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권 자기 혁명] 김정선의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
굳이 정규분포나 파레토 법칙을 거론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이 흔히 하는 실수는 몇 종류 되지 않는다. 몇 가지 나쁜 습관을 고치면 삶의 질이 금방 달라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나쁜 버릇 몇 가지만 고치면 글이 확 나아진다.
글을 쓰는 것이 좋은 습관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라도, 굳이 글을 잘 쓰려고 노력까지 해야 하나 하고 생각할 수 있다. 스피커에 말을 걸면 온라인 쇼핑이 되는 시대다. 도대체 왜 글을 잘 쓰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지 의아할 만도 하다. 하지만 나는 두 가지 이유로 글쓰기를 다듬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인간은 말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언어가 없다면, 인간은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언어의 중요성은 명확하다. 그런데 쓰는 언어는 말하는 언어와는 또 다르다. 생각을 위한 도구가 하나가 아니고 둘이라면, 양쪽 모두 닦고, 조이고, 기름칠해야 한다. 글쓰기가 향상되면 생각하는 힘이 강해진다.
둘째로 우리는 글쓰기의 장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직지심체요절을 찍던 시대에는 부처님 말씀 정도가 아니면 감히 활자화되지 못했다. 구텐베르크는 활자를 좀 더 대중의 눈높이로 내렸지만, 여전히 인쇄의 벽은 높았다. 케인즈와 포스터 등 각계 명사를 멤버로 둔 블룸스베리 그룹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중심적 역할을 할 수 있었던 데는, 그녀가 호가스 출판사를 운영한 것도 한몫했으리라.
그런데 지금은 누구라도 인터넷을 통해 글을 쓸 수 있다. 드미트리 글루호프스키는 <메트로 2033>을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했다. 많은 미래학자가 미래는 직업(job)이 아니라 작업(work)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모두가 자기 삶의 경영자가, 자신의 대변인이 되어야 한다. 기술의 발전으로 글쓰기는 오히려 더욱 중요해졌다.
우리는 이미 글을 쓰고 있다. 회사에서 기획서나 보고서를 쓰기도 하고, 업무와 관련하여 이메일을 주고받는다. 모바일 메신저로 늘 누군가와 대화 중이다. 온라인 쇼핑 후에 상품평도 작성한다. 글쓰기는 생활의 한 부분이다. 글쓰기가 좋아지면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팔을 조금씩만 더 뻗으려고 노력하다 보면, 높은 곳의 과일도 언젠가는 손에 닿을 것이다.
이제 <내 문장이 그렇게 이상한가요?>에 소개된 몇 가지 조언을 살펴보자. 치트키 수준으로 글의 수준을 높여 줄 것이다.
"적의를 보이는 것들"
저자가 소개하는 첫 타도 대상은 "적의를 보이는 것들"이다. 우리말 표현에서 정말 많이 등장하는 쓸데없는 들러리, '적', '의', '것', '들'을 없애면 문장이 깔끔해진다.
사회적 현상, 문제의 해결 → 사회 현상, 문제 해결
'것'은 의미를 더하지 않은 채로 문장을 길고 모호하게 만든다. 복수 접미사 '들'은 영어 표현의 번역체에서 왔다. 우리 말은 원래 복수형이라는 것이 없다. 의미상 복수가 분명한 경우 필요 없는 표현이다.
문들이 열리자 그는 관람자들의 무리에 휩쓸려 전람실들이 줄지어 있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
→ 문이 열리자 그는 관람자 무리에 휩쓸려 전람실이 줄지어 있는 홀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가 서로 알고 지낸 것은 어린 시절부터였다.
→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서로 알고 지냈다.
'있는'이라는 표현도 별 의미 없이 쓰인다. 동사로서 진행을, 형용사로서 상태를 나타내는데, 실제로는 의미 없이 쓰이는 경우가 많다. 현재형으로 써도 될 것을 현재진행형으로 쓰는 경우가 그렇다.
멸치는 바싹 말라 있는 상태였다.
→ 멸치는 바싹 마른 상태였다.
'관계에 있어', '~함에 있어'와 같은 표현도 쓸데없이 늘어진 표현이다.
