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푸시킨의 <대위의 딸>을 읽고 분명 글을 썼는데, 찾을 수가 없다.
푸가초프로 검색해서 안 나오는 바람에,
푸쉬킨, 푸시킨, 계속해서 검색해도 안 나온다.
드디어 '대위'를 검색하니 나왔는데,
https://blog.naver.com/junatul/221202384287?trackingCode=blog_bloghome_searchlist
뿌가초프, 뿌쉬킨이었다.
그때 읽은 책에 이런 식으로 쓰여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걸 엿들어 보면, ㅃ보다는 ㅍ인 것 같은데... 어쨌든.)
<대위의 딸>을 읽었을 당시, 단연코 돋보이는 캐릭터는 푸가초프였고,
특히 푸가초프와 그 부하들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전략 회의를 하는 장면이 돋보였다.
그래서 나중에 웹소설 쓸 때, 비밀결사 조직 이름을 푸가초프라고 짓기도 했다.
그런데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다시 읽다 보니,
유시민은 18세의 여주인공이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한다.
얼마나 인상 깊었느냐 하면, "접시 위에 닭똥만 한 눈물방울을 뚝뚝 떨구었다"라고 번역되어 있던 문장을 기억하는 정도다.
어쨌든, 내게 <대위의 딸>은 관찰자 표트르가 주인공 푸가초프의 이야기를 서술하는 서사다.
그러나 <왕의 신하들(All the King's Men)>이 주인공 윌리 스타크뿐 아니라 관찰자 잭 버든의 이야기이기도 하듯,
<대위의 딸> 역시 표트르의 기나긴 서사시이기도 하다.
푸가초프와 윌리 스타크는 사건을 주도하고,
표트르와 잭 버든은 정신적으로 성장한다.
이 소설은 푸가초프가 처형되고, 푸가초프의 반란에 연루된 표트르가 구사일생으로 사면되어 해피엔딩을 맞는 것으로 끝난다.
사면을 한 주체는 인자하기 이를 데 없는 여제, 예카테리나다.
예카테리나는 역사에 이름을 남긴 몇 안 되는 여성 권력자이기도 하지만,
러시아의 수많은 차르들과 마찬가지로 아주 악랄한 전제군주였다.
그러나 이 책만 읽어서는 그런 느낌은 1도 받을 수 없다.
'아름다운 것은 기본이고' 현명하며 인자한, 그야말로 완벽한 군주다.
예카테리나에 관한 이 서술을 유시민은 이렇게 말한다.
전제군주 시대에 자유주의를 부르짖는 소설이 나오기 위해 치러야 했던 세금이라고.
그러나 이렇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인류 역사는 수많은 악한 군주들의 통치로 떡칠되어 있다.
그러나 그 군주들에 관한 기록들 중에는 낯 뜨거울 정도로 아부에 가득한 묘사가 무수히 많다.
게다가 그중에는 위대한 문필가들이 남긴 기록들 역시 매우 많다.
이들이 모두 목숨이 아까워 아부를 한 것일까?
폭군의 초상화를 그리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그 흉악한 모습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다.
그가 그 흉포한 모습에 충격을 받고 정신 차리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또 하나는 인자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그리는 것이다.
무릇 군주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 라는 메시지다.
이 방법이 히틀러나 네타냐후에게는 먹히지 않겠지만, 그래도 사람이라면 뭔가 느끼는 게 있지 않을까.
내 이야기가 아니다.
대학 시절 은사님께서 수업 시간에 하셨던 이야기다.
이성원 교수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