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대니얼 데닛, <의식이라는 꿈> (5)
억지 쓰는 떼쟁이들 때문에 낭비된 한 천재의 일생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를 읽고, 연이어 <의식이라는 꿈>을 읽었다.
전작은 1991년, 후속작은 2004년에 출간되었으니, 추가된 내용들이 있다.
그러나 다중 원고 모형에 대해 두 가지 비유가 추가된 것을 제외하면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다.
데닛의 요지는, 의식이라는 일견 불가사의해 보이는 현상도 환원주의로 모조리 설명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렇다. 당연한 얘기다.
그런데 이런 당연한 얘기를 하기 위해 한 명철한 철학자가 평생을 쏟아부어야 하는 이유는,
억지를 쓰는 소위 '학자'들이 세상에 너무 많기 때문이다.
도킨스의 여러 책들을 읽기 전까지는 (특히 <신이라는 망상>)
세상에 (특히 미국에) 진화과학을 반대하는 '학자'들이 그렇게 많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데닛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과학의 발전을 방해하고 애니미즘의 부활을 꿈꾸는 자들이 무려 '학계'에 창궐하고 있으니,
이들의 '억지' 주장에 '논리적으로' 맞서기 위해 무려 데닛 수준의 재능이 낭비되고 만 것이다.
데이비드 차머스, 토머스 네이글, 존 설 같은 자들이 '학자'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다니,
그들에게 학위를 부여한 학교들은 정말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서평을 쓰면서 데닛 사진을 검색하다가, 그가 2024년 4월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마이클 잭슨이나 스티븐 호킹의 부고를 들었을 때와 비슷한 수준의 슬픔을 느꼈다.
아쉽지만, 이제 그의 이름으로 나오는 새 책은 없다.
지적 게으름은 죄악이다
지적 게으름이 무조건 죄악은 아니다.
다만, 지적 활동이 직업인 사람이 저지를 경우, 이건 당연히 죄악이다.
야구 선수가 공을 피한다든지,
선행을 독려하는 것이 직업인 자가 악행을 하는 경우와 같다.
내가 쇼펜하워를 혐오하는 이유와 같다.
그는 자신이 설교한 '실천' 철학을 실천하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그 반대로 살았다.
좀비감이니 감각질이니 하는 이야기는,
생각(철학)을 하다가 다다른 어려운 지점에서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한 결과다.
그런 억지 주장을 마케팅하기 위해 중국어 방이니 박쥐가 되면 어떤 느낌이니 하는 억지 이야기를 지어내는
지적 나태함을 생각하면, 그들에게 과연 양심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예전 글에서 (섣부르게) 노답 3인방이라 지칭했던 차머스, 설, 잭슨 중에서 잭슨은 제외해야 한다.
차머스나 설을 아득하게 능가하는 최악의 지적 퇴행자, 네이글을 3인방의 필두로 넣고 싶다.
프랭크 잭슨은, 지금도 좀비주의자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사고 실험, '색채학자 메리'를 만들었다.
그러나 추후, 자신의 생각이 틀렸음을 자각하고 여러 차례 논문을 써서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이것이 '학자'의 참된 자세다.
과학은 바로 그런 자세를 딛고 서서 지금까지 발전해 왔다.
친절한 사람이 필요하다
나는 지적 나태함을 먹고사는 저런 자들을 보면 화가 난다.
예컨대 이 책 5장에는 조지 그레이엄과 테리 호건이라는 떼쟁이들이 나오는데,
나는 이 자들의 인용문을 읽으면서 화가 나서 감정을 추스리기 힘들었다.
그런데 데닛은 이런 자들의 억지 주장을 하나하나 세세하게 읽고,
조목조목 친절하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짚어준다.
정말 극한 직업이다.
나그네의 외투라는 이솝 우화에도 나와 있듯,
떼쓰는 아이는 혼내기보다 잘 타이르는 편이 사태 수습에 도움이 된다.
아쉽게도, 전 세계에 창궐하는 억지 좀비주의자들을 친절하게 타이르던 다정한 학자는 이제 없다.
데닛을 추도한다.
그의 죽음을 알게 되고 나서, 내가 그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새삼 깨닫는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