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대니얼 데닛, <의식이라는 꿈> (1)
좀비감, 좀비주의자
과학이 의식을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제시하는 이야기 중에 좀비감이라는 게 있다.
그들이 말하는 좀비는, 그 어떤 관찰로도 인간과 구별할 수 없지만, 의식이 없는 존재다.
다시 말해, 좀비가 좀비라는 사실은 오로지 좀비 자신만이 알 수 있다.
그 어떤 방식으로도 외부 관찰로는 차이가 없다는 것이 포인트다.
난 이런 경우라면 당연히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저의를 생각하면 치가 떨리지만,
데닛의 바다 같은 관대함을 조금이라도 흉내 내서 논의를 이어가 보겠다.
좀비감을 주장하는 이들을 편의상 좀비주의자라고 부르자.
좀비주의자들이 의식의 불가해성을 주장하는 강력한 기반은,
현대 과학이 아직 의식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는 사실에 있다.
우리보다 월등한 과학 수준을 자랑하는 외계인이 지구에 도착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들이 호모 사피엔스라는 동물을 조사할 때, 과연 이렇게 생각할까?
- 이들에게는 외부 관찰로는 절대 알아낼 수 없는 아주 독특하고 신비한 무언가가 있어.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연구는, 반드시 그 점을 감안하고 연구를 진행해야 해.
절대 그럴 리가 없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오지만, 잠깐 멈추고 비슷한 상황을 생각해 보자.
우리가 다른 동물, 예컨대 고래나 원숭이를 연구할 때 우리는 과연 그런 가정을 하고 있나?
전혀 아니다!
좀비주의자들은 <종의 기원>을 출판한 다윈에게 분개하던 바로 그 종류다.
단지 미개한 사람들이다.
다만, 이 미개한 사람들의 그룹에 로저 펜로즈가 들어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난 스티븐 호킹과 그의 친구들을 전부 좋아하기 때문에, 노벨상 받기 한참 전부터 펜로즈를 좋아했다.)
통속 과학과 진짜 과학
외계인의 인간 연구, 그리고 인간의 고래나 영장류 연구에 관한 비유는 이 책 2장에 나온다.
난 좀비주의자들을 상대하는 데 이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만,
좀비주의자들을 달래는 데 평생을 써온 데닛은 믿을 수 없는 인내력으로 다양한 이야기들을 풀어내며
그들을 깨우치려 노력한다.
헤이즈는 보통 사람들이 저도 모르게 사용하는 일반적인 물리 원칙들을 묶어 '소박 물리학'이라 명명했다.
예컨대 물건은 아래로 떨어진다든가, 시간은 거꾸로 흐르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소박 물리학은 우리가 삶을 살아가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실제로 의지하는 것들이다.
이에 대비되는 것이 '진짜 물리학'인데, 이는 종종 소박 물리학과 충돌한다.
예컨대 피펫으로 액체를 옮기는 것은 소박 물리학에서 불가능하다.
구멍이 뚫렸다면 그 구멍으로 액체가 쏟아져야 마땅하다!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소박 심리학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며, 그걸 사용하며 살아간다.
예컨대 다른 사람들이 좀비나 로봇이 아니라고 믿거나, 역지사지를 하는 행동 등은 소박 심리학에 근거한다.
이 소박 심리학의 핵심에 존재하는 것이 자아 또는 의식의 존재, 그리고
좀비주의자들이 끝없이 (또한 근거 없이) 주장하는 의식에 대한 배타적 일인칭 접근권,
즉 내 의식에 대한 접근권이 오로지 나 혼자에게만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소박 심리학 역시 '진짜' 심리학 내지 인간 의식에 관한 진짜 현상학과는 다를 것이다.
그 이유는 소박 물리학이 진짜 물리학과 다른 것과 마찬가지다.
물리학이 아직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 많은 것처럼, 심리학 내지 의식 현상학 역시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
우리가 의식을 과학으로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우리 과학이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이지,
(당연히 삼인칭 시점을 상정하는) 과학이라는 방법론이 틀려서 그런 것이 아니다.
라이프니츠는 1714년 <단자론>에서 의식이 기계론적으로 설명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책 43쪽에서 데닛이 유쾌하게 지적하듯, 라이프니츠가 현대 과학을 목도했다면 입장을 바꿨을 것이다.
중세 신학자들은 핀의 머리 위에 천사 몇 명이 서 있을 수 있는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했다.
(그다지 멀지 않은) 미래에는, 좀비주의자들에 대해 비슷한 조소가 당연시될 것이다.
***계속***
사족
좀비주의자들이 숨기고 있는 '저의'에 치가 떨리는 이유를 간략하게 언급하려고 한다.
그 이유는, 단지 그들이 영혼이라든가 하는 한심한 개념을 주장해서가 아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실제 세상과 다른 세상이 존재하며,
그것이 (도덕적으로 또는 영적으로) 더 우월하다 생각한다.
바로 이 개념에 의지해서, 그들은 우월한 저 세상의 '정의'를 위해서
덜 중요한 이 세상에서는 악행을 해도 상관없다고 (내지 악행을 해야 한다고) 믿는다.
히틀러나 네타냐후가 바로 그런 자들이다.
***계속***
사족. 이 글은 이란 전쟁 나기 한참 전에 쓴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