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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09. 2018

다 알고 있었다고? 그럴 리가...

[52권 자기 혁명] 롤프 도벨리의 <스마트한 생각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계기는 사라예보에서 울린 몇 발의 총성이라고 세계사 교과서에 쓰여 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역시, 위기 발생 이전에 이미 위험 신호가 경제 여기저기에서 감지되었다고 회고하는 기사를 적어도 백 번은 본 것 같다. 현재의 우리가 볼 때, 오스트리아 황태자 암살 사건은 다가올 대전쟁을 아주 명백히 예고하는 것처럼 보인다. 2008년 당시 각종 경제 통계를 들여다보면, 당시 금융위기를 예측하지 못한 전문가들을 조소하고 싶어진다.

2007년 발표됐던 경제 전망 기사를 살펴보자. 당시 전문가들은 2008년은 물론 2010년까지 세계 경제가 꽃길을 걸을 것이라는 전망을 앞다퉈 내놓았다.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금융위기가 발생하자, 전문가들은 다들 그럴 줄 알았다는 내용의 분석 기사를 신문에 기고했다. 통화량 확대, 부패한 담보 평가 기관들, 그리고 무엇보다 역대 최고로 느슨해진 대출 관행을 서로 연결지어 생각해보면 당연한 결과라는 것이었다.

1914년에도 마찬가지였다. 사라예보 사건 발생 당시, 그 사건이 전쟁의 전주곡이라고 말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사라예보 사건이 전쟁으로 이어질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난 다 알고 있었지"

<스마트한 생각들>의 저자 롤프 도벨리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증조부가 썼던 일기를 발견한다. 1940년 8월, 나치 독일이 파리를 점령한 지 한 달 정도가 지난 당시에 쓰인 일기 내용은 다음과 같다.

"파리에서는 독일군이 1년 후면 다시 철수할 거라고 생각하고 있다. 독일 장교들과 나의 생각도 같다. 프랑스가 함락된 것처럼 빠르게 영국도 함락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는 마침내 다시 파리식 일상생활로 되돌아갈 것이다. 비록 독일의 일부가 되어 있더라도." (169쪽)

역사는 물론 다르게 흘러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사람들은 탱크가 물을 건너기라도 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나폴레옹도 하지 못했던 일을 히틀러는 해내고 말 것이라 굳게 믿은 근거는 무엇일까?

"내 그럴 줄 알았다"라는 태도를, 행동경제학은 사후 확신 편향이라는 멋진 이름으로 부른다. 나중에 돌아보면서 과거에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말하는, 어이없고 뻔뻔한 행동에 붙이기에는 이름이 너무 거창하다.

다시 2007년 말로 돌아가 보자. 2008년 경제 전망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전문가들은 자신 있게 대답한다. 그리고 나름대로 합리적인 근거도 제시한다. 그들은 생각한다. 내 전망이 100% 맞지는 않을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아주 많이 빗나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러나 2008년 말, 결국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의 뇌관이 터지고 만다. 인간의 기억이란 뇌가 언제나 재구성하는 역동적인 기록이다. 전문가들은 불과 1년 전에 자신 있게 예언했던 이야기는 모두 잊고, 내가 경고하지 않았느냐고 인터뷰한다. (경고하지 않았다.) 평균 이상의 예측을 하는 내가 완전히 틀린 예측을 했을 리가 없다는 믿음이다. 그리고 예전에 금빛 전망을 내놓을 때와는 다른 통계 수치들을 들이대며, 나는 알고 있었다고 확언한다.

기억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

과신 편향과 사후 확신 편향은 한 뿌리에서 나온 두 가지다. 그 뿌리는 자만심이다. 자신감에 넘쳐서, 미래에 대한 확언을 일삼는 것이 인간이다. 나중에 예측과 다른 결과가 나타나면, 그럴 줄 알았다고 뻔뻔하게 믿는 것이 또 인간이다. 우리가 뼛속 깊이 거짓말쟁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우리의 자아라는 것은 복잡한 뇌 활동의 결과로 나타나는 하나의 허상이기 때문이다. 기억과 자아는 끊임없이 재생산된다.

