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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Jan 22. 2021

[짧은 평 모음] 요즘 읽은 책

2020.12.10~2021.1.21

2020년 12월과 2021년 1월에 읽은 책들에 관한 짧은 감상 모음.



* 헌법을 쓰는 시간 (김진한) - <지금 다시, 헌법>과는 조금 다른 접근법이지만 같은 주제를 다루었다. 진보적인 태세도 같다. 법원 및 검찰 개혁에 대한 이해가 떨어지는 것까지도 같다. (저자는 법원과 검찰이 권력의 개 노릇을 하는 것이 문제라고 하지만, 실제로 더 큰 문제는 법원과 검찰이 스스로 권력의 자리를 취한다는 점이다. 검찰개혁에 아무 이유 없이 저항하는 저들의 태도가 문제를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지금 다시, 헌법>이 현행 헌법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조목조목 짚고 있다면, 이 책은 좀더 근원적인 법 철학적 접근을 보여준다. 두 권 모두 훌륭한 책이고, 시의적절하다. 다만, 촛불 혁명이라는 걸출한 역사적 성취 이후에 이렇게 중요한 숙제에 손도 대고 있지 못한 우리들의 현실이 안타깝다.


* 나, 조선소 노동자 (마창거제 산재추방운동연합) - 2017년 5월 1일, 삼성중공업 조선 현장에서 일어난 대형 사고. 그 사고의 생존자들이 겪는 PTSD에 관한 이야기다. 단지 살아나가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내해야 하는 거대한 부당함에 관한 이야기.


* 커피 상식 사전 (트리스탄 스티븐슨) - 지금까지 읽기를 시도했던 커피 관련 책 중에 제일 나았다. 열정만 가지고 책을 쓰기는 힘들다. 저자처럼 공부도 해야 한다.


* 세상의 모든 공식 (존 M. 헨쇼) - 가볍게 읽기 좋다. 생각보다 중간중간 밑줄 그을 일도 많다.


* 내가 사랑한 수학 (에드워드 프렌켈) - 군론을 연구하는 수학자의 이야기. 그 소련이 유대인 차별을 했다니 기가 찬다. 저자의 전문 분야는 군론인데, 너무 어렵다. ㅠㅠ


* 절제의 기술 (스벤 브링크만) - 도대체 뭘 읽었는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는 신기한 책. 고등학교 도덕책 읽은 느낌. 특히 집단 차원의 (전통적) '의례'를 강조하는 부분은 유교의 폐해를 500년 동안 겪은 나라 사람으로서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겠다.


- 한 문장: 사회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해야지,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해서는 안 된다. (당연한 것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잊고는 한다. 그러나 그 답이 전통이나 의례는 아니지. '법'이어야지.)


* 간병살인, 154인의 고백 (유영규 등) - 가슴 아픈 이야기들. 나라면 정말 어떻게 할까, 하는 질문을 자꾸 던지게 한다.


* 나는 간호사 사람입니다 (김현아) - 간호사라는 직업. 역시나 정말 힘들구나, 정말 많은 희생을 하는구나, 다시금 확인하게 해준 책. 내용은 훌륭하지만 글은 정말 못 썼다. 억지로 멋진 문장을 쓰려다 피차 창피해지는 표현으로 끝나는 게 부지기수다. 헨리 마시처럼, 담백하게 써내려갔다면 좋았을 텐데. (물론 그런 재주는 흔한 것이 아니다.)


- 한 문장: "내가 환자들에게 놓는 수액에도 이렇게 정성을 들였었던가?" (인간이란 자기반성하는 동물이다.)


* 참 괜찮은 죽음 (헨리 마시) - 드라마틱하기로는 중상외상센터와 심장외과에 다소 밀리겠지만 신경외과는 분명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최전선 중에서도 최전선이다. 저자가 영국인이라서 그런 건지, 이 책의 의학드라마는 남궁인의 엘러지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 삶과 죽음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있다고나 할까. 그렇다고 해서 저자가 냉혈한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그는 자신의 수술로 인해 인생이 뒤바뀌어 버린 사람들의 고통을 정말 생생히 공감하고 있으니까. 과장되지 않고, 인간적인 그의 모습이 오히려 더 친근하고 진솔하게 다가온다. 올해 에세이 부문에서는 단연 최고인 듯.


