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은 없다

[책을 읽고] 울프 다니엘손, <세계 그 자체> (1)

by 히말

책의 주장


세계는 실존한다,

라는 주장을 하려고 책을 써야 한다니.


세계는 허상이다, 라는 주장이 분명히 존재하니 반대 주장도 마땅히 존재한다.

그러나 이 책의 진짜 주장은 조금 결이 다르다.


모형과 실제 세계를 혼동하지 마라, 가 그것이다.


그걸 어떻게 혼동하나? 하고 의아해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류 역사는 플라톤식 본질주의에 의해 심하게 오염되어 왔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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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인상


책 소개만 보고 강하게 끌려 이 책을 선택했지만,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근거 제시 없이 그저 주장을 내지르는 문장이 너무 많다.

(전문용어로 '억지'라고 부르는 그것 말이다.)


분명히 논쟁이 있는 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지지하면서, 근거를 제시하지 않는 것은,

중세 사제들이나 하던 행태 아닌가?

거부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제일 거슬리는 주장은, 데카르트적 자아가 분명히 존재하며,

그 이유는 "내가 분명히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볼츠만 두뇌'라는 유명한 명제에 대해 다루면서도 그 가능성을 외면하는 것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자아 실존은 너무나 분명하고, 볼츠만 두뇌는 너무나 말이 되지 않아서,

양쪽 주장 모두 논증이 필요없다는 것이 저자의 태도다.


그렇다면 대체 왜 책을 썼는지, 이해할 수 없다.



수학은 없다


그러나 이 책에는 말이 되는 (사실은 유익하기까지 한) 주장들도 있으니, 차근차근 살펴보자.


예컨대, 수학이 실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데, 그건 (당연히) 사실이 아니다.

그냥 얼핏 들으면, 세상에 그런 사람들이 있어? 라고 반문하고 싶다.

(콰인과 퍼트넘이 그런 사람들이다.)


그러나, 다음 질문에 대답하려고 하면, 이게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세계가 사라진다면, 수학이 존재할까?


이 질문에 대해 곧장 아니라고 대답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태도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 질문을 진지하게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수학은 세계 없이 존재할 수 없다.

수학은 세계를 기술하는 하나의 방법(도구)이기 때문이다.

(수학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플라톤의 이데아를 믿는 것과 같다.)


수학에 대해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면, 물리학은 물론

그 위에 쌓아 올린 거시 세계의 법칙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수학은 우리의 생물학적 본성에 의존하는 생물학적 구성물이다.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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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행 세계도 없다


이 책에서 제일 마음에 드는 부분은, 전 세계 편의점 매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루퍼트 에버렛의 '평행 세계(다중 우주)'가 한갖 헛소리에 불과하다는 주장이다.


평행 세계 이론의 핵심은 무엇을 실재로 간주할 것인가 하는 물음이다. 수학적 도구는 단지 우리가 예측할 때 이용하는 모형의 일부일 뿐일까, 아니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무언가에 대응하는 것일까? 이 물음에 어떻게 접근하는지에 따라 결론이 달라진다. 수학적 구조를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실재라고 믿는다면, 파동 함수를 이 범주에 넣고 평행 세계를 인정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지만 당신이 (나와 마찬가지로) 물질적 우주가 수학의 형식언어와 독립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다면, 실재가 하나 이상 존재한다고 믿을 이유는 전혀 없다. (3장)


다시 말해, 에버렛의 평행 세계는 모형이다.

모형은 실재가 아니다.

모형은 실재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다.


에버렛의 평행 세계 해석은 매우 인기 있는 해석인데,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해하기 쉽다고 진실은 아니다. (아담을 빗는 야훼나 번개를 던지는 제우스도 이해하기 쉽다.)


참고로, 내가 에버렛의 주장을 반대하는 이유는 이렇다.

(굳이 하이데거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우리가 감각(양자역학의 '관찰')하지 못하는 세계는 우리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따라서 존재하지 않는 것과 다른 점이 전혀 없어서다.



양자 붕괴


저자는 양자적 붕괴에 대해서도 통찰력 있는 한마디를 한다.


