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자의 긴 팔은 얼마나 멀리 갈까

[책을 읽고] 리처드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 (12)

by 히말

유전자의 '긴 팔'은 대체 어느 정도까지 멀리 작용할 수 있는 걸까?

사고실험이지만, 도킨스는 흥미로운 사례를 제공한다.


사고실험을 해 보자. 제비는 매년 같은 둥지로 돌아오므로 영국에 있는 제비 둥지에서 휴면하며 기다리는 체외 기생자는 아프리카 여정 전후에 똑같은 제비를 만날 것이다. 기생자가 아프리카에서 수행하는 제비 행동에 몇 가지 변화를 꾸밀 수 있다면 제비가 영국으로 돌아와 변화가 내놓는 성과를 거둬들일 것이다. 예를 들어 기생자에게 영국에는 없는 희귀한 미량 영양소가 필요한데 아프리카에 사는 특정한 파리 지방 조직에 그 영양소가 있다고 하자. 제비는 보통 이 파리를 좋아하지 않지만 기생자는 제비가 아프리카로 떠나기 전에 어떤 약물을 주입해 해당 파리 종류를 먹게끔 먹이 선호도를 바꾸어 버린다. 제비가 영국으로 돌아오면 몸에는 원래 둥지에서 기다리는 기생자 개체(또는 그 자녀)에게 이익을 줄 만큼, 기생자 종 내에 경쟁자에게는 손해를 끼치면서 이익을 줄 만큼 충분한 미량 영양소가 들어 있을 것이다. 오직 이런 상황에서만 한 대륙에 사는 유전자가 다른 대륙에 표현형 발현을 한다고 말할 수 있다. (13장 중에서)


충분히 가능한 상상이다.


그러나 상상력이 너무 지나치면 곤란하다.

도킨스는 러브록의 <가이아> 가설이 진화과학의 한 버전으로 확대되는 것을 경계한다.


51FoLM7uCBL._UF894,1000_QL80_.jpg


가이아 가설은 지구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나 마찬가지라는 아주 유명한 가설이다.

다만, 이 아름다운 비유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예컨대


러브록은 여기서 더 나아가 식물이 하는 산소 생산을 지구/유기체 또는 ‘가이아’가 만든 적응으로 간주한다.즉, 식물은 생명 전체에 이롭기 때문에 산소를 생산한다. (13장 중에서)


다시 말해, 식물이 산소를 만드는 것은 조혈세포가 혈액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되면, 가이아는 자연선택이라는 게임의 플레이어가 되는데, 이 단계에서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가이아는 누구와 경쟁하는가? 다른 행성들이다.

가이아는 무엇을 원하는가? 자신의 영속이다.

생명체와 마찬가지로, 지구는 영생할 수 없기 때문에, 복제체를 어딘가에 남겨야 한다.


어쩌면 인류는 바로 그런 목적을 위해 지구라는 가이아에 의해 창조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건 도킨스의 말이 아니라 그냥 내 망상이다.)

다른 항성계의 어떤 행성을 테라포밍하는 것, 그것이 유전자 복제에 비견할 만한 일인 것이다.


terraforming.png 우리가 하는 게임이 아니라 유전자가 하는 게임이었다


도킨스도 이런 식의 확장은 무리라고 생각하고, 러브록도 그런 생각까지 하지는 않을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TV에서 흥미 위주로 가이아 가설을 다룰 만들 경우 이상한 이야기가 퍼질 수도 있다.

도킨스는 바로 그것을 우려한다고 말한다.


이제 유전의 긴 팔이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대략적인 한계가 정해진 것 같다.

그러나 이쯤 되면 지나칠 수 없는 질문이 하나 떠오른다.


유전자가 대륙 건너편까지 긴 팔을 뻗칠 수 있다면,

대체 유전자는 왜 유기체라는 바운더리 안에 모여 사는 걸까?


유기체를 확장된 표현형이라는 관점에서 더 잘 이해할 수 있느냐라는 문제를 다시 재개할 차례다. 생명이 별도의 유기체에 담겨 있을 필요가 없다면, 유기체가 언제나 완벽하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왜 능동적인 생식 계열 복제자는 유기체에 자리 잡는 그토록 눈에 띄는 방법을 택한 걸까? (13장 중에서)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기생하는 이기적 유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