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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14. 2021

'작은 습관'을 업글할 시간이다

[책을 읽고] 스티븐 기즈의 <탄력적 습관>

어떤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나면, 작가나 출판사가 그걸 울궈먹기 위해 빈껍데기로 2탄, 3탄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수많은 영화가 엉망으로 속편을 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미라클 모닝>은 정말 엄청난 책이었지만, 저자가 이어서 발표한 속편들은 정말 아쉬웠다. 스티븐 코비의 책들 중 몇 권도 이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아니, 펄 벅의 <대지>만 해도 2, 3편은 1편에 훨씬 못 미치는 것이 현실이다.


스티븐 기즈의 또 다른 책을 만났을 때, 나는 사실 별다른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의 전작, <습관의 재발견>이 대단하기는 했지만, 그에게서 또 뭘 기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웬걸. 이 책은 진짜다. 책 서두에서 그가 내지르는 호언장담이 현실로 바뀌는 것을, 나는 책을 읽으며 실감했다. 연타석 홈런이라니.


스티븐 기즈의 '작은 습관'의 대표주자라면 역시 '팔굽혀펴기 1회'일 것이다. 그러나 그의 책을 읽고 정말로 '팔굽혀펴기 1회'를 목표로 적은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운동 습관을 들인지 오래되어 이제는 운동을 안 할 경우 정말로 기분이 쳐진다. 그래서 운동에 관해서라면 '작은 습관' 같은 것으로 유인책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다른 습관은 어떤가? 내가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습관화하지 못한 것 중에는 일기 쓰기가 있다. '작은 습관'으로 '일기 1줄 쓰기'를 정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쉬울까? 운동 목표로 '피트니스 센터에서 1시간 운동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1시간 때문이 아니라 피트니스 센터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다. 일기도 마찬가지다. 일기를 쓰기 위해, 자기 직전에 컴퓨터를 켜거나 휴대폰 앱을 열어야 한다는 것 자체가 큰 장애물이다. 1줄 쓰는 거야 대수롭지 않지만, 거기에 이르기 위해 크나큰 점프를 해야 한다. 그래서 '작은 습관'은 스티븐 기즈의 말대로 '너무 한심해서 헛웃음이 나오는 수준'이어야 하는 것도 맞지만, 가는 길에 장애물이 없는 것이 더 중요하다.



<탄력적 습관>이라는 제목만 봐도 스티븐 기즈가 뭘 얘기하려는 것인지 쉽게 짐작이 된다. 그래서 그의 이 책을 집어들었을 때, 속편에 관한 우려가 엄습했던 것이다. 뻔한 얘기 할까봐. 그러나 잠깐. 이 책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제부터 그 이야기를 하려 한다.


탄력적 습관에는 두 가지 축이 있다. 수직적 축은 제목에서 쉽게 유추 가능한 것이다. 팔굽혀펴기 1회를 했다면, 10회도 할 수 있고, 마음 먹기에는 50회도 가능할 것이다. 이 모든 경우를 그저 '작은 습관' 달성이라 퉁치지 말고, 요컨대 마일스톤을 세우는 것이 탄력적 습관의 수직축이다. 1회를 달성했다면, '작은 습관'을 달성한 것이지만, 10회는 '준수', 50회는 '위업'이라 기록해도 되지 않을까. 스티븐 기즈는 '미니', '플러스', '엘리트'라는 이름을 쓰고 있다.


탄력적 습관의 또 다른 축은 수평축이다. 운동을 하는 것이 취지라면 굳이 팔굽혀펴기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그날의 목표 최저치는 스퀏 1회나 턱걸이 1회라도 좋은 것이다. 목표 달성에 있어 다양한 선택지를 주는 것이 탄력적 습관의 수평축이다.


두 개의 축을 조합해 보자. 습관 이름은 '운동하기'다. 수평축에는 방법이 적혀 있다. 팔굽혀 펴기, 스퀏, 턱걸이의 세 가지다. 수직축에는 달성 정도를 적는다. 1회를 했다면 '숙제'를 한 것이고, 10회는 '준수', 50회를 했다면 '위업'을 달성한 것이다. (물론 턱걸이 50회가 스퀏 50회와 같을 수는 없으니, 운동 종류에 따라 수직축의 숫자는 조절을 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숫자 3을 추천한다. 만들고자 하는 습관도 셋, 수직축도 셋, 수평축도 셋으로 하라는 것이다. 수평축은 네 개까지 괜찮다고 하는데, 양적인 차이인 수직축보다 더 의지력을 갉아먹을 질적인 차이의 수평축에 왜 하나를 더 허용하는지는 의문이다. 선택지가 많으면 좋기도 하겠지만, 그만큼 결정장애와 의지력 고갈의 문제를 가져온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 아니던가.


