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레어 키건, <너무 늦은 시간>
세 개의 단편 모음집. 클레어 키건이라는 기대감이 없었다면 중박은 칠 만한 이야기들이다. 클레어 키건 특유의 필체는 살아 있지만, 사람들이 클레어 키건에게 열광했던 이유는 소설 속 주인공의 따뜻한 마음씨 때문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런 게 없는 이 책의 세 단편은, 그저 잠시 재미있게 즐기는 이야기일 뿐이다.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3>
속편(2편)을 읽는 것은 어리석으나 이해할 만한 행동이다.
3편을 읽는 것은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석은 행동이다.
센길 멀러이너선, 엘다 샤퍼, <결핍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가>
좋았던 점. 결핍(특히 가난)에 고통받는 사람이 어떤 한심한 행동을 하는 것은, 그가 한심한 인간이어서가 아니라 그가 현재 닥친 문제들만을 연이어 해결해야 하는 터널링, 즉 시야와 해결능력이 좁아진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금전 문제를 겪는 사람들이 재무 교육에 열의가 없는 것은, (교육 프로그램이 엄청 재미없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들이 현재 그런 사소한(!) 일에 신경 쓸 여유가 없어서다, 라는 통찰.
웃겼던 점. 이 책의 저자들은 사회학자라기보다 언어의 마술사들이다. 포장술이 대단하다. 예컨대, 이들은 어떤 문제를 무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보다 그 문제를 무시했을 때의 결과를 다르게 만들면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아주 그럴 듯한 새로운 아이디어 같이 들린다. 그러나 잠깐 생각해 보면 어디에서 아주 많이 듣던 얘기다. 다름 아닌 바로 넛지다. 이 책 내용은 거의 전부가 이런 식이다. 새로운 내용 1도 없이 새로운 용어를 남발하며 책을 쓰다니, 대단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어쨌든 이 책의 결론. 결핍에는 집중력이라는 좋은 점이 따라온다. 그러나 결핍을 유도하지는 말자. 그 장점을 상쇄하고 남는 엄청난 단점들도 따라오기 때문이다.
천위안, <심리학이 조조에게 말하다>
심리학을 삼국지에 결합한 시도는 재미있다. 예컨대 여백사를 죽인 조조를 보며 진궁은 '인지적 부조화'에 당황했으며, 자신도 여백사 일가 몰살에 가담했으면서 조조에게 모든 책임을 돌리는 행위는 '자기위주 편향(self-serving bias)'이고, 유비는 그룹 내에서 보스 위치에 있어 거짓말에 능했다 등등.
다만, 정사 삼국지를 조금도 참고하지 않고 도겸을 사람좋은 할아버지, 유비를 무능한 도덕군자로 묘사하는 것은 대부분의 삼국지 덕후들에게 거슬리는 요소다.
더 문제인 것은 그가 소설 삼국지조차 제대로 읽지 않았다는 점이다. 원소가 원술을 아꼈다든가, 장료가 고순의 부하였다든가 하는 댕소리는 삼국지 덕후들을 분노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결론적으로, 삼국지가 소재라는 점을 빼면 장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