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찬호께이, <고독한 용의자>
*** 약스포일러 있습니다. 읽을 예정인 분들은 주의하세요!! ***
찬호께이는 히가시노 게이고 mk2?
찬호께이의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뛰어들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크다.
찬호께이는 히가시노 게이고 mk2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히가시노 게이고에 대한 내 결론은 이렇다.
가끔 불멸의 명작을 실수로 써내는, 양산형 범작 작가.
찬호께이의 소설들을 읽을수록, 히가시노 게이고와 비슷한 결론에 가까워진다.
다른 소설들은 당연하고, 나는 <망내인>도 정말 별로였다.
<고독한 용의자>는 <망내인>보다는 낫지만,
<13.67>과 비교하면 정말 평판에 먹칠을 하는 수준이다.
그러나 정말 형편없는 작품이었을까?
찬호께이가 아닌 그냥 이름 모르는 데뷔 작가였다면, 분명 만점을 줬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불공평한 이야기다.
찬호께이의 이름을 걸고 마케팅한 책이다.
찬호께이에게 걸맞는 잣대로 평가하는 게 맞다.
그래서 4점이다.
캐릭터 빌딩의 실패
흔해 빠진 아이덴티티 트릭.
식상하다고 말해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당사자, 예컨대 가족에게는 일대사건이겠지만,
독자들에게는 A가 B로 바뀐 것뿐이다.
당연히 감동도 없다.
이건 전적으로 작가의 책임이다.
캐릭터 빌딩이 제대로 안 된것이다.
<13.67>의 관전둬는 시작부터 유명한 천재 형사로 등장한다.
이 시점에서 그에게 감정 이입하는 독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첫 에피소드에서 오히려 돋보이는 인물은 그의 제자인 뤄샤오밍이다.
그러나 소설은 이제부터다.
시간을 거꾸로 되돌리며, 독자는 관전둬의 과거를 따라간다.
1967년의 마지막 사건을 끝내고 나면, 우리는 관전둬를 사랑하게 된다.
이 시점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인간적 결점이 가장 크게 부각되는 지점이다.
결점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결점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를 사랑한다.
그와 함께 그 모든 사건들을 헤쳐왔기 때문일 것이다.
<고독한 용의자>도, 적어도 겉으로는 그 공식을 따라간다.
일단 사건이 터지고, 진상을 파헤치는 과정에서 주요 인물들의 과거를 따라간다.
그러나 왜일까?
셰바이천과 칸즈위안, 어느 쪽 인물에도 나는 몰입하지 못했다.
셰바이천은 사건 자체와 과거 기록,
칸즈위안은 사건 수사의 내러티브를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 간다.
고독에 공감한다면 셰바이천,
정의감에 공감한다면 칸즈위안에 공감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칸즈위안 쪽이 조금 더 몰입되는 캐릭터이기는 했다.)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원인은,
셰바이천이 외모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매력 떨어지는 캐릭터라서 그렇다는 것이다.
나는 이 시점에서 김전일 최고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육각촌 살인 사건>을 떠올렸다.
<육각촌 살인 사건>의 두 범인,
오다기리 선생과 와카바는 명백하게 (특히 외모에서) 매력이 떨어지는 케릭터들이다.
와카바는 "강하기만 했던 그녀"였고,
오다기리는 "착해빠진 남자"이자 무기력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들에게 깊이 몰입했다.
사건을 해결하고 오열하는 김전일에게 십분 공감했다. (같이 울고 싶었다.)
다시 생각해보자.
히키코모리에게 감정 이입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찬호께이는 이 어려운 과업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도전했다.
그러나 실패했다.
사족
아주 오래 전에 읽은 허접한 추리만화가 가끔 생각난다.
만화잡지 연재물이었는데, 독자들에게 추리해보라는 형식이었다.
범인은 엑스트라 중 한 인물이었다.
장난하냐, 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온다.
이런 걸 점잖게 표현하자면, '억지'라고 한다.
<고독한 용의자>의 반전은, 그냥 냉정히 생각하면 꽤 공들인 것이 맞다.
그러나 다른 소설에서 이미 5만 7천 번 정도 만난 것이다.
단지 내가 만든 것은 처음이니 봐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저 추리만화가 생각난다고 말하면 좀 심한 평가일 수도 있지만,
그 책임은 독자가 아닌 작가에게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