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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Dec 29. 2020

크리스퍼와 매드 사이언티스트

[서평] 크리스퍼가 온다 / 제니퍼 다우드나

이 책은 크리스퍼의 발명자로 노벨상을 수상한 (그러나 특허 소송에서는 지고 만) 제니퍼 다우드나의 책이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강력한 유전자 편집 툴로서 '발견된' 크리스퍼에 관한 기술적 이야기, 그리고 이 기술의 실용적, 도덕적, 정치적, 사회적 함의에 관한 부분이다. 크리스퍼에 관한 기술적 지식은 인터넷을 뒤져 보아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책이 정말로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바로 뒷 부분인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자는 크리스퍼 기술을 아마도 반대할 '대중의 무지'에 맞서 싸우고 싶어한다.


나는 GMO 반대론자다. GMO를 만들어 세계에 퍼뜨리는 몬산토가 만화에나 나오던 '악의 기업'이라 믿는다. 내가 GMO를 반대하는 이유는 하나다. 안전성을 어느 정도 확인하고 나서 해도 될 일을 우선 시작부터 하는 미국식 실용주의에 반대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내가 미국식이라 말하는 것은 윌리엄 제임스나 존 듀이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돈이 된다면 일단 시장에 내놓고 보는 천박한 자본주의적 실용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에 미국식 실용주의의 첨단을 걷는 국가는 미국이 아니라 중국이다. 이 책에도, 인간 배아에 크리스퍼 기술을 적용한 중국 연구팀 이야기가 나온다. 비록 생명체로 태어나지 못할 3배체 배아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근본적 질문은 이것이다. 우리는 아직 코드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코드의 일부만을 건드렸다가 버그를 만드는 것은 프로그래머들이 매순간 겪는 문제다. 당신들, 오만이 지나친 것 아닌가? 몬산토 GMO든 크리스퍼 GMO든 똑같은 질문에 답해야 한다.


안전성을 검증하기 전이라도 크리스퍼 기술을 상용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저자는 두 가지 논거로 뒷받침한다. 첫째, 의학적 긴급성, 그리고 둘째, 막연한 낙관주의. 불치병에 시달리는 사람이라면 첫 번째 논거는 충분히 납득할 것이다. 아니, 나도 납득한다. 모든 수단이 소모된 상황에서, 아직 알지도 못하는 부작용이 무슨 대수인가? 나라도 일단 지푸라기를 잡을 것이다. 그러나 지푸라기라도 잡아야 한다는 논거가 이성적으로 설득력이 있는 논거라고 보기는 어렵다.


일단 사람 목숨을 살려야지 무슨 얘기냐고 반박할 이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생명의 연장이라는 것이 과연 절대선인가? 많은 의사들이 자신들은 '기관 삽관'은 절대 하지 않을 것이라 말한다. <참 괜찮은 죽음>에서 헨리 마시는 자신이 수술하는 뇌질환 환자들과 같은 상황이 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다. 그 상황이 되어보지 않고 확언을 하기는 어렵지만, 아마 자살할 것이라고.


저자는 이렇게까지 말한다.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의학 치료법이 치료법을 완전히 이해하기 전에도 잘 개발되어왔는데, 크리스퍼에만 더 높은 안전성이라는 기준을 들이댈 필요가 있을까? (394쪽)


이쯤 되면 실소가 나온다. 다들 새치기 하는데 왜 나한테만 그러냐고 하는 말 아닌가? 그러나 크리스퍼에는 더 높은 안전성이 요구되어야 한다. 크리스퍼는 유전자를 조작한다. 부작용의 파급력이 다른 의학적 발명과는 궤를 달리한다. 새치기를 하려는 사람들 중에 총을 든 사람이 있다면 일단 그 사람부터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총은 위험하단 말이다. 저자 자신도 핵무기 개발과 크리스퍼를 계속해서 비교하고 있지 않은가?


더 큰 문제는 두 번째 논거다. 인간은 지금까지 잘해왔으니, 앞으로도 어떻게든 해답을 찾을 거라는 얘기다. <인터스텔라> 카피도 아니고 이게 도대체 과학자가 할 소리인가?


저자 스스로도 일단은 딜레마를 인정한다.


