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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사과 나무

영웅의 아홉 가지 특징

무엇이 영웅을 만드는가

by 히말


시나리오 작가 에릭 에드슨(Eric Edson)에 따르면, 사랑받는 픽션 주인공은 다음 아홉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1. 용감하다.


2. 부당한 처사를 당한다.


3. 기술이 있다.


4. 재미있다.


5. 좋은 사람이다.


6. 위험에 처한다.


7. 친구와 가족에게 사랑받는다.


8. 성실하다.


9. 집요하다.


그에 따르면 <나는 전설이다>의 주인공은 이 아홉 가지를 모두 갖추고 있다. 반면, <그린 랜턴>의 주인공은 아홉 가지 중 하나도 가지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전설이다>는 성공했고, <그린 랜턴>은 망했다는 것이다.


Green_Lantern_poster.jpg?type=w773 영원히 고통받는 반지닦이



피터 스왠슨의 <죽여 마땅한 사람들>과 <그녀는 증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원제: Before She Knew Him)>를 보자. 릴리는 모든 것을 가졌다. 부당한 처사를 당했지만, 기본적으로 그녀는 용감하고 좋은 사람이고 주위 사람들은 물론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호감을 불러 일으킨다. 성실하고 집요함은 물론이다. 매슈 역시 그 모든 걸 다 가졌다. 그의 동생, 리처드의 말대로, 매슈는 '여자들이 자기에게 반하게 한 뒤 그녀들을 거부하는 것'을 즐긴다. 반사회적인 성격을 다소 가지고 있는 릴리에 비해 매슈는 사교적으로도 완벽하다. 친구와 가족에게 사랑받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캐릭터다. 피터 스왠스의 두 주인공은 모두 100점이다.


이번에는 이들의 안티 테제라 할 수 있는 인물을 보겠다. 올해 읽은 모든 소설 중에서 가장 나를 분노케 한 위화의 졸작, <형제>다. 이광두가 메인, 송강이 서브 주인공임이 분명하지만, 둘 다 주인공이라고 보고 생각해 보겠다. 송강은 대체적으로 저 공식에 맞는다. 송강은 기술이 다소 부족하고, 재미있는 사람이라고 보기 힘든 면이 있지만 나머지 측면에서는 모두 합격점이다. 반면, 영웅이라는 칭호조차 부끄러운 소설의 주인공, 이광두는 아무것도 갖추지 못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찬찬히 보자. 놀랍게도 이광두는 9가지 전부를 갖추고 있다. 한두 가지 영역에서 부족한 송강과 비할 바가 아니다. 이광두는 용감, 성실, 집요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고, 소설의 등장인물들에게 재미있는 사람으로 평가받으며, (임홍 단 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대단한 사랑을 받는다. 흡인력, 인화력, 설득력을 비롯해서 그는 성공하는 비즈니스맨이 갖춰야 할 모든 기술을 갖추고 있다. 거의 피카레스크 주인공으로 보이는 이광두가 저 목록을 충족하는 걸 보면, 에릭 에드슨의 목록은 과연 범상치 않다.


한 발 더 나아가 보자. 악당이 주인공인 서사를 살펴보자는 것이다. 작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거머쥔 <조커>가 그 주인공이다. 아서 플렉은 부당한 처사를 당하고, 위험에도 처한다. 그러나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랑받지 못한다. 이 영화를 너머 배트맨 시리즈를 전체적으로 보더라도, 부하들을 장기말처럼 쓰는 그가 부하들에게나마 사랑받을 가능성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용감, 성실, 집요, 기술이 있으나 그는 (광대라는 직업에도 불구하고) 재미있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 좋은 사람일리는 더더욱 없고 말이다.


SE-a4f168c4-0fea-447f-9508-6c7f1a0038e5.jpg?type=w773 트라우마로 설명이 되는 영웅(내지는 대악당)이라니, 얼마나 허무한가


피카레스크 서사의 주인공이라면 좋은 사람이라는 기준을 충족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재미있는 사람이 아닐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 이광두가 이 두 가지 어려운 조건을 충족하는 이유는, 그가 '성공을 전제로 쓰여진' 블랙 코미디의 주인공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영웅'이란 과연 무엇인가?


영화 <피아니스트>의 주인공 슈필만을 생각해 보자. 대단한 연주 기술을 가진 그는 나치에게 부당한 대우를 당하며, 위험에 처하고, 성실하다. 생명에 대한 집착은 집요하다고 할 만 하다. 다른 요소들도 대개 갖추고 있는 것 같다. 문제는 용감함과 유머다. 슈필만은 용감한 사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블라덱 슈필만이 자서전에 뭐라고 썼는지는 모르겠지만, 폴란드 레지스탕스를 도왔다는 것은 십중팔구 거짓말일 것이다. 더구나 영화에 나온 모습으로 보면, 유머 감각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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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니스트>가 성공했는가? <피아니스트>를 보면서 주인공의 아슬아슬한 살아남기 모험에 공감하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블라덱 슈필만은 용감하지도 않고 재미 있는 성격도 아니지만,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살아남기 위한 외줄타기를 계속한다. 아마 그 점 때문에 시청자는 그를 응원하게 되는 것 아닐까. 로빈슨 크루소, 몽테 크리스토 백작, 만화 <생존게임>의 주인공 사토루 역시 모두 마찬가지다.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그들은 영웅이다.


용감하지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 이들. 전형적인 동화의 주인공 아닌가. 동화의 영역을 벗어난 다음에까지 이 목록을 완전히 충족하는 것은 어쩌면 불필요가 아니라 부적절일 것이다. 악당이 주인공인 서사에서 주인공은 절대 '좋은 사람'일 수 없다. 악당이지만 알고보면 불쌍한 사람, 내지는 이해할 만한 사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설정은 이제 클리셰에 가깝다. 그래서 <조커>의 아서 플렉은 이해할 만한 슬픔을 가진 불쌍한 사람이지만 절대 좋은 사람은 아니다.



unnamed.jpg?type=w773 사이다만 주구장창 마셔대는 절대 무적 도깨비



사이다를 강요하는 요즘의 서사에서 주인공은 부당한 대우를 받지만 잠시뿐이고, 위험에 처하는 것 역시 일순간에 불과하다. 프롤로그, 길어야 제1화까지만 독자들은 주인공의 시련을 참아준다. 서사의 99%를 차지하는 이후의 분량에서 주인공은 진정한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 프롤로그와 제1화에서 받은 잠깐의 부당한 대우에 대해 길고 길게 복수할 뿐이다.


에릭 에드슨의 목록이 지금 이 시대에 일깨워주는 덕목은 아마 그것일 것이다. 고구마가 목에 걸렸을 때, 바로 그때야말로 사이다가 가장 시원하게 느껴지는 순간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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