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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Nov 17. 2017

법의 존재 의의

[서평]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책을 펴보니 청소년을 위한 기획에서 출발한 책이다. 그런데 일단 읽기 시작했으니 멈출 수도 없다. 그리고 내가 법에 관해서 아는 지식이 청소년 수준을 넘는 것도 아니다. 백과사전식 전개가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라는 마음으로 읽기를 계속한다.

책 내용 중에는 <파리 대왕>과 <동물 농장>을 이용해서 법과 정의에 관해 이야기한 부분이 좋았다. <동물 농장>에서는 동물들의 법이 어떻게 그 모습을 바꾸어 가는가를 순서대로 보여준다. 지배자가 원하는 대로 법이 자의적으로 해석되고, 아예 그 내용이 바뀌어 가는 모습이 마치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보여주는 것 같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죽이면 안 된다는 절대적 의무가, '이유 없이' 죽이면 안 된다는 상대적 의무로 바뀐다. 힘이 있는 자가 무슨 이유는 만들지 못하겠는가.

<파리 대왕>에서는 아예 법이 없는 세상이 어떻게 통치되는가를 보여준다. 법이 존재하지 않을 때, 지배자는 두려움을 통치의 도구로 이용한다. '산 위의 짐승'이라 불리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불안에 굴복하여 아이들은 잭의 무력 통치를 받아들인다. 알지 못 하는 공포를 피하기 위해 알고 있는 공포를 택하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역사에 이름을 남긴 수많은 독재자들이 증명하고 있다.

정의론에 관해 논한 부분에서는 현대 정의론의 대표적 인물 중 하나인 로버트 노직(Robert Nozick)이 언급되지 않은 것에 조금 놀랐다. 롤스의 대척점 아닌가. 노직의 정의 관념은 나로서는 도저히 수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 아전인수격의 억지 논리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현대 사회에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고 있는 이론이다. 그 유명한 마이클 샌델이 노직의 돌격대장 아닌가.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노직의 자유주의(libertarianism)를 언급하지 않은 것은 대단히 아쉽다.

법이 보장하는 자유의 내용 중 표현의 자유에 관한 부분 역시 좀 더 폭넓은 논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는 표현의 자유라는 것이 아직도 개인 대 국가의 차원에 머물러 있지만, 북유럽과 같은 민주주의 선진국에서는 개인 대 개인 차원의 논의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참혹한 테러 공격을 불러온 '샤를리 엡도' 사건도 개인 대 개인 차원에서 표현의 자유가 문제된 사건이다. 표현의 자유 문제는 책 한 권으로도 모자라는 주제이니, 아마도 책 분량으로 인한 한계로 보인다.

추천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렇다고 답하겠다. 충분히 좋은 책이다. 다만, 개구리 연못 이야기로 시작한 서두의 참신함이 어느새 사라지고, 후반부에는 마치 고등학교 윤리 책처럼 읽히는 것은 소비자 입장에서 아쉽기만 하다. 하지만 법의 존재 의의를 우리 삶과 연관 지어 생각해 보는 것은 누구에게나 한 번쯤 필요한 일 아닐까. 이런 책이 나와야 할 정도로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이 지체된 것은 누구의 책임일까.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 표지 (저작권자 풀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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