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브라이언 클레그, <산만한 건 설탕을 먹어서 그래>
물리학을 전공한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사람이, 흔한 오해를 해설한다는 책이다.
(출장길에서) 스낵처럼 읽을 생각으로 골랐는데, 지뢰, 아니, X 밟았다.
이 책에서 (사람들이 흔히 하는) '오해'라고 부르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흔히들 잘못 알고 있었지만, 잘못이라는 사실이 (이미) '널리' 밝혀진 사례들
2. 없는 오해를 있다고 어거지를 쓰고 반박
3. 문장이나 단어를 교묘하게 바꿔 오해라고 어거지를 쓰고 반박
4. 오해가 아닌데 반박
이 책 분량의 반은 1번, 나머지 반은 2번과 3번이다.
1번은 그냥 아는 척을 하고 싶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자.
2, 3번은 톰 필립스가 말하는 '사기' 내지 '헛소리(BS)'다.
정치를 하려면 그쪽으로 가든가,
대체 왜 여기서 이러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더 심각한 것은 4번이다.
예컨대 '유기농이 몸에 좋다'라는 명제는 참/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논점이다.
나도 잔류 농약 대 기생충 구도에서 저울질을 하는 문제다.
'채식이 기후변화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된다'라든가
'인플레이션이 실업률 증가보다 나쁘다' 같은 부류의 명제란 말이다.
소크라테스라면, 이런 사람도 아주 나이스하게 "아주 훌륭한 사람이여~"라고 부르면서
뭐가 잘못됐는지 지적해 주고 '계몽'해 주었겠지만,
당연히도 나는 그렇게 나이스하지 않다.
이 책은 그냥 스킵하시기를 추천한다.
희대의 불쏘시개다.
그러나, 쓰레기에 관한 지식도 지식이다.
조금 더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해서 몇 가지 사례를 살펴보자.
1. 흔히들 잘못 알고 있었지만, 잘못이라는 사실이 (벌써 옛날에) 널리 밝혀진 사례들
아쉽지만, 이 책에서 오해라고 부르는 것들은 이미 다른 책들이 10~20년쯤 전에 다 반박한 것들이다.
토스트를 손에서 놓치면 버터 바른 쪽이 바닥과 키스한다는 머피의 법칙 대표 사례를 보자.
이건 보통 사람의 허리 높이에서 떨어지는 빵 조각이 낙하하면서 반 바퀴 정도밖에 돌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니까 사람 키 문제다. (야오밍이 떨어뜨릴 경우 1바퀴를 돌아 깨끗한 면으로 착지할지도 모른다.)
이미 이 문제를 해설한 책을 몇 권은 본 것 같다.
그냥 책 분량을 늘리고 싶어 카피했으리라는 심증이 매우 강하지만,
혹시 아직 그런 책들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고 넘어가 주자.
이 부류에 해당하는 것들을 몇 개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 번개는 같은 곳에 두 번 떨어지지 않는다. (똑같은 확률이다.)
- 인간은 뇌의 10%만 쓴다. (할 말 없음...)
- 사람이 죽은 후에도 머리카락과 손톱이 자란다. (피부가 수축해서 그렇게 보인다.)
- 평생 가질 뇌세포를 몽땅 가지고 태어난다. (나중에도 생긴다.)
- 침팬지와 고릴라는 인류의 조상이다. (공통 조상에서 갈려 나왔다.)
- 정확도가 99%인 의료 검사에서 양성이 나오면 병에 걸렸을 확률이 99%다. (흔한 통계 오류)
- 물이 빠지는 방향은 남반구에서 북반구와 다르다. (코리올리의 힘은 그렇게 크지 않다.)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진짜 오해'가 딱 한 개 있는데 (한 개라도 있어서 정말 다행이다)
인간에게는 5감이 있다는 상식이다.
오감 이론은 (다른 모든 이론과 마찬가지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만들었다.
매우 직관적이기도 하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그 외의 감각도 우리는 가지고 있다.
예컨대 뜨거운 물체 가까이 손가락을 가져가면, 물건에 닿기 전에 우리는 열기를 느낀다.
복사열을 감지하는 뉴런 때문이다.
가속도나 평형을 느끼는 감각도 있으며, 이 사실(전정/평형기관)은 우리가 학교에서 배운다.
이들 감각을 5감과 같은 부류로 생각하지 않았을 뿐이다.