자, 이제 습관을 만들어보자. 꽤 오래된 습관이면서도 의지력을 자주 시험하는 것이 운동과 식이요법이다. 이 두 가지에 일기쓰기를 포함시켜 세 가지를 '탄력적 습관' 시스템에 입력해보자.



1. 운동


현재 하고 있는 것은 주 3회 인터벌, 그리고 그 사이에 걷기 또는 요가다. 원래 만보 걷기를 했었는데, 날씨 때문에 요가라는 대안을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 인터벌 운동을 이틀 연속으로 하면 득보다 실이 많다. 그래서 인터벌을 하는 날과, 사이운동을 하는 날, 이렇게 둘로 나눠서 습관 체계를 만들도록 하겠다.


인터벌 운동에 '미니' 단계란 없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이건 내 모든 습관 중에서도 가장 신경 쓰는 것이기 때문에 작은 습관 수준으로 달성할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그러나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취지이므로 한번 해보자. '인터벌 1 사이클'은 어떨까? 예컨대 버피 10회나, 전력질주 30초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것은 분명 '팔굽혀펴기 1회'보다는 무지막지하게 거창한 목표이기는 하지만, 어차피 나는 이걸 달성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이 정도로 세팅해도 좋을 것이다.


'플러스' 수준은 스티븐 기즈의 조언에 따라 '미니' 수준의 2~3배 정도에서 결정하면 될 것이다. '인터벌 2 사이클'로 하자. '엘리트' 수준은 현재 내가 하는 수준, 즉 인터벌 30분 내지 버피 10 사이클이다. 현재 성취하는 수준을 '엘리트'라 하는 게 우스워보일 수도 있겠지만, 인터벌 운동을 심각하게 해본 사람이라면 내 결정을 크게 책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나는 죽고 싶지 않다.


다음은 인터벌 운동을 하지 않는 날의 운동, 즉 사이운동이다. '미니' 수준은 요가 1분, '플러스' 수준은 요가 10분이나 만보 걷기로 하고, '엘리트' 수준은 플랭크 및 아치 자세 각 10회를 포함한 요가 30분 또는 17,000보 걷기로 하겠다.



2. 식이요법


내가 현재 실천하는 식이요법은 간헐적 단식이다. 나름대로 만든 점수표를 쓰고 있는데, 대체적으로 일주일에 24시간 단식 1회와 16시간 단식 4회 정도가 목표다. 말하자면 16시간 단식이 '미니' 수준이고, 24시간 단식이 '플러스' 내지 '엘리트'라 볼 수 있다.


그러나 과연 내가 24시간 이상의 단식을 할 수 있을까? 40시간 단식을 한 차례 해본 내 경험으로는, 무리한 기록 달성 이후 요요를 겪는 것보다 꾸준히 달성할 수 있는 수준을 정하는 것이 낫다. 따라서 24시간을 '엘리트' 수준으로 정하고, '플러스'는 16시간 단식에 성공한 뒤 8시 이후 간식을 안 먹은 경우로 하면 될 것 같다.


식이요법에는 수평축이 없다. 난 뭘 가려먹는 식이요법을 하는 게 아니고 아예 안 먹는 식이요법을 하기 때문이다. 대신, 스티븐 기즈가 제시하는 '양념' 중 하나인 보너스 점수를 도입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커피를 하루 1잔만 마실 경우 +1점, 커피를 아예 안 마실 경우 +3점을 도입할 수 있겠다. 보너스 점수 3점은 엘리트보다 어려울 듯하지만.



3. 일기


스티븐 기즈의 이번 책에서 빛나는 아이디어 중 최고는 역시 '모듈형 습관'이다. 예컨대 청소 습관의 경우, '미니'는 청소기만 돌리기, '플러스'는 걸레질, '엘리트'는 대청소로 정하는 것이다. 상위 단계는 하위 단계를 포함한다. 즉, '엘리트' 수준으로 청소 습관을 달성할 경우,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까지 한 다음 대청소를 해야 한다. 모듈형 습관의 장점은, 엄두가 안 나는 거대한 작업을 잘게 쪼개 엄두가 나게 한다는 데 있다. 그냥 대청소라면 겁부터 나지만, 일단 청소기를 돌리고 나면 다음 단계도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으니까. '작은 습관'이 원래 그런 취지의 것 아니던가.


