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Nov 09. 2017

리처드 도킨스 = 홍구

<이기적 유전자> 단상

리처드 도킨스 (이미지 출처 - 리처드 도킨스 트위터)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아마도 가장 유명한 장인 제11장 '밈' 편은 다음 문장으로 끝난다.

우리는 유전자의 기계로 만들어졌고 밈의 기계로서 자라났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의 창조자에게 대항할 힘이 있다. 이 지구에서는 우리 인간만이 유일하게 이기적인 자기 복제자의 폭정에 반역할 수 있다. (335쪽)

이 문장에 대한 '보주'에서 리처드 도킨스는 이 '결론'에 대해 많은 비평가들이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고 하면서 반론을 제기한다. 저자가 직접 인용하고 있는 로즈(Rose)의 비판은, 유전자적 결정론과 자유 의지라는 두 개의 결론을 모두 가지려는 도킨스가 이원주의적 오류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난한다. 그런데 로즈라는 사람이 <이기적 유전자>를 제대로 읽기만 했어도 이런 말을 했을까? 

도킨스는 분명하게 여러 차례에 걸쳐, 유전자의 우리에 대한 지배가 '프로그램적'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유전자는 우리가 행동하는 방식을 결정하는 프로그램을 설계했을 뿐,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직접 조종하는 것이 아니다. 생존기계로서 인간이라는 생물의 복잡한 설계는 아마도 카오스계 함수로 되어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결정론이라니.

도킨스는 나와는 조금 다른 방향으로 로즈의 지적에 반박하고 있다. 즉 유전자의 영향력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수준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영향력이 다른 요인에 의해서 무효가 되거나 오히려 반대 방향의 양상이 나타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유전자가 대단히 놀라운 수준의 설계자인 것은 맞지만, 카오스계인 세계의 변수를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따라서 상황 변수와 프로그램 내용의 예측하지 못한 상호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도킨스가 말하는 자유 의지의 영역, 즉 '다른 요인에 의한 유전자 영향력의 무효화'는 그런 상호작용이 아닐까.

<키드 갱>의 진 주인공, 홍구 (저작권자 신영우)


나는 제11장을 마무리하는 문학적인 저 문장이 과학자라기보다 저술가에 가까운 도킨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도킨스는 다양한 시비를 불러일으킬 것을 알면서도 저 문장을 꼭 넣고 싶지 않았을까. <키드 갱>에서 '밀실 살인'이라는 말을 꼭 한 번 해보고 싶었다는 홍구가 생각난다.

*** 사족 *** 저, 리처드 도킨스 좋아합니다. 홍구도요. ^^                


매거진의 이전글 21세기의 고리오 영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