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인간 감각의 수를 20~30개 정도로 추정한다고 한다.
2. 없는 오해를 있다고 어거지를 쓰고 반박
- 인구 폭발로 식량 위기가 올 것이다. (엉?)
- 모든 물은 전기가 잘 통한다.
-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걸 보고 만류인력을 발견했다. (이솝우화는 반박 안 하나?)
- 원자는 태양계의 축소판이다. (어거지꾼들 때문에 비유도 못 하겠다. 게다가 20세기 초에나 하던 비유다.)
- 국제 우주정거장에는 중력이 없다. (중력이 '없는' 곳은 없다. 말이 좀 되게 하려면, '국제 우주정거장에서의 중력은 생각보다 강하다' 정도로 하면 되겠지만, 이 사람은 클릭 유도 낛시질이 전공인데 이런 밋밋한 문장이 맘에 들 리가 없다.)
- 태양은 노란색이다. (유치원생들과 논쟁할 각.)
딱히 설명이 필요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3. 문장이나 단어를 교묘하게 바꿔 오해라고 어거지를 쓰고 반박
2번과 비슷하게 들리지만, 3번은 말장난이라는 기교에 해당한다.
상대방의 말을 비틀어 이상한 명제를 만들어 놓고, 그걸 반박하는 것이다. (정치인들의 기본 덕목이다.)
예를 들어보자.
30번은 '빅뱅 이론이 우주의 기원을 밝힌다'다.
이게 오해라고 하고 하는 말이,
빅뱅 이론은 우주의 기원 '이후'를 밝힌다고 말한다.
(난 적어도 인플라톤 이야기 정도는 나올 줄 알았다.)
'우주의 기원'이라는 표현의 의미를 가지고 장난을 친 것이다.
'원숭이가 인간의 (직계) 조상이다'라든가
'소행성이 지구와 충돌해 공룡이 멸종했다' 하는
주장도 이 부류에 속한다.
원숭이 이야기는 앞에서 했고,
소행성 공룡 멸망에 관해서는,
하나, 소행성 충돌 이외에 기후 변화, 먹이 부족 등 다양한 원인이 있었고
둘, 공룡이 죄다 멸종한 게 아니다,
정도로 정리되는데
A가 B의 원인이다, 라는 말은 그게 유일한 원인이라는 말과 다르고,
공룡이라는 단어를 새롭게 정의해서 멸종하지 않았다고 하는 주장은,
정말, 할 말이 없다.
가서 정치나 해라.
(보리스 존슨 후임자로 딱이다. 영국인이니까.)
4. 그냥 헛소리
대표적으로, 이 책 제목인 '산만한 건 설탕을 먹어서 그래'가 있다.
제목은 설탕 섭취와 ADHD의 관련성을 반박할 것처럼 써놨지만,
사실은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는 같지 않다는, 뻔한 얘기다.
무지개 색은 7개가 아니라며, 무수히 다른 파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
당연한 것 아닌가?
심지어 이 숫자는 문화권에 따라 다르다.
빛이 제일 빠르다는 게 오해라고 하면서
전자가 빠른 경우가 있다고 한다. (물론 매질 이야기도 한다.)
이쯤 되면 할 말이 없다.
바닷물에는 소금이 없다는 주장도 대단하다.
Na+, Cl-가 있는 것이지, NaCl은 (별로) 없다는 얘기다.
이 사람은 아마 화성인이라서 지구 사람들 말을 잘 모르는 모양인데,
사람들이 바닷물에 소금이 (녹아) 있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그 뜻으로 말하는 거다.
중세 사람들은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다는 오해에 반박하면서,
17세기 시인 존 던의 싯구를 인용한다.
At the round earth's imagin'd corners, (John Donne, Holy Sonnet 7)
round라는 단어는 분명히 우리말에도 있는 '둥근'이라는 단어다.
그런데 이 단어는 3차원뿐 아니라 2차원에도 쓰인다.
영어든 한국말이든.
지구평평설 지지자들이 주장하는 그림을 보면,
지구가 평평하기는 해도 원반이다.
아주 round하단 말이다.
사족.
북극성이 밤하늘에서 제일 밝은 별이라는 오해가 있다는 주장은 이 사람에게서 처음 들었다.
화성인이 아니라, 어디 아주 다른 성계에서 온 외계인이 틀림없다.
아쉽게도 영국 총리는 못하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