모듈형과 유사한 장치로, '혼합형'이 있다. 예컨대 운동의 경우, 턱걸이 15회, 팔굽혀펴기 20회, 스퀏 30회를 하나의 풀(pool)로 설정한다. 이들 중 하나를 달성하면 '미니', 둘을 달성하면 '플러스', 셋을 달성하면 '엘리트'가 되는 것이다.


나는 일기 습관 만들기를 '혼합형'으로 세팅했다. 습관 풀에 들어 있는 것은 보통 일기 쓰기, 꿈일기 쓰기, 이틀 전 일기 쓰기다. 이들 중 하나를 달성하면 '미니', 둘을 달성하면 '플러스', 셋을 달성하면 '엘리트'다.


선택지는 셋이 좋다고 말했지만, 얽매일 필요는 없다. 일기는 쓰기도 중요하지만 과거의 일기를 음미해보고 성찰해보는 것도 중요하다. 습관 풀에 '과거 일기 3편 훑어보기'를 포함시키는 것도 좋을 것이다. 총 4개의 옵션 중 셋을 달성하면 '엘리트' 성과다.



***


스티븐 기즈의 책을 너무 칭찬만 했는데, 웃기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컨대 부록에 실린 습관 캘린더 개발에 1만 달러 이상이 들었다고 말하는 부분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이 난다. 아마 저자 본인이 그걸 구상하는 동안 먹고 사는 비용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또한 책이 과하게 두껍다는 평도 가능하다. 나는 즐겁게 읽었지만, 분명 같은 내용을 더 얇은 책으로 낼 수 있었을 것이다. 시간에 쫓기는 현대인들 중에는 그런 형태를 선호하는 사람도 많다. 내 생각을 말하자면, 이 책은 분명 더 간략하게 쓸 수도 있었지만, 늘어난 분량도 동기부여에 도움이 되는 내용들이므로 괜찮은 수준이라고 생각한다. 쓸데없는 내용으로 분량을 늘리는 작가를 하도 많이 만나서 내가 좀 너그러워진 측면도 있을 것이다.


스티븐 기즈의 <탄력적 습관>에 내가 매기는 평점은 5점 만점이다. 영양 만점의 책이다. 스티븐 기즈는 남의 아이디어를 여기저기에서 물어와서 짜집기하는 일반적인 자기계발서 작가와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다. 예전에 '52권 자기 혁명' 시리즈를 연재할 때 스티븐 기즈의 책을 첫 번째 책으로 정했던 것도, 그의 책이 정말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더 멋진 책을 가지고 돌아온 스티븐 기즈에게 박수를 보낸다.


그래서, 일기 쓰기는 어떻게 해결했느냐고? 일기를 꼭 자기 전에 쓸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때나 써도 된다고 생각하자, 일기 쓰기는 정말 쉬운 루틴이 되었다. 요즘 엘리트 단계를 매일 달성하는 중이다.



***** (이하, 습관 만들기 팁 정리) *****


습관 신호에는 크게 두 가지, 시간 기반 신호(:9시에 이닦기)와 행동 기반 신호(이닦고 나서 치실)가 있다. 행동 기반 신호를 이용하면 습관 연쇄가 가능하다. (나의 경우, 아침에 일어나면 물마시기 -> 화장실 -> 샤워 -> 체중 재기의 루틴이 발동한다.)


습관 트래커에 빈 칸을 남기느니 미니 습관을 실천하라.


작은 습관을 하루 거르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이틀 연속으로 거르는 것은 크나큰 문제다.


불명확하고 복잡한 과제는 거부감을 불러 일으킨다. 명확하게 목표를 정하고, 작은 단위로 행동을 쪼개라.


한 달이 되어가는데 한 번도 실행하지 않은 선택지는 빼는 것을 고려하라.


화장실 문에 철봉을 설치하거나, 냉장고 앞에 물컵을 놔둬서 통행세를 걷어라. 턱걸이 2회 또는 물 한 잔을 마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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