* 우리는 영원하지 않아서 (이낙원) - 저자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초딩 수준의 문장력, 천박한 상상력, 그리고 무엇보다 남에게 보이기에 너무 창피할 그 인격을 글에 그대로 드러냈으니. 어려운 환자를 꺼리는 것은 반사신경 수준의 문제이니 도덕적으로 비난받을 문제가 아니라고 말하고, 간호사에게 농담조로 필요없는 일을 떠넘기며, 말을 하지도 못하는 환자의 감정을 자기 마음대로 읽어낸다.


* 내 아들은 조현병입니다 (론 파워스) - 저자의 이름은 물론, 아들들의 이름까지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느낌.


*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웰즈) - 기후나치. 환경 파시스트. (나는 기후변화를 소득불평등이나 소수민족 인권 문제보다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그렇게 느꼈을 정도로 편향적이다.)


* 오늘 내가 사는게 재미있는 이유 (김혜남) - 15년간 치매를 앓아온 의사가 쓴 삶의 지혜 이야기. 훌륭한 삶을 사는 저자에게는 깊은 존경을 느낀다. 다만, 세상에 널린 좋은 말 재탕에 불과한 이 책에서는 그다지 건질 게 없다.


- 한 문장: "중요한 건 지금 당신이 인생을 놓고 봤을 때 전혀 중요하지 않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다는 거예요. 상사 때문에 화를 내고, 상사를 볼 때마다 불편해하고, 그에 맞춰 주는 사람들에게 분노하는 데 당신의 에너지를 다 써버리기엔 인생이 너무 아깝이 않나요?"


* 나는 나무에게 인생을 배웠다 (우종영, 한성수) - 존경스러운 저자의 삶. 그걸 가능하게 한 나무들.


* 시작의 기술 (개리 비숍) - 원제 Unf*ck yourself. 마찬가지로 비범한 제목으로 유명했던 <신경 끊기의 기술>과는 달리 글솜씨가 형편 없다. 저자 본인은 (당연히) 부정하겠으나, 이 책은 확언과 반복으로 독자를 각성시키는 토니 로빈스 류의 자기계발서의 또다른 1권일 뿐이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짧다는 것 정도?


*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 작가가 일본인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다. 아주 전형적인 일본식 라노벨. 유치찬란하고, 상상력도 빈곤하기 그지없다. 다만, 마지막 에피소드에 나온 할머니와 손자 이야기는 따뜻해서 좋았다.


* 철학 VS 철학 (강신주) - 1,492쪽의 책이 이렇게 재미있을 수 있다니. 역시 철학은 궁극적 유희다.


* 아인슈타인과 괴델이 함께 걸을 때 (짐 홀트) - 서론은 거창하고 본론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책이 두껍다 보니 재미있게 읽은 부분도 많다.


* 아이 캔 후라이 (김나훔) - 주인공인 계란 캐릭터가 귀엽다고 리뷰가 난리였는데, 과연 귀엽기는 하다. "자유 시간에 뭐 했냐고 물어보지 마. 아무것도 안 할 자유를 누릴 시간이 필요했던 거니까!" 요리장식(?)으로 묶인 두 계란이 서로에게 말한다. "저리 가." "저리 가." "근데 귀찮지?" "응, 귀찮아." 조사해보니, 구데타마는 2013년 캐릭터 기업 산리오가 만든 캐릭터다.

(c) 산리오

* 1일 1식 (나구모 요시노리) - 간헐적 단식 중간 점검 차원에서 본 책. 이런 책들 보면서 드는 생각은, 좀 스티븐 기즈처럼 설렁설렁 해도 된다고 말하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다. 이렇게 철두철미하게 어떻게 살아? 건강함은 아름다움으로 드러난다. 건강함을 목표로 하지 말고 잘록한 허리와 매끈한 피불부를 목표로 해라.


* 탄력적 습관 (스티븐 기즈) - 미니습관의 창안자 스티븐 기즈, 제2탄. 이번에는 수직적, 수평적 탄력성을 더한 습관 세트다. 특히 모듈형 습관이 마음에 든다. 스티븐 기즈는 역시 대단하다. 아이디어도 참신하고, 도움이 되며, 실행하기 쉽다. 이번에도 홈런!!


* 소를 생각한다 (존 코널) - 귀농 청년의 목가.


* 무례한 시대를 품위 있게 건너는 법 (악셀 하케) - 공식 석상에서 장애인을 조롱한 트럼프. 그런 시대를 바라보는 독일인 저자는 히틀러 시대를 회상한다. 이런 어려운 시절에 '품위'를 지키는 방법은 뭘까? 해답은 결국 타인에 대한 배려다. '친구'와의 대화 부분은 지나치게 작위적이라는 점만 빼면, 이 시대에 꼭 한번 생각해봐야 하는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다시 보기도 했고. 지구상 모든 곳에서 진행중인 정치 양극화 시대, 사람들이 꼭 한번 읽어봤으면 한다.


