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브루틴 비유와 적합도

[책을 읽고] 리처드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 (9)

by 히말

이번 글에서는, 7장과 10장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적합도에 관한 단상


제10장은 '적합도'에 관한 것이다.

도킨스는 개체 중심적 사고가 적합도라는 개념을 싸고 도는 복잡한 난상토론을 유발했다고 말한다.

개체가 아닌 유전자 중심적 사고를 채택하면,

서로 미묘하게 다른, 무려 다섯 가지나 되는 적합도라는 개념으로 골머리를 썩을 이유가 없다.


처음부터 포괄 적합도를 최대화하는 이기적 개체가 아니라 자기 생존을 최대화하는 이기적 유전자로 사고했다면, 이런 문제는 일어나지 않으며 임의적인 ‘명예 이배체’ 방법도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딸에게 이타적 행위를 하고자 ‘고심하는’, 벌목 수컷 몸속에 자리한 ‘지적 유전자’를 생각해 보자. 지적 유전자는 틀림없이 딸 몸에 자기 사본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지적 유전자는 자신이 탄 현재 수컷 몸에 비해 딸 유전체에 두 배나 많은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염려’하지 않는다. (10장 중에서)


벌목 곤충의 반수체가 개체 차원에서 본능을 넘어서는 어떤 고뇌를 한다는 상상 자체가 필요없다.

해밀턴의 유명한 예시에서, 우리는 물에 빠진 사람과의 근연도를 계산하지 않는다.

유전자가 한다.


dae4bc99-09f1-4b2b-a08b-058fe6d530e3.jpg


생물 개체와 컴퓨터 프로그램


7장은 이기적 유전자를 컴퓨터 프로그램 서브루틴에 빗대어 설명한다.


동물을 보는 생물학자는 숨겨진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컴퓨터를 보는 공학자와 어느 정도 같은 입장에 있다. (7장 중에서)


이 비유가 절묘한 것은,

하나의 컴퓨터 내지 프로그램 내에서 서로 경쟁하는 서브루틴(함수)을 생각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바로 이 서브루틴이 '이기적 유전자'다.


예를 들면, 벌이 집을 구하는 방법에는 스스로 만드는 방법과 남의 집을 빼앗는 방법이 있다.

두 가지 서브루틴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다.


경쟁이라고는 하지만, 하나가 다른 하나를 굴복시키거나 멸망시키는 것이 아니다.

도킨스가 언제나 말하는 대로, 두 전략 사이에 진화전략적 균형(ESS)이 자리잡아가는 과정이다.


다시 벌의 예를 들자면,

어떤 특정한 상황(예컨대 건조한 기후, 경쟁자가 없는 환경)에서

빼앗기 전략이 만들기 전략에 대해 8:2의 우위를 가지는 균형이 발생하는 식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균형은 기대값이 최적화(이 경우 최대화)되는 선에서 결정된다.


전작 <이기적 유전자>에서도 자세하게 설명된 것과 같이,

개체가 처하는 '상황'에서 가장 큰 변수는 바로 경쟁자의 전략 선택이다.

많은 수의 벌들이 집을 빼앗기로 결정하여 유혈이 낭자한다면, 집 짓기의 기대값이 올라갈 것이며,

이에 따라 전쟁 대신 건설의 길을 가는 벌들이 많아지며 새로운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다.


서브루틴이라는 참신한 비유가 진화압력의 주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beefight.jpg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이기적 유전자의 본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