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고] 대니얼 데닛, <의식이라는 꿈> (4)
의식과 무의식
전작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에서 데닛은 다중 원고(multiple draft) 모델이라는 것을 제안한다.
이는 데카르트적 모델(Cartesian theatre)이 제안하는 '주무대'라는 것에 대한 대안이다.
즉, 데카르트는 어떤 중심 내지 주체를 가정하지만, 데닛은 그러한 중심이 없다고 말한다.
책 6장에는 드엔과 나카슈가 함께 제안한 '광역 뉴런 작업 공간 모델'이라는 것이 소개된다.
데닛은, 이 모델에 약간의 수정을 가하면 자신의 의식 모델이 된다고 한다.
드엔과 나카슈가 제안하는 모형은 비유로 간단하게 설명할 수 있다.
뉴런들을 데닛이 전작에서 말한 뇌 속 세상에 사는 '난쟁이'들이라고 비유해 보자.
데카르트적 모형은 이들 난쟁이들 사이에 지휘가 난쟁이 내지 파파 스머프가 존재한다고 말한다.
반면, 드엔, 나카슈, 데닛은 그러한 조정 주체가 없다고 말한다.
이들 난쟁이들은 각자 맡은 일을 처리할 뿐이며, 그런 일에 지휘자는 필요 없다.
다만, 그들은 필요에 따라 소통도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의식이다.
많이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뉴런들이 각자 묵묵히 일하는 부분은 무의식, 그들이 소통하는 부분은 의식이다.
드엔과 나카슈의 모형에 관한 설명을 하는 부분에서 데닛은 또 한 번 그 다운 날카로운 통찰을 선보인다.
합의안으로 제안된 논제는 광역적 가용성이 어떤 추가적인 효과 또는 다른 종류의 효과 전부를 야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그 자체로 의식적 상태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229쪽)
다시 말해, 뉴런들이 서로 연결(소통)하면서 의식이 '창발'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소통 그 자체가 의식이다.
차머스 같은 아둔한 사람은 창발을 다시금 '강한 창발'과 '약한 창발'로 나누고는 하는데,
이런 쓸데없는 분류는 잉여적이라서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컴이 싫어한다)
무한 후퇴를 가져오기 때문에 논리적이지도 않다.
(강한 창발을 다시 강강 창발과 강약 창발로 나누게 될 것이다.)
다중 원고 모델의 리모델링
233쪽에서 데닛은, 전작의 다중 원고 모델이란 비유가 그다지 효과적이지 않았던 것 같았다고 말하면서,
같은 이야기를 새로운 비유로 제시하겠다고 말한다.
그것을 그는 뇌 안의 셀럽(cerebral celebrity)이라 명명하는데, 보다시피 말장난이다.
데닛도 이 모형의 핵심 개념이 유명세(celeb, fame)라기보다 정치적 영향력에 가깝다고 말한다.
간단히 말해, 뇌 안의 요소들(뉴런 등)은 서로 연결, 소통하면서 '밈'을 만들어내는데,
이중 대박을 치는 것이 결국 의식의 표면에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또다시, 좀비주의자들의 창궐을 막기 위한 부가 설명이 등장한다.
이렇게 '대박'을 쳐서 활성화된다는 표현의 의미는,
그 활성화로 인해 어떤 작용, 즉 관찰가능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다.
굳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어떤 관찰가능한 결과, 예컨대 빨간색을 지각하는 활동이 일어났을 때,
그 원인이 되는 감각질이 발생했고, 그 감각질을 불가사의한 어떤 주체('영혼')가 인식했다는 식으로
설명하려는 좀비주의자들의 잉여로운 설명 방식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대박을 통한 활성화는 그 자체가 의식이다.
대박이 활성화를 야기하고, 활성화가 의식을 야기하는 연쇄가 아니다.
좀비주의자들은 이러한 연쇄를 이야기하면서 그 사이에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고 절대 관측조차 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의식 주체를 은근슬쩍 끼워 넣는 일을 수십, 수백 년간 해왔다.