붕괴는 물체가 충분히 커지자마자 저절로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무척 간단하다. 전자 몇 개로 이루어진 계는 주변으로부터 쉽게 격리할 수 있는 반면, 고양이처럼 큰 물체는 그러기가 쉽지 않다. 큰 물체는 우주의 나머지 부분과 끊임없이 상호작용 하기에, 실제로는 우리가 무엇을 하든 붕괴에 필요한 관찰이 시행된다. (3장)


사실, 세계에는 지금도 이중 슬릿 실험을 패스하는 더 큰 물체를 찾아내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의 시도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실용적 용도가 있을 것이다.)


어쩄든, 거시 세계에서 양자적 중첩이 유지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저자의 간단한 설명으로 충분하다.



뢰벤하임-스콜렌 정리


뢰벤하임-스콜렌 정리는 다음과 같다.


당신이 기술하려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당신의 의도와 무관하게 언제나 정수와 짝지을 수 있다.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다. 말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셀 수도 있다. (4장)


다시 말해, 당신의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세계에 대한 진술과 정수에 관한 진술은 동치다.

스콜렘은 2년 뒤, 셀 수 없는 것은 말할 수 없다는 사실도 깨우쳤다고 한다.

(이건 원 명제의 대우라서 당연한 건데?)


이건 스콜렘의 역설이라 불리는데, 역설인 이유는

셀 수 없지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주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칸토어의 무한)


그런데 이쯤 되면 스콜렘의 역설이 참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다면 그 명제의 대우인 뢰벤하임-스콜렌 정리도 참이 아니다.


말도 안 되는 명제를 제시하고, 굳이 그게 참이 아니라는 사실을 지적하는 게 무슨 소용이냐고 묻는다면,

저자는 아마도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재미 있으니까."


뢰벤하임-스콜렌 정리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이 정리가 사실이라면 큰일이기 때문이다.

즉, 모형과 실재를 구별할 수 없게 된다.

그러나 정리가 참이 아니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


Noam_Chomsky_portrait_2017_retouched.jpg 참고로 말하자면, 나는 촘스키를 매우 존경한다


촘스키의 무리수


다음으로는, 촘스키의 다양한 무리수가 펼쳐진다.

촘스키는 세기의 지성이며, 그의 언어론은 현대를 대표한다.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한 프로이트 정신분석학도 참은 아니다.

(참이니 거짓이니 논할 수조차 없는 이야기 보따리일 뿐이다.)


촘스키의 다양한 '주장'이 참이 아니라서 슬플 수도 있겠지만,

촘스키는 언어학자이지 과학자가 아니다.


촘스키는 언어가 사고에 선행한다, 즉 언어 없이는 생각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게다가, 인간의 언어가 동물들의 의사소통과 전혀 다른, 질적으로 다른 무엇이라 말한다.


그 주장을 위해 다양한 보조 주장을 동원하는데, 안타깝게도 모두 반박되었다.

예컨대, 그는 인간의 언어가 '재귀적'일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고 주장했으나,

2011년 교토대학교 연구팀은 흰허리문조라는 새의 언어에서 재귀 구조를 발견했다.


인간의 언어 능력이 FOX2 유전자에 의해 심하게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다.

저렴해진 유전자 분석 기법을 이런저런 동물들에게 적용해 본 결과,

FOX2 유전자는 다양한 척추동물들에게서 폭넓게 발견된다.


모형과 실재가 다르다는 주장에 왜 촘스키가 동원되는가 의아할 수 있다.

저자가 주장하는 요점은, 모형의 대표격들인 수학이나 언어가 물질 기반이라는 것이다.


고상한 관념들과 비루한 자연계 사이에는 연구자 자신의 체화된 의식이 놓여 있다(이것이야말로 과학의 본질이다). 수학과 논리라는 추상 세계와 우주 사이에 객관적이고 외부적이며 독립적인 연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연결은 언제나 피와 살로 이루어진 뇌에서 이루어진다. (4장)


수학도 언어도, 피와 살로 된 뇌에서 발생하는 물질적 현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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