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둔필승총 250714

by 히말

클레어 키건, <너무 늦은 시간>


세 개의 단편 모음집. 클레어 키건이라는 기대감이 없었다면 중박은 칠 만한 이야기들이다. 클레어 키건 특유의 필체는 살아 있지만, 사람들이 클레어 키건에게 열광했던 이유는 소설 속 주인공의 따뜻한 마음씨 때문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게 없는 이 책의 세 단편은, 그저 잠시 재미있게 즐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9791130664903.jpg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3>


속편(2편)을 읽는 것은 어리석으나 이해할 만한 행동이다.

3편을 읽는 것은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행동이다.



센길 멀러이너선, 엘다 샤퍼,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좋았던 점. 결핍(특히 가난)에 고통받는 사람이 어떤 한심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가 한심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현재 닥친 문제들만을 연이어 해결해야 하는 터널링, 즉 시야와 해결능력이 좁아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금전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재무 교육에 열의가 없는 것은, (교육 프로그램이 엄청 재미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현재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다, 라는 통찰.


웃겼던 점. 이 책의 저자들은 사회학자라기보다 언어의 마술사들이다. 포장술이 대단하다. 예컨대, 이들은 어떤 문제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보다 그 문제를 무시했을 때의 결과를 다르게 만들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아주 그럴 듯한 새로운 아이디어 같이 들린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보면 어디에서 아주 많이 듣던 얘기다. 다름 아닌 바로 넛지다. 이 책 내용은 거의 전부가 이런 식이다. 새로운 내용 1도 없이 새로운 용어를 남발하며 책을 쓰다니,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 책의 결론. 결핍에는 집중력이라는 좋은 점이 따라온다. 그러나 결핍을 유도하지는 말자. 그 장점을 상쇄하고 남는 엄청난 단점들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450D000223171.jpg


천위안,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심리학을 삼국지에 결합한 시도는 재미있다. 예컨대 여백사를 죽인 조조를 보며 진궁은 '인지적 부조화'에 당황했으며, 자신도 여백사 일가 몰살에 가담했으면서 조조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행위는 '자기위주 편향(self-serving bias)'이고, 유비는 그룹 내에서 보스 위치에 있어 거짓말에 능했다 등등.


다만, 정사 삼국지를 조금도 참고하지 않고 도겸을 사람좋은 할아버지, 유비를 무능한 도덕군자로 묘사하는 것은 대부분의 삼국지 덕후들에게 거슬리는 요소다.


더 문제인 것은 그가 소설 삼국지조차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소가 원술을 아꼈다든가, 장료가 고순의 부하였다든가 하는 댕소리는 삼국지 덕후들을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삼국지가 소재라는 점을 빼면 장점이 없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주간 메모 - 2025년 7월 둘째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