가시광선 대의 빨간색 파장이 신경망에 의해 포착되면 빨간색이란 의식이 발생하는 것이지,
빨간색이 감각질을 거쳐 빨간색이란 의식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감각질이라는 잉여 단계가 없어도 이 과정은 자연스럽게 설명된다.
만약 감각질을 경험에 뒤따르는 효과도 아니고 경험에 앞서는 인과적 선행자도 아닌 것으로 정의한다면, 감각질은 정의상 모든 성향적 속성들과 논리적으로 독립적이며 그것의 원인과 효과로부터 고립된 채 고려되는 내재적 속성이 될 것이다. (255~256쪽)
아니, 대체 그런 것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타자현상학의 데이터
드엔과 나카슈는 결국, "의식을 배제함으로써" 의식을 설명한다고, 데닛은 말한다.
우리의 일상 경험은 의식의 원인과 그 효과 사이에 무엇이 있다는 느낌을 배제하기 어렵다.
좀비주의자들이 절대 관찰 불가능하지만 거기에 있다고 믿고 싶은 것이 바로 의식의 주체('영혼')다.
그런 주체가 있다고 상상하면 이해가 훨씬 쉬운 것은 맞다.
그러나 과학적인 방법, 즉 데닛이 주장하는 타자현상학적 방법에 의하면, 의식이란 불가사의한 요소를
배제해도 의식은 설명이 가능하다.
좀비주의자들은 의식의 주체가 있고 그 주체가 감각질을 캐치하고 하는 일들이 '일어난다'라고 주장하지만
그러한 관찰이 오로지 그 사람의 일인칭 시점에서만 가능하다면,
그걸 다른 사람, 즉 인류 일반이 검증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데닛의 타자현상학은 '의식의 주체가 존재한다'라는 주장이 아니라,
사람들이 '의식의 주체가 존재한다'라고 느낀다는 사실 자체를 연구하는 것이다.
'의식의 주체'가 데이터가 아니라, '의식의 주체가 존재한다는 믿음 내지 느낌'이 데이터다.
환상 메아리
7장에서 데닛은 또 한 차례 별 의미 없는 (심지어 썰렁한) 말장난을 하고 나서,
다중 원고 모형의 또 다른 이름으로 '환상 메아리(fantasy echo)' 모형을 제시한다.
인간의 자아 의식을 만드는 핵심은 잘 알려 있듯 '일화적 기억'이란 옷감을 기워 만든 뇌 속의 자서전이다.
그러나 생각해 보자.
일화적 기억의 내용인 일화(episode)란, 그 정의상 딱 한 번만 일어난 사건이다.
그걸 기억하다니, 기억의 천재 푸네스라도 된단 말인가?
당연하지만 우리는 푸네스가 아니며, 일화적 기억이 기억으로 남는 비결은 다름 아닌 반복 재생이다.
즉, 무수한 '메아리'의 반복에 의해 기억이 각인된다. (말장난을 하려고 메아리라는 단어를 고집하는 데닛.)
여기에서 주의할 점은, 데닛이 말하는 반복 재생이란, 언어의 개입이 필요없다는 점이다.
그러나 데닛은 인간의 언어가 인간의 뇌와 상호작용을 통해 공진화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비버가 자신이 만들고 개량하는 댐과 공진화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언어란 인간 의식의 핵심이라고 믿는다.
다시 말해, 다른 동물은 몰라도 인간의 일화 기억 반복 재생은
언어를 포함한 인간 문화 전반에 큰 영향을 받는다고 봐야 한다.
즉, 인간은 애초에 자기 자신의 인식 체계를 자극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이 의식의 기제인 일화 기억의 반복재생으로 발전했다는 의견이다.
(이런 습관과 인식 체계 중 어느쪽이 닭이고 달걀인지를 따지는 일은, 당연히 필요 없다. 이런 쓸데 없는 고민은 데닛의 전작 <직관 펌프>에 나오는 '셈이다' 연산자로 멈출 수 있다.)
인간과 유사하게 이러한 '반향실(echo chamber)'을 가진 존재라면, 인간의 것과 유사한 의식을 가질 것이라 예상할 수 있다.
(LLM은 그런 반향실을 가졌다고 볼 수 있으며, 더 발전한 인공지능이라면 당연히 그렇다고 나는 생각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