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모여 있을까, 라는 위대한 질문

[책을 읽고] 리처드 도킨스, <확장된 표현형> (13)

by 히말

왜 모여 있을까


왜 복제자는 실상 세포 속에 수십만씩이나 떼 지어 있는 걸 선택했을까? (14장 중에서)


첫 번째 대답은 자명하다.

유전자가 긴 팔을 가지고 있기는 하나, 원격 작용은 비용이 많이 드는 일이다.


훨씬 효율적인 '근접 작용'을 통해 소기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두 번째 질문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러나 왜 발생하는 몸의 모든 세포에는 완전한 유전자 무리가 있어야 할까? (14장 중에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대안은, 유전자의 핵심 과제를 수행하는 그룹, 즉 생식세포만 모여 있는 것이다.

실제로 벌목 곤충들은 어느 정도 그런 규칙을 따르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벌목 곤충은 군집 자체를 하나의 개체처럼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리고, 도킨스의 말대로 생식세포만 모이는 방식은 효율적이지 않다.


그런데, 효율성이 아닌 관점에서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예컨대, '무법자 유전자'를 감시하기 위해서라는 목적이 있을 수 있다.


즉 개별 유전자의 이기적 일탈을 통제하기 위해,

모든 구성원들을 하나의 울타리에 가두는 것이다.

(도킨스는 이 논리에 대해 회의적이지만, 나는 꽤 흥미로운 관점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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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체의 정의


결국 유기체란 무엇인가, 하는 본질적인 질문이 필요한 시점이 왔다.

앞서 말했듯이, 벌목 곤충은 군집 자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는 편이 더 합리적이다.

병정개미가 적과 싸우다 죽는 것은, 동물의 백혈구가 죽거나 식물의 잎이 말라죽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다.


유전자가 영생이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취하는 전략은 두 가지다.

복제체를 많이 만들어 뿌리거나, 운반자를 튼튼하게 만들어 오래 쓰는 것이다.

소위 고등 생물이라고 불리는 유기체일수록 후자의 방법이 더 많이 동원된다.


코끼리 유전자 풀에 있는 유전자를 위한 최적 순환 주기는 쥐 유전자 풀에 있는 유전자를 위한 최적 순환 주기보다 훨씬 길다. 코끼리 사례에서는 투자금을 회수하기 전에 더 많은 자본 투자가 필요하다. (14장 중에서)


그런 의미에서 단세포 생물의 분열은 번식이라기보다 성장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성장과 번식의 차이점을 설명할 때 동원되는 개념들,

즉 유성과 무성생식, 그리고 감수분열과 유사분열은 본질적인 구분이 아니다.


본질적인 구분은 세포분열이 막다른 종류인가 하는 것이다.

막다른 분열이라면 성장이고, 그렇지 않다면 번식이다.


생식 계열 세포분열은 진화적 시간으로 전진하는 반면 체세포분열은 옆길로 나아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 (14장 중에서)


좀 허접한 비유지만, 오직 골킥만이 번식이고, 어시스트를 포함한 모든 다른 행위는 성장이다.


성장과 번식 사이의 차이점이 지닌 중요한 의미는 번식이 새로운 시작, 새로운 발생 주기, 전임자와 비교해 복잡한 구조의 근본적 조직화라는 면에서 개선이 일어난 새로운 유기체를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물론 개선이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으며, 이 경우 그 유전적 기초는 자연 선택이 제거할 것이다. 그러나 번식 없는 성장은 개선이든 아니든, 기관 수준에서 근본적 변화가 생길 가능성조차 허용하지 않는다. (14장 중에서)


번식이란 일종의 리셋이다.

다시 단세포가 되는 '병목'을 통해 원천적인 차원에서 적응할 수 있는 기회를 다시 얻는 것이다.


또한 이런 사실은 복제자가 유기체에 있는 모든 세포의 활동을 공유하는 한정된 생식 계열이 얻는 복지에 집중시켜, 같은 생식 계열에 있는 다른 복제자를 희생해 사적 이득을 보는 무법자가 되고픈 ‘유혹’을 일부나마 제거한다. (14장 중에서)


그렇게 다시 리셋되는 과정을 통해서, 무법자 유전자 문제 역시 통제된다.

무법자가 아무리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그 성공은 그 개체와 수명을 같이 한다.

막다른 길에서 그 무법자는 좌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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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대답이 된 것 같다.

유전자들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것은, 그 자체가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동시에, 다시 단세포가 되는 극단적인 전략을 통해, 이들의 목적은 조율된다. (일탈을 리셋한다.)


통합된 다세포 유기체는 원래 독립해 있던 이기적 복제자에 자연 선택이 작용한 결과로 나타난 현상이다. 함께 모여 행동하는 방침은 복제자에게 이득이었다. 원리적으로는 복제자가 생존하도록 보장하는 표현형 힘은 확장되며 한계도 없다. 실제로는 일련의 복제자 힘을 공유하는, 부분적으로 한계가 있는 국소적 집중체로서 유기체가 발생했다. (14장 중에서)


솔직히 말해보자. 정말 대답이 되었는가?

나는 대니얼 데닛의 후기가 이 질문에 아주 좋은 대답을 준다고 본다.


도킨스가 말했듯이, 확장된 표현형은 유기체를 재발견하게 돕는다. 표현형 효과가 유기체와 ‘외부’ 세계 사이를 가르는 경계선을 무너뜨린다면, (다세포) 유기체라는 게 왜 있는 걸까? 이는 아주 좋은 질문이면서 동시에 도킨스가 제공한 관점이 없었다면 물을 수 없는, 아니면 제대로 물을 수 없는 질문이었을 것이다. (대니얼 데닛의 후기 중에서)


그렇다. 제대로 된 질문 하나만으로도 엄청난 업적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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