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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01. 2020

어린 내 아들,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나

[간단평] 장하준의 <나쁜 사마리아인들>

영국. 신자유주의의 핵심부에 신자유주의에 반기를 든 경제학자가 교편을 잡고 있다. 바로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장하준이다. 읽는 내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드는 시원하고 통쾌한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신자유주의의 위선을 폭로하는 걸작이다.


이 책을 쓸 당시, 저자에게는 초등학생 아들이 하나 있었다. 학교를 다니는 대신, 아들은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얼마라도 생활비를 벌 수 있을 것이다. 소설 <올리버 트위스트>에서 아이들이 공장 노동과 굴뚝 청소라는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아들은 또한 학교를 다니며 경쟁력을 키운 다음 사회에 나가 직업을 구할 수도 있다.


신자유주의는 아들에게 당장 학교를 때려치우고 직업전선에 나가라고 하는 것과 같다. 자유무역은 누구에게나 도움이 된다는 그들의 말을 이 사례에 적용해보면, 아들은 당장 얼마라도 돈을 버니 좋고, 다른 사람들은 아들의 저렴한 노동으로 부가가치를 얻을 수 있으니 좋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라는 게 어떤 수준의 헛소리인지, 저자는 명쾌한 그림으로 제시한다.


신자유주의자들은 후진국 국민들의 후진적 국민성이 경제 발전의 발목을 잡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원인과 결과를 혼동한 것이다라고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인도인들의, 아프리카인들의 게으름과 약속 어기는 습관을 지적한다. 그래서 그들이 가난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저자가 지적하듯 우리나라에도 20년 정도 전까지는 '코리아 타임'이라는 것이 있었다. 약속 시간에 대충 늦게 나가는 것이 사회에 만연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은 언젠가부터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스위스에서는 정확하게 맞던 기차시간이 만만찮게 깐깐해 보이는 독일인들의 땅에서는 그렇지 않던 것을 보고 놀란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기차, 지하철 시간이 스위스 수준으로 맞는다. 나는 어제 47분에 양재역에 도착하는 지하철을 타려고 시간에 맞춰 역에 도착했고, 정확히 47분에 도착한 기차를 타고 정확히 6분 뒤에 고속터미널 역에서 내렸다. 모든 것이 앱에 나온 예상대로였다. 코로나-19 사태로 이제는 다들 느끼고 있는 것이지만, 우리나라는 이미 선진국이었던 것이다.


18세기 영국인들은 독일인들의 미개한 국민성을 개탄했다. 책으로, 기록으로 남아 있는 역사다. 19세기 개항 직후 일본인들을 관찰한 미국인들의 기록은 마치 동남아인들을 묘사하는 느낌이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국민성 역시 바뀐다. (국민성이라는 것이 있다면 말이다.) 역사적 불운과 제국주의적 착취로 저소득 상태에 남아 있는 국가의 국민들을 향해 국민성 운운하며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하고 불과 몇 세대 전의 자기 처지를 기억하지 못하는 우매한 인간적 한계를 드러내 보이는 일일 뿐이다.


과거 일본인들이나 독일인들이 가졌던 수많은 '부정적인' 행동 양식들은 대개 모든 저개발 국가에 공통된 경제적 조건들의 귀결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의 독일인들이나 일본인들이 '문화적 측면에서' 오늘날의 독일인들이나 일본인들보다는 오늘날의 개발도상국 사람들과 비슷한 점이 훨씬 많은 것이다. (453쪽)


민주주의와 경제 발전 사이의 관련성에 대해서도 저자는 한마디 한다. 많은 신자유주의자들이 자신들의 처방을 따랐음에도 경제 발전에 실패한 개도국의 사례를 이들 국가의 비민주성 떄문이라 말한다. 그러나 실증적 연구에 따르면 민주 정치는 경제 발전과 별 상관관계가 없다. 한국과 싱가포르, 그리고 스탈린 치하의 소련처럼 독재 하에서 엄청난 경제성장을 보여준 나라들도 많고, 민주화 이후에 견실한 경제성장을 이룬 사례도 많다. 민주주의가 경제 발전에 필요하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은 실증적으로 옳지 않다. 그러나 돈이 되지 않더라도 지켜야 할 가치는 많다. 민주주의는 그 고유의 가치만으로도 수호되어야 하는 것이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르티아 센은 민주주의는 본질적인 가치를 가지는 것이며, 발전을 정의할 때 꼭 한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416쪽)


신자유주의자들의 핵심 메뉴 중 또다른 하나인 신공공관리 역시 경제에 크나큰 부담이 된다. 신공공관리 이론에 따르면 정부는 많은 일을 민간에 위탁하여 행하게 되는데, 도급 계약이 늘리게 되면 부정부패가 일어날 채널 역시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정부패는 그 자체로 경제에 손실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부정부패를 막기 위한 제도로 인해 사회적 비용을 늘린다. 게다가 미국과 같은 선진국 기업이 개도국에서 벌이는 각종 합법, 불법 로비 활동을 생각해보면, 신공공관리 정책은 전세계적 견지에서 부정부패를 더욱 심화시킨다.


자유무역으로 인해 개도국 정부가 관세 수입을 상실하는 것도 큰 문제다. 이들 국가에서는 관세 수입이 재정의 큰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세금 징수 시스템이 빈약한 이들에게 관세는 대단히 효율적인 재정 확보 수단이다.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싶은 신자유주의자들의 악행은 다름아닌 내로남불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도 자신의 과거(보호주의)와 남들의 현재(자유무역)를 달리 취급하지만, 이중 잣대는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신자유주의자들의 제국주의 도구인 IMF는 선진국에는 케인즈주의를, 개도국에는 자유주의(통화주의)를 처방한다.


신자유주의는 기득권을 옹호하며, 따라서 보수적이다. 보수의 특징 중 하나는 멍청함인데, 이들은 상대의 반론을 듣지도 않고 했던 말을 되풀이하기만 하는 것이 보통이다. 어차피 그들은 듣지 않겠지만, 이들에게 보내는 저자의 메시지는 통쾌하다.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은 내가 이 장에서 제시한 역사적 증거에 반박하기 위해 보호 무역주의와 경제 발전이 동시에 존재했다는 이유만으로 보호 무역주의가 경제 발전을 유도했다고 증명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최소한 어떤 것(경제 발전)을 그와 같은 시기에 존재했던 다른 것(보호 무역주의)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런 만큼 자유 무역주의 경제학자들은 오늘날의 부자 나라들이 부자가 되기 전까지 자유 무역을 실천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유 무역이 경제적인 성공을 설명하는 해답이 될 수 있는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16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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