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적 유전자의 본질

[책을 읽고] 리처드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 (8)

by 히말

무법자 유전자 개량 버전


지난 글에서 다룬 무법자 유전자는 사실 두 가지 형태 중 하나였다.

대립 유전자에 대해 무법자적인 이기성을 보이는 유전자('무법자 대립 유전자')다.

도킨스는 다른 종류의 무법자 유전자를 설명한다.


'옆으로 확산하는 무법자 유전자'라고 명명된 이 유전자는

<네이처>에서 '이기적 DNA'라는 이름으로 널리 통용되는데,

무법자 대립 유전자에 비해 훨씬 더 포괄적인 전략으로 이기적 전략을 발휘한다.


outlaws.jpg '나쁜 놈과 더 나쁜 놈'


정크 DNA는 DNA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쓸모없는' 유전자다.

(요즘 정크 DNA의 역할에 관한 연구가 활발해지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정설이 되어가고 있으나, 도킨스의 책을 다루는 이 글에서는 도킨스의 논지를 따라가겠다.)


개체의 관점에서 보면 정크 DNA의 존재는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익을 보는 것이 유전자라는 관점, 즉 '이기적 유전자'의 관점에서 보면,

아무 일도 안하고 기생하며 번식하는 정크 DNA야말로 최고 효율 전략이 아닐 수 없다.


이기적 DNA 가설은 이런 가정을 거꾸로 뒤집는다. 즉, 표현형 형질은 DNA의 자기 복제를 도우려 존재하며, DNA가 관례적 표현형 발현을 무시하고 자기를 복제하는 더 빠르고 쉬운 방법을 찾는다면, 선택은 그렇게 하도록 작용할 것이다. (9장 중에서)


유전체 풀에 끼어드는 유전자 조각은 플라스미드나 바이러스와 같이 실제로 존재한다.

숲이나 연못이 하나의 안정적 군집으로 존재하는 중에도, 그 군집을 구성하는 개체들을 끊임없이 변화한다.

유전체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법자 유전자는 단지 대립 유전자를 상대로 자리싸움만을 할 필요가 없다.

하나의 의자를 두고 대립 유전자와 경쟁하는 대신,

전혀 상관없는 자리의 의자를 찾아가거나,

아예 다른 자리에 새로운 의자를 만들어도 생존과 번영이라는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선택은 이기적 DNA를 ‘옆으로’ 확산하는 능력, 유전체 어딘가 새로운 좌위에다 자신을 복제하는 능력 덕분에 선택한다. (9장 중에서)


이는 마치 바이러스가 숙주를 지배하는 과정이나 암세포가 전이하는 현상과 유사하다.

그래서 어떤 생물학자들은 기능없는 유전자의 확산을 '유전체의 암'이라 지칭한다.


그런데 만약 체세포 내 유전자가 생식세포에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면 어떨까?

도킨스가 이 책을 쓸 당시 이런 '최신' 연구가 있었고,

이에 따라 라마르크 진화론, 즉 획득 형질의 유전 이론이 부활한다는 얘기가 있었나 보다.


Jean-Baptiste_de_Lamarck.jpg 나 부활 각?



라마르크 진화론이 아니라 다윈 진화론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도킨스는 이 현상 또한 다윈 진화론으로 설명 가능하다고 말한다.


라마르크와 다윈의 진화론이 다르게 보이는 현상은, 개체를 선택 단위로 볼 때 나타난다.

복제자, 즉 유전자를 선택 단위로 본다면, 그것이 체세포에 있든 생식세포에 있든 다른 현상이 아니다.


스틸의 복제자는 세포핵에 있는 DNA 분자다. 이는 그저 다윈주의가 말하는 복제자와 비슷한 게 아니라 바로 다윈주의가 말하는 복제자다. (9장 중에서)


또는 이렇게 설명할 수도 있다.


이론은 우리가 단지 생식 계열이 정말로 무엇인가라는 점을 오해하고 있었다고 논리적으로 함축한다. 프로바이러스 방식으로 생식세포에 운반되는 후보인 ‘체’세포에 있는 유전자는 모두 정의상 생식 계열 복제자다. (9장 중에서)


생식세포에서 순전히 우연으로 발생하는 돌연변이에'만' 의존하는 것으로 기존의 다윈 진화론을 이해한다면,

진화는 우연에 기대는 훨씬 더 길고 지루한 과정이었을 수 있다.

반면, 개체 내지 다른 운반자가 아닌 유전자 자체를 선택압의 주체로 생각하면, 문제가 쉬워진다.


전통 다윈선택을 단순히 이해한다면, 필요한 공적응 돌연변이를 동시에 모두 갖춘 운 좋은 개체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여기가 클론 선택이 구원자로 등장하는 지점이다. 하나의 주요 돌연변이, 가령 척추 길이의 연장은 목에 이런 환경에서 번영할 수 있는 세포의 클론을 선택하는 조건을 조성한다. (9장 중에서)


라마르크 진화론에 관한 오해에 관해서는, 그 굴드조차 현명한 지적을 한 적이 있다.


굴드(Gould, 1979)는 획득 형질의 유전이 그 자체로 라마르크주의가 아니라고 말할 때 이와 관련한 생각을 밝혔다. 즉, “라마르크주의는 방향성이 있는 변이를 말하는 이론이다." (9장 중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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