나를 괴롭히는 윤리 문제가 두 가지 더 있다. 모두 유전자 편집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논의했던 문제로, 둘 중 어느 것도 해결하지 못했다. 첫 번째 문제는 일단 의사가 환자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생식세포 편집 기술을 사용하기 시작하면, 그 사용 방식을 누가 통제할 수 있느냐는 점이다. 두 번째 문제는 크리스퍼가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즉 사회 정의와 관련된 문제다. (401쪽)


이런 윤리적 딜레마에 대해 해결책이 없다고 스스로 시인하는 저자는 몇 쪽 뒤에서는 또 이렇게 말한다. 크리스퍼를 연구하면서 일반 대중과의 소통의 필요성을 절감했고, 그런 소통이 필요한 이유는 대중의 무지와 편견에 대항해 싸워야 하기 때문이다. 최악은 아직이다. 그건 책의 끝부분에야 나온다.


독자 여러분이 이 책을 읽고 꼭 챙겨가길 바라는 점이 있다면, 인간은 개방된 과학 연구를 통해 주변 세계를 계속 탐험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427쪽)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인가? 크리스퍼를 반대하는 것은 과학 발전을 반대하는 것이라는 논거인가? 이쯤 되면 마녀사냥이나 다름없다. 크리스퍼라는 대단히 위험할 수 있는 기술에 안전성을 요구하는 합당한 요구를 하는 사람들을, 과학 연구를 훼방 놓는 부류로 몰아부치는 것이니까.


크리스퍼는 과연 놀라운 발견이다. 박테리오파지에 대항해 세균이 이미 준비해 가지고 있던 능력을 인간이 빌려쓰는 것이다. 자연이 이미 가지고 있는 기술이다. 이 놀라운 현상을 유전자 조작에 활용하는 방법을 만들어가면서, 과학자인 저자가 느꼈을 행복감을 나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러나 위대한 철학자인 스파이더맨의 삼촌이 말했듯,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르는 법이다.


저자는 매드 사이언티스트가 아니다. 혁신적인 발견을 이룬 과학자가 자신의 발견의 파급력에 대해 이렇게까지 고민하는 사례는 흔치 않다. 저자는 크리스퍼에 의한 유전자 조작이 활용될 수많은 경우의 수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예컨대, 멸종 동물 복원에 대해 저자는 단호히 반대하는 입장을 취한다. 살아 있는 종에 대해 역차별이니, 오히려 남은 종의 보존에 힘쓰는 것이 맞다는 입장이다. 체세포 편집은 찬성하지만, 생식세포 편집은 일단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저자의 깊은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그러나 저자는 여전히 여러 부분에서 대단히 위험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질병을 치료하는 목적과 우월한 특성을 확보하는 목적은 구별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저자는 제기한다. 비만 유전자를 제거해서 성인병에 저항성이 생기게 하는 것 자체가 이미 다른 사람들에 비해 우월해지는 것이므로, 그 연속선 상에서 더 높은 지능이나 더 큰 키를 확보하는 것도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적어도 누군가는 그렇게 생각하고 우월한 유전자 확보에 뛰어들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생식세포 편집 금지에 관해서도, 저자는 국제협약을 통한 방지라는 편리한 해결책을 제시한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오랫동안 존재해왔지만, 이스라엘, 인도, 파키스탄, 그리고 북한이 핵을 개발했다. 크리스퍼 기술은 집에서도 할 수 있을 정도로, 그래서 바이오 해커라는 것이 나타날 가능성을 우려할 정도로 비용과 노력이 적게 든다. 국제협약 따위로 생식세포 편집을 금지할 수 있다고 저자는 정말 믿는 것일까?


크리스퍼를 세상에 가져온 과학자의 입으로 직접 듣는 크리스퍼 강의는 재미있었다. 크리스퍼를 개발하면서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다는 말도 십분 공감한다. 과학적 발견에 따르는 윤리적 딜레마에 고민하는 그녀의 모습을 존경하며, 존중한다. 그러나 판도라의 상자는 열려버렸다. 그 상자에서 제2, 제3의 몬산토라는 재앙이 튀어나오지 않을까 두렵다.


*****


크리스퍼는 분자 백신 접종증명서와 같다. 과거의 박테리오파지 감염 기억을 반복 서열과 스페이서 DNA 서열에 저장했다가, 세균이 나중에 같은 박테리오파지에 감염되면 이 정보를 이용해서 침입한 파지를 인식하고 파괴한다. (120쪽)


크리스퍼가 유전자를 자르고나면, 세포는 금속 파이프 두 조각을 용접하듯 단순하게 DNA를 다시 접합한다. 이 과정을 비상동 말단부착이라고 한다. 상동 재조합과 달리 이 과정은 주형과 일치하는 염기를 넣지 않기 때문이다. 비상동 말단부착 복구의 중요한 특징은 엉성하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DNA 몇 개가 결실되거나 삽입되어 영구적 변화를 일으킨다. 다시 말해, 크리스퍼에 의한 유전자 절단은 대개 유전자 변형으로 이어진다.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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