그 여배우와 친밀한 관계에 있는 영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 그 여배우와 가까운 영화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에 대한', '~들 중 하나', '~ 같은 경우', '~에 의한' 등의 표현은 "지적으로 게을러 보이게 만드는 표현"이다. 정확한 표현을 쓰는 대신 모호하게 에둘러 하는 표현이다. 정확한 의미로 바꿔 써야 한다.
시스템 고장에 의한 동작 오류로 인해 발생한 사고
→ 시스템 고장에 따른 오동작 때문에 발생한 사고
'~에'는 무생물에, '~에게'는 생물에 붙인다. '~에게서'는 '~에게'와 '~에서'가 합쳐진 조사인데, 딱히 쓸 필요가 없다면 피해야 할 표현이다.
적국에 선전 포고를 하다.
부모님에게 카네이션을 선물하는 아이들.
피동과 사동도 주의해서 쓴다. 피동과 사동이 성립하지 않는 동사가 있다는 사실에 유의하자. 더불어, 피동과 사동을 두 번, 세 번씩 할 필요는 없다. 특히, '소개시켜 주다'처럼 소개를 '시키는' 데서 끝나지 않고 '주기'까지 하면 뭘 더 시켜줘야 할지 막막하다. 소개하면 그만이다.
둘로 나뉘어진 조국, 그런대로 살아지더라고요.
→ 둘로 나뉜(나누어진) 조국, 그런대로 살게 되더라고요.
접속사는 사족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자에 따르면, 400쪽에 달하는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는 접속사가 단 한 번 나온다고 한다. 접속사가 없으면 독자가 길을 잃을 것이라는 생각은 오만이거나 기우다.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과제는 마지막에 나온다. '문장 다듬기'라는 다소 밋밋한 제목이지만, 그 내용은 준엄하다. 우리말의 흐름을 살피라는 조언이다. 번역체가 오염시키는 우리말 문장이 많다. 주어와 술어가 호응하는 것은 물론이고, 문장 안에서 주어, 목적어, 술어가 자연스러운 흐름을 타고 배치되어야 한다. 우리말에는 조사가 있어 주어나 목적어가 아무 위치에 있더라도 뜻은 통한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문장은 아니다.
계속 걸어간 나는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어떤가? 잘 읽히고 뜻도 잘 통한다. 하지만 소리 내어 읽어보고, 다음 문장과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나는 계속 걸어서 마침내 목표 지점에 도착했다.
처음 문장이 번역체에 물든 문장이라는 사실이 이제 잘 보인다.
마지막으로 명심할 점이 하나 더 있다. 문장의 주인은 전지적 시점의 작가, 즉 내가 아니고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다. 전지적 시점에서 쓰다 보면, 해야 할 이야기를 생략하고, 논리 사이를 도약할 위험이 있다. 기억하자. 문장의 주인은 문장 안의 주어와 술어다.
문장 다듬기에 관한 또 하나의 좋은 책, 장순욱의 <글쓰기 지우고 줄이고 바꿔라>를 보면, 문장이 깔끔한지 아닌지는 호흡으로 알 수 있다고 한다. 소리 내어 읽어보라는 것이다. 읽다가 혀가 꼬이는 문장은 더 깔끔하게 고칠 구석이 있는 문장이다.
맺음말
아침 일기를 쓰다 보면, 어느새 문장이 좋아진다. 6개월 전의 일기와 어제 쓴 일기를 비교해 보라. 분명 문장의 흐름 자체가 달라졌을 것이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을 작정으로 시작한 글이라도, 이왕이면 깔끔하게 쓰는 것이 낫지 않나. 이제부터 아침에 일기를 쓰고 나서, 몇 분만 투자해서 쓴 글을 소리 내어 읽어 보자.
까만 양복에는 까만 구두로 매치를 하라는 조언에, "까만 양복에 하얀 운동화가 어때서요?"라고 반문하는 것이 초보자라고 한다. 늘 그래왔기에 뭐가 문제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문제를 보기 시작하면 초보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책읽기와 마찬가지로 글쓰기도 근육을 키워야 한다. 진지한 자세로 글을 쓰다 보면, 길게 늘어지던 표현이 짧고 명료하게 바뀌고, 쓸데없는 반복이나, 필요 없는 수식어구, 아무 의미 없는 판에 박힌 표현이 사라진다. 그러다 보면, 나만의 문체가 살아난다. 나만의 문체라니, 즐거운 상상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