좋고 쓰임새 좋은 나무만 모아서 숲을 조림하면 뭔가 문제점이 생긴다. 나무들은 서로 가지를 뻗기 위해 자리싸움을 벌이고, 해를 보려고 서로 키 높이기 경쟁을 한다. 숲은 여러 가지 다양한 것들을 모아 그들을 조화롭게 배열하여 자신을 완성한다.


가장 흥미롭게 읽은 부분 중 하나는 결단에 의해 완성되는 시간성에 관한 글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시간을 연속적인 것으로 착각하는데, 시간의 연속성이란 기억을 우리 생각에 따라 재배열한 것뿐이다. 실제로 우리에게 시간을 지각하는 감각기관은 없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실존을 규정하는 것은 결국 나의 결단성이다. 결단의 순간으로 인해 시간의 지속성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으로 인해 실존이 순간적으로 확정된다.


지속성은 순간을 연속적으로 이어놓음으로써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 순간들이 반복적으로 회귀되는 두께의 시간성에서부터 발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체의 영겁회귀를 생각나게 하는 장면이다. 니체는 영겁회귀라는 개념을 통해 영원과 순간의 시간성을 역전시켰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우리 삶에서 일상성을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일상성을 뒤집기 위해 결단을 행하면, 결국 우리의 실존은 영겁회귀를 통해 완성된다. 현존재를 자각하는 실존, 니체가 영겁회귀라는 개념을 통해 촉구하는 결단의 종착점이다. 


결단의 시간성은 현재로 나타나면서 순간이 아니라 영원 회귀적 두께를 가진다.


저자는 나무가 나이테로 두께를 만들어가면서 그 안에 시간을 채워간다고 말한다. 마치 우리 인간에게는 어렵기만 한 결단을, 나무는 매 계절마다 착실히 해나가면서 그 기록을 자신 안에 남기는 것 같다.


책에는 '인생백년, 송수천년, 학수만년'이란 말이 나온다. "백년을 사는 인간이 천년을 사는 소나무를 심어 만년을 사는 학을 불러들이는 것이 나무를 심는 사람의 마음이다"라는 풀이가 있다고, 저자는 덧붙인다. 나무가 보고 싶어지는 오후다.

Photo by Gabriel Jimene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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