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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라니... 그래, 재앙 맞다

<나는 매일 재앙을 마주한다>

by 히말

지나치게 재치발랄한 제목


이 책을 윌라로 듣다가, 전자책으로 찾아보려고 밀리를 열고 검색어를 쳤다.


매일 재난


없다.

그래서 윌라를 켜고 제목을 재확인했다.


나는 매일 **재앙**을 마주한다


재앙이라니, 놀랍다.

이 책의 공저자는 한국인이니, 재난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골랐다는 것이다.


우리는 남의 시선을 끌고 싶어하고, 그래서 과장을 하게 된다.

그러나, 경험으로 모두가 알듯, 그 결과는 대개 정반대다.

제목을 처음 보고 소방관 이야기일까, 하고 생각한 것도 당연하다.


사족으로, 밀리에 이 책은 없었다.

저절로 잘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아닌 다음에야, 보통 있는데 말이다.

설마, 이 책이 베스트셀러는 아니겠지.

(그랬다면 우리가 매일 재앙을 마주할 리가 없다. 적어도, 앞으로는 그렇겠지.)


아무튼, 눈으로 확인할 텍스트가 없는 책을 리뷰하게 생겼다.

정신 두 배로 챙기고 귀를 쫑긋해야 한다.



알아야 사랑한다, 지구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이라는 하찮은 존재에 비하면 거대한 행성이지만,

지구라는 에코시스템은 어쩌면 위태로운 균형 위에서 춤을 추는 곡예사와 같다.

알면 알수록 놀라운 되먹임 장치가 곳곳에서 암약하는 경이로운 시스템이고,

타격을 받아도 다시 균형을 회복하는 놀라운 탄력성을 가졌지만,

그 탄력성에도 한계는 있다.


인류는 바로 지금, 그 탄력성을 시험하고 있다.


빙하에 대해 살펴보자.

물 위에 떠 있는 얼음덩어리인 북극 빙하에 비해,

남극대륙이라는 땅덩어리 위에 존재하는 남극 빙하가 훨씬 더 거대하고,

녹아내릴 경우 그 파괴력도 훨씬 크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조금 살펴보면, 이 시스템 역시 취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다양한 빙하의 종류 중에 빙붕이라는 게 있다.

한쪽은 땅에, 다른 쪽은 바다에 걸친 빙하의 종류다.

그냥 대륙 빙하의 가장자리라고 생각하면 되기는 하지만,

빙붕을 빙붕이라 부르며 구분하는 이유는, 빙붕의 역할이 중요해서다.


빙붕이 존재하는 한, 적어도 육지의 빙하가 바다로 투하될 일은 없다.

그러나 빙붕이 사라지면, 육지의 빙하는 미끄러져 바다로 투입될 수 있다.

해수의 총량이 증가한다는 이야기다.

수많은 영화에 나오는, 해수면 상승으로 대도시들이 침수되는 시나리오의 시작이다.


https://namu.wiki/w/%EB%B9%99%EB%B6%95



멕시코 만류, 아니 AMOC


캐나다보다 위도가 높은 잉글랜드가 따뜻한 이유, 바로 멕시코 만류(Gulf Stream)다.

멕시코 만류는 훨씬 더 거대한 해류 순환 구조의 한 부분인데,

이것이 대서양 자오선 순환(Atlantic Meriodinal Overturnning Circulation, AMOC)이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이렇다.

적도에서 가열된 바닷물은 대류에 의해 더 찬 바다, 즉 북쪽으로 이동한다.

충분히 차가운 곳, 예컨대 영불해협 정도에 도착하면, 바닷물은 냉각되는데,

이 과정에서 당연히 밀도가 높아지면서 무거워진다.


무거운 바닷물은 깊은 바다로 하강하고, 심해에서 이 바닷물은 다시 남쪽으로 흘러가며

순환 고리를 완성한다.

지구의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아주 중요한 시스템이다.


기후변화는 바로 이 시스템을 공격한다.

바닷물이 충분히 식어야 하는 곳의 온도가 너무 높아 냉각이 잘 안 된다든가,

폭우나 홍수의 영향으로 바닷물의 염도가 낮아지고, 이에 따라 바닷물의 밀도가 낮아져

냉각된 해수가 심해로 가라앉는 힘이 약해지는 등의 방식이 대표적이다.


AMOC에 의한 열수송에 교란이 발생하여 나타날 수 있는 현상 중 하나는

멕시코 만류의 북쪽 한계, 즉 서유럽과 북유럽에 추위가 발생하는 것이다.

열수송이 제대로 안 되니 당연한 결과다.


지구온난화라는데 어떤 곳은 왜 더 추워지냐는 질문에 대한 대답 중 하나다.



https://greenium.kr/news/26875/



건구온도와 습구온도


2024년, 인도나 중동에서 50도니 60도니 하는 기온이 측정되었다는 뉴스를 들었을 것이다.

사람이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는 100도씨에 가까운 사우나에도 들어간다.

인간이 사우나나 2024년 인도/중동의 고온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공기가 (나름) 건조해서다.


건조한 공기는 습기를 빠르게 빨아들인다.

땀이라는 인간의 체온 관리 시스템이 작동하기 좋은 환경이다.


그런데, 습도가 높은 공기라면 어떨까?

습도가 100%인 공기라면, 더는 수증기를 빨아들일 여력이 없다.

땀이 증발할 수 없으니 그 훌륭한 체온 관리 시스템도 소용없다.


기온은 건구온도로 측정한다.

대기의 상대습도가 100% 이하인 경우를 측정하는 것이다.

반면, 습구온도란 습도가 100%인 경우에서 측정하는 온도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습구온도 31도 정도만으로도 인간은 생존하기 어렵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습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더 신경쓰이는 이야기다.

(물론, 습도가 높아서 기온이 덜 올라간다는 유리한 측면도 있기는 하다.)



두 번 읽어라


이 책을 들으며 느낀 점은 크게 보아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아, 그렇군. 왜 그 부분은 생각 못 했지?" 하는 고마운 마음이었다.


두 번째는, 모험가(?)라는 시대착오적인 직업을 가진 주인공이 지구 곳곳을 놀러다니(며 어쩌면 지구온난화를 가중시키)는 이야기를 접하는 당혹감,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을 은어(전문용어) 한 마디로 은근슬쩍 넘어가는 패기,

영어 사용자와 한국어 사용자의 공저라는 성격 때문인지 몰라도,

가끔 나오는 이해하기 어려운 번역투와 클리셰에 대한 거북함이 상호작용하는 묘한 반감이었다.


그래도 배운 점은 다시 확인해야겠다는 생각에, 두 번째 청취를 시작했다.

저런 사소한 단점들을 완전히 상쇄하고도 남는 깊은 배움이 있었다.


너무 고마운 책이다.

그러니, 의심될 때는 두 번 읽자.


우리가 매일 만나는 것이 재앙 그 자체는 아직 아닐지 몰라도,

우리가 재앙으로 가는 길을 향해 매일 한걸음씩 떼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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