게르하르트 로스는 '의식적인 자아'의 역할이 정부 대변인과 흡사하다고 논평한 바 있다. 우리의 결정은 무의식적 수준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가 '의식하는 자아'는 사실 그 결정 과정에 참여한 적도 없다. 그런데도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대답을 해야 하는 것은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다. 그러니 정부 정책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도 못하면서 정부 정책을 방어해야 하는 대변인과 마찬가지로 난감한 상황에 봉착하게 된다.


"나는 예언가로 명성과 부를 얻었지.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사건을 매우 정확히 예측했거든." "당신 차 견인되는데요!" "그것도 알고 있었지." © Golla & Blanton


우리가 어떤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것보다 1/3초나 빨리 우리의 뇌파는 변한다. 뇌파 탐지기를 쓴 피험자가 오른쪽과 왼쪽 버튼 중 어느 쪽을 누를지 결심하고 버튼을 누르게 한 실험에서, 연구진은 피험자가 어느 쪽 버튼을 누를지 적어도 0.3초 전에 뇌파 분석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예측이 틀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평균보다 나은 능력을 가진" 자아에 대한 관념은 유지될 수 없다. 그래서 무의식은 거짓 기억을 만들어 자아를 유지하려고 한다. 다 알고 있었다고 정말로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을 방어하는 것은 대변인의 역할이다. 의식이 전면에 등장해서, 이런저런 통계를 증거로 들면서 이미 다 알고 있었다는 믿음을 방어하려 애쓴다.

사후 확신 편향은 왜 위험한가? 과신 편향을 강화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실패로부터 배움으로써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인데, 실패로부터 배울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이 사후 확신 편향이다. 실패해 놓고도 실패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반성도 발전도 없다.

예언 일기의 힘

저자의 증조부는 일기를 썼다. 기록은 뇌의 기억 조작에 저항한다. 무의식은 이미 다 알고 있었다고 이야기를 꾸며내고 자기 자신을 기만할 수 있지만, 내 뇌가 아닌 바깥세상 어딘가에 남아있는 기록은 그런 변조가 불가능하다. 이것이 기록의 힘이다. 우리는 기록과 반성을 통해 자만심을 물리치고 겸손함을 배울 수 있다.

뇌의 거짓말엔 기록이 특효약


개인적인 경험에서 터득한 한 가지 조언이 있다. 바로 예언 일기를 쓰라는 것이다. 정치, 직업, 경력, 몸무게, 증권 등 아무것이라도 좋다. 순전히 개인적인 관점에서 각각의 전망을 예측하라. 그리고 자신이 예언한 시점이 되면 그 일기를 실제 상황과 비교해보라. 십중팔구 당신은 자신이 얼마나 서투른 예언가인지 확인하고 놀랄 것이다. (172쪽)

내가 이 책에서 배워서 실천하자고 제안하고 싶은 것이 이것이다. 예언 일기를 써보자. 자주 쓸 필요는 없다. 한 달에 한 번, 아니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생각나는 이것저것에 대해서 미래를 예측해 보는 것이다. 사실 이런 태도는 단순히 겸손함을 기르기 위한 목적 이상의 효과를 가져온다. 

찰스 두히그는 <1등의 습관>에서 의사결정에 미래 예측을 결합하라고 제안한다. 그는 텔레비전 프로그램 공동 제작 제안을 받았는데, 제안을 받아들이면 쓰던 책의 출판이 늦어지겠지만 장기적으로 큰 이득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가능한 미래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았다. 그는 금전적으로는 큰 이득이 될 가능성이 작지만, 새로운 경험과 배움의 기회를 높게 평가하고 텔레비전 프로그램 제작에 참여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생각해도 매우 현명한 결정이었다"고 그는 덧붙인다.

시나리오 분석은 프로젝트 분석에 널리 쓰이는 도구다. 중요한 의사결정에 앞서 미래를 예측해 보려는 것은 당연한 본능이고, 많은 이들이 이미 실천하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그러한 예측을 사후에 돌아보고 배울 점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중요한 의사 결정을 위해서든, 재미를 위해서든, 가끔은 예측 일기를 써보자. 그리고 사후에 반드시 그 결과를 점검하고, 어떻게 하면 미래 예측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을까 생각해보자. 예측력도, 겸손함도 배울 수 있는 좋은 습관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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