* 펭귄의 여름 (이원영) - 세종기지 동물학자의 펭귄 관찰 일기.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 부럽다. 펭귄도 보고 싶고.


* 가족끼리 왜 이래 (박민제) - 가족간 법정 분쟁 보고서. 단순히 이야기 중심으로 전개하지 않고, 법과 제도의 현실과 문제점을 다루었다는 점이 훌륭하다. 불륜 상대는 대개 직장동료라고 하는 내용을 읽고 나니, 점심 시간 회사 근처 풍경이 좀 색다르게 보였다.


- 하나 배워가기: 유언장 내용 중 유언에 의한 증여, 유언집행자 지정, 상속재산 분할 방법 지정 외에는 법적 효력이 없다. 자필 유서에는 날짜와 주소를 정확하게 적고 지장 또는 도장을 찍어라. (서명은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예금은 계좌번호까지, 부동산은 주소까지 정확하게 표기한다. 보관자는 상속인 중 한 명으로 해도 된다. 대체로 배우자나 친구인 경우가 많다. 자필 유서는 모든 내용을 자필로 써야 한다.


* 내가 빛나는 순간 (파울로 코엘료) - 잘난 코느님의 '잠언집'. 생각해볼 만한 좋은 글들이 좀 있다. 코엘료의 말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물론 별도의 이야기다. 솔직히 이런 책, 짜증난다. 코엘료의 유명세를 이용해서 그림책 하나 찍어낸 것인데, 수준이 어떤지 사례를 들어보면 이렇다. '용서하되, 잊지는 말라'는 글이 나오고 2쪽 뒤에 나오는 삽화에 'forgive and forget'이라고 쓰여 있다. 리디셀렉트, 실망이다. 오직 한국에서만 나온 책인데, 뭘 번역했다는 건지도 의심스럽고. 비슷한 형식의 읽을거리로는 이것보다 '아이 캔 후라이'가 나은 듯.


- 그래도 건질 지혜 몇 마디: 1. 여행을 쇼핑과 헷갈리지 말자. 고민되면 사지 마라. 2. 나를 바꿀 사람은 나밖에 없다. 그러니 더더욱 내가 다른 사람을 바꿀 수는 없다.


* 나는 스물일곱, 2등 항해사입니다 (김승주) -모비딕이나 프리윌리(Free Willy)를 들어본 적도 없는지, 자신이 고래에게 이름을 붙여준 유일한 인간이라 주장하고, "실망이야"라는 말을 항해사가 되어 처음 들어 큰 충격을 받았으며, 남들이 걸어가는 학업, 취직, 결혼은 이정표만 따라가면 되는 쉬운 길이지만 자신이 가는 길만은 험난하다고 믿는 정신병 환자의 이야기. 책 표지에 '환자의 수기'라고 표기를 해놔야 하는 것 아닐까? 별 이야기 거리가 없는 것 보니, 항해사 경험은 거의 없는 듯. 저자 소개를 건너 뛰고 책을 읽는다면, 대기업 중견간부로 지내다가 은퇴한 노인이 꼬장부리는 내용으로 보일 것이다. 올해의 나무학살자 후보, 기호 1.


* 나는 왜 영양제를 처방하는 의사가 되었나 (여에스더) - 근거는 빈약하지만, 영양제에 관한 궁금증을 시원하게 풀어낸 책. 영양제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듣고 스스로 정하는 수밖에 없다.


* 100세 수업 (EBS <100세 쇼크> 제작팀) - 88세 한정숙 씨는 매년 300권의 책을 읽는다. 흥국그룹 총수였던 채현국(83세) 씨는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청소하는 이사장으로 학교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 60세 넘어 카메라 공부를 시작한 정학규(71세) 할머니는 노인 전문 채널에서 카메라 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노인이 된다. 어떤 노년을 살지, 미리 계획해야겠다.


* 십팔사략 (증선지) - 어디서 많이 듣던 얘기 모음이다. 동진 시대나 5대 10국은 인지도가 낮아서 그런지 낯설다. 금나라의 부상을 경고한 고려라든가, 우리나라가 언급되는 부분에 눈이 간다. 송태조 조광윤에 대한 찬사가 좀 심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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