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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ul 08. 2018

제정신으로 사는 법

[서평] 필리파 페리, <인생학교 - 정신>

이 책을 읽는 중에, 예전에 본 가필드 만화가 생각났다. 고양이 가필드의 주인 존은 아침 선잠에 빠져 있다. 조금 후에 가필드가 와서 일어나라고 재촉할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처음에는 그저 야옹거리겠지만, 안 일어나면 자기 머리 위로 올라와서 엉덩이를 얼굴에 깔고 냄새를 피울 것이다. 상상만으로도 존의 얼굴은 붉어진다. 조금 후에 가필드가 웃는 얼굴로 나타난다. 존은 가필드에게 소리친다.

"알았어! 알았다고! 일어나면 될 거 아냐!"

내가 뭘 어쨌다고? 가필드는 영문도 모른 채 으쓱한다. 살면서 받는 스트레스 중 상당수는 이렇게 스스로 만든 것 아닐까?

평소에 이러니, 아주 근거 없는 망상은 아닐 지도...



이 책의 원제는 <제정신 유지하는 법(How to Stay Sane)>이다. 심리치료사인 저자의 내공이 드러나는 책이다. 책 읽는 데서 끝내지 말고, 책에 나오는 훈련을 따라 해 보는 것이 요점이다.

제정신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는 네 가지의 영역을 관리해야 한다. 그 첫째는 자신의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것이다. 예컨대 누구와 대판 싸웠다면, 그 싸움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가 스스로 만들어낸 근거가 무엇이든, 적어도 내가 싸움을 하고 싶을 정도로 그를 미워했다는 감정만은 사실이다.

우리의 감정은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옳거나 그른 것이 아니다. 도덕적으로 옳은가 그른가는, 감정을 행동으로 옮길 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55쪽)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서, 자기 자신을 관찰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다음 다섯 가지 질문에 시시때때로 대답을 해보자. (괄호 안은 내가 임의로 덧붙인 것이다.)

1. 지금 내 기분은 어떻지? (느낌)
2.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생각)
3. 지금 이 순간 내가 뭘 하고 있지? (행동)
4. 지금 내가 어떤 식으로 숨을 쉬고 있지? (호흡)
5. 이제 내가 나 자신에게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선택)


두 번째 영역은 인간관계다. 저자의 말대로, 인간관계에 하우투(how-to)란 없다. 그러나 도움이 되는 훈련법은 있다. 심리치료사 버지니아 사티어가 고안한 '일상적 온도 확인'이라는 훈련을 해보자.

1단계 감사하기
2단계 새로운 소식과 근황 주고받기
3단계 질문하기
4단계 불만 얘기해보기
5단계 바라는 것, 희망하는 것, 꿈꾸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96쪽)

감사하기든, 근황 얘기든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 3단계 '질문하기'는 우리가 주위 사람들에 대해 가지는 '혼자만의 추측'을 교정하기 위한 질문을 하는 단계다. 오해가 관계를 해치는 법이다.

세 번째 영역은 유익한 스트레스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괴로움과 부끄러움이 우리를 성장시킨다. 안전지대를 확장하는 훈련을 해보자. 큼지막한 백지에 동심원을 여러 개 그리고, 안에서부터 채워 나간다.

지극히 편안한 기분으로 할 수 있는 일들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를 조금 다그쳐야 하는 일들
하고는 싶지만 용기를 내기 힘든 일들
너무 두려워서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지만, 그래도 하고 싶은 일들 (140-142쪽)

안에서부터 바깥으로 안전지대를 조금씩 넓혀가는 것이 요령이지만, 자신을 너무 밀어붙여 해로운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주의한다.

네 번째 훈련은 이야기 만들기다. 이야기들이 모여 우리의 정신을 만든다. 따라서 자신의 이야기를 직접 써나가자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대개 문제가 되는 것은 고정관념이다. 고정관념은 스스로를 강화하는 신통한 재주를 가지고 있다. 확증 편향이 바로 그것이다. 객관적으로 사태를 바라보게 하도록, 심리치료사가 자주 쓰는 방법의 하나가 이야기 치료다. 

환자에게 그것이 친구의 문제라고 상상해보라며 그럴 경우에 그 친구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겠느냐고 묻는 식이다. 이런 이야기 치료기법은 환자 스스로가 자신으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진 채로 자신을 바라보게 만든다. (154쪽)

지노그램 예시 © SmartDraw


제5장에서는 제정신으로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일곱 가지 훈련이 나와 있다. 심리치료사답게 실천 가능한 항목들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따라 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아침에 짧게라도 명상을 매일 해야지 하는 생각과, 일주일에 한 번이라면 30분 생각관찰 훈련도 해볼 만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노그램(genogram)은 가계도를 그려 보면서, 나의 성격과 버릇이 어디에서 왔는지 반추해 보는 기법인데, 역시 유익한 훈련으로 보인다. 나라는 존재는 세상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내 성격의 반이 유전자에서 왔다면, 어디에서 왔는지 찬찬히 생각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이 책이 대단하다고 느끼는 점은, 마치 유명 셰프가 자신의 요리 비법을 모두 다 까발려 놓은 듯한 내용 때문이다. 그런 요리책을 읽었다면, 요리를 직접 해보지 않고는 뭘 배웠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자기관찰 5단계를 배워 실천하려고 한다. 지금 나는 어떤 숨을 쉬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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