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탄. 기숙사, 그리고 편의점 총각
잠시 미국에 나와 있습니다. 캔자스 주의 로렌스라는 곳인데, 캔자스 대학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아주 아담한 도시입니다.
난생 처음 기숙사 생활을 해보는데, 재미있는 점도 있지만 어려운 점이 더 많네요. 가장 최근에 지은 기숙사라서, 아파트 형 공간에 네 개의 침실이 있고 거실과 부엌을 공유합니다. 각 방마다 욕실이 붙어 있어 다행입니다. 욕실 공유라면 참 난감했겠죠. 제가 아토피가 심해서 오래, 자주 씻거든요.
개인 욕실 외에 맘에 드는 점 중 하나는 유닛 내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다는 겁니다. 사실 공동 세탁실은 예전에 미국 생활할 때, 그리고 스위스 생활 초기에 잠깐 사용해 봤는데, 아무래도 불편하죠. 세탁하는 날을 잡아서 부부가 함께 세탁실을 왔다갔다 한다는 점 정도만 좋은 점일까요.
위 사진은 여기 처음 들어온 날 찍은 게 아니고, 조금 전에 찍은 겁니다. 그러니까 일주일이 지났는데, 학교측에서 사다 놓은 부엌용품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거죠. 부엌상판 위에 가지런히, 원래 포장 그대로 놓여 있습니다. 남자들이 쓰는 유닛이라 그런가 봅니다. 저도 여기에서 나갈 때까지 절대 건드리지 않을 것 같습니다.
방마다 작은 냉장고라도 있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좀 심한 요구겠죠. 거실 냉장고에 뭘 놔둘 수도 있겠지만 먹다 남은 우유나 주스를 공용 냉장고에 방치해두는 대담함은 저와는 거리가 멉니다.
유닛 내 거실의 모습입니다. 지나치게 큰 공간을 거실에 할애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방이 작은 것도 아니어서 별 불만은 없습니다. 유닛 바깥으로 나가도 층마다 TV가 걸려 있는 휴게 공간이 있고, 각 건물 1층에는 또 그것보다 더 큰 휴게 공간이 있습니다.
이 학교 시스템에서 맘에 드는 점 중 하나는 식수 공급입니다. 식수대가 여기저기 있는 거야 당연하겠지만, 이곳에는 식수대에 물을 담을 수 있는 급수 꼭지가 달려 있습니다. 물통을 가져다 대면 아주 빠른 속도로 필터링 된 물을 채워줍니다. 물맛도 나쁘지 않고, 무엇보다 물이 채워지는 속도가 맘에 듭니다. 그냥 수도꼭지보다도 빠른 것 같아요.
오늘은 토요일, 아침 일찍 캠퍼스를 산책하다가 학생회관 건물에 들어갔는데 토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아무도 없는 겁니다. 유일하게 문을 연 편의점에서 알바 학생을 만나서 30분 정도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정보도 얻었네요.
이름은 Derek, 데이터베이스 전공 공대생이고 이번 가을학기에 4학년이 된다고 합니다. 학교 여기저기에 있는 매점과 식당에서 알바를 한 경험이 풍부해서 어디에 가면 뭐가 있는지 자세하게 설명을 받았습니다. 기숙사 학생들에게는 meal plan이 주어지는데 (사실은 사는 거죠) 그 구조가 약간 복잡합니다. 아침, 저녁은 그냥 건별로 되어 있고, 점심은 사이버머니 같은 것을 채워줘서 그걸로 알아서 사먹으라는 구조거든요. 그런데 이 사이버머니가 dining dollars와 beak'em bucks라는 두 종류로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beak'em bucks로는 구입이 되는 것들 중에 dining dollars로는 살 수 없는 것이 많습니다.
그 차이가 늘 궁금했는데, Derek이 알려주었습니다. beak'em bucks는 실제 돈을 계좌에 집어 넣어야만 발생하는 것이고, dining dollars는 meal plan에 포함되어서 한묶음으로만 구입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beak'em bucks는 사실상 현금 수준의 환금성이 있는 반면, dining dollars는 그냥 매우 구린 사이버 머니가 되는 겁니다. 저같은 경우는 dining dollars로 420불을 받은 반면, beak'em bucks는 겨우 4달러를 받았거든요. 4달러... ㅡ.ㅡ;;
그래서 학교 캠퍼스에 바짝 붙어있는 일부 상점들은 대개 beak'em bucks를 받습니다. 하지만 환금성이 떨어지는 dining dollars는 받지 않죠. 음식료를 파는 상점들 마저도요. 그래서 저는 커피를 사먹을 때 피같은 생돈을 낭비해야 하는 겁니다. 다음 번에는 커피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커피 때문에 아주 죽겠거든요. 평균 수준의 맛을 내는 커피조차 구하기 힘들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