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우리는 코로나-19의 유행의 한가운데에 서 있다. 미국 대통령이 정례 브리핑 때마다 한국을 거론할 정도로 한국은 코로나-19 대응에 있어 선도적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이와 대비하여, 미국 대통령은 주지사들과의 권한 논쟁을 벌이면서 경제 정상화를 서둘렀고, 현재 성공했다.
2020년 5월 26일 현재, 미국의 코로나-19 감염자 수는 누적 170만 명을 넘고 있으며, 사망자만도 10만 명을 넘는다. 며칠 전, 미국 주지사들 중에서는 가장 합리적이라는 평판을 듣는 쿠오모 뉴욕주 주지사는 일일 사망자 수가 100명 아래로 떨어졌다고 자축하는 논평을 냈다. 이를 보도한 다음 뉴스의 댓글은 이랬다. 제정신인가?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는 확진자 숫자가 100명 미만으로 떨어진 지 아주 오래됐다. 그래도 자축이라든가 하는 분위기는 없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나갔고, 일상생활이 파괴되었다. 도대체 뭘 자축한다는 말인가?
내가 사는 조지아주는 4월 하순, 가장 먼저 코로나-19 관련 비상조치를 종료한 주 중 하나다. 주지사는 브라이언 켐프. 트럼프 대통령이 조속한 경제활동 재개를 주장하며 주지사들을 윽박지를 당시, 나는 조지아주의 운명이 궁금하여 열심히 뉴스 검색을 했다. 조지아주 주지사는 소속 주민들이 어떻게 되든 트럼프에게 칭찬을 받고 싶어 경제활동 재개를 선언할 위험이 가장 높은 주지사 중 하나로 거론되었고, 그 언론의 예측은 며칠 후에 현실이 되었다. 조지아주는 가장 먼저 경제활동을 재개한 주의 하나였다.
반면, 애틀랜타시는 신중했다. 5월 중순, 애틀랜타시는 코로나-19 관련 입장을 발표했는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는 총 5단계로 시행될 수 있으며, 애틀랜타는 아직 가장 심각한 1단계에 해당한다고 말했다. 도시에서는 진보, 시골 지역에서는 보수가 우세한 21세기의 정치 지형은 미국도 마찬가지다. 조지아주 주지사 브라이언 켐프는 공화당 소속이지만, 애틀랜타 시장은 민주당 소속의 키샤 란스 바텀즈(Keisha Lance Bottoms)다. 흑인 여자 시장이라니, 극강 보수의 심장인 조지아주의 한가운데에서 대단한 일이다. 애틀랜타 인근 스톤마운틴 주립공원에는 남북전쟁 당시 남부에 가담했던 주들만을 기리는 기념 시설이 대규모로 마련되어 있다. 여긴 그런 곳이다.
애틀랜타시가 소속된 풀턴 카운티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 통계는 5월 26일 현재, 3,761명, 사망자는 170명이다. 반면, 조지아주는 총 42,800명의 누적 확진자, 그리고 1,823명의 사망자를 기록하고 있다. 조지아의 인구는 1,062만 명이고, 풀턴 카운티는 106만 명으로 대략 조지아주 인구의 10%를 차지하고 있다. 애틀랜타시의 인구는 46만 명 정도다.
풀턴 카운티의 사망자 숫자는 조지아주 전체 사망자 수의 약 10%로 인구비례상 적정하다고 볼 여지도 있다. 그러나 뉴욕주의 사례에서 보듯, 도시 지역은 코로나-19에 불비례적으로 취약하다. 애틀랜타를 빼면 인구가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는 조지아주에서 풀턴 카운티의 정확히 10배의 코로나-19 사망자를 배출했다는 것은, 정치로 결정하지 말아야 하는 사안을 정치적으로 결정했을 때 어떤 상황이 발생하는가를 보여줄 뿐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상상황을 선언했던 3월 13일, 나는 워크샵 참석차 매사추세츠 보스턴에 있었다. 갑자기 내려진 비상조치에 워크샵은 수요일부터 온라인으로 전환되었고, 나는 호텔 방에서 워크샵에 참여해야 했다. 그러나 거리에서는 그 누구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관광객으로 보이는 동양인 두 명이 마스크를 쓴 것이, 내가 보스턴에서 5일간 체재하며 목격한 유일한 마스크 착용 사례였다.
비상사태가 선언되고 난 뒤, 학교 수업은 물론 워크샵, 심지어 현장 방문까지 온라인으로 대체되었다. 아파트 단지 내에 갇혀 산 지 어언 두 달이 되었다. 단지 내에서 가끔 산책을 한다. 다른 사람이 멀리에 보이면 서로 멀리 비켜 지나간다. 그러나 마스크를 쓴 사람은 아직까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코로나-19는 사람들 사이에 벽을 만들었지만 사람들 사이에서 정을 없애지는 못했다. 아파트 단지의 온라인 게시판에는 마스크를 나눔하겠다는 글부터, 쿠키를 너무 많이 구웠으니 좀 가져가라는 글, 코로나-19로 강아지 돌봐 줄 사람을 못 구한 이들에게 무료로 도움을 주겠다는 글, 그리고 그로서리 쇼핑을 대행해 주겠다는 글까지 종종 보인다.
미국은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할 것이다. 도움은커녕 방해가 되는 정치인들에도 불구하고, 바로 사람들이 서로 도우며 이 위기를 끝낼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시나리오는 높은 시민의식과 더불어 정부와 정치계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미국에서 맞은 코로나-19 사태는 어떤 나라가 진정 선진국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