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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02. 2021

[책을 읽고] 이것이 인간인가 / 프리모 레비

홀로코스트를 직접 증언한 수많은 작가들 중에서도 프리모 레비는 독특한 존재다. 나치의 잔학상을 고발하는 작가는 무수히 많고, 그런 경험에서 귀중한 가르침을 발견하고 이를 체계화한 빅터 프랭클과 같은 사람도 있지만, 나치의 범죄가 독일 민족 전체의 범죄임을 분명히 밝히는 작가는 프리모 레비뿐이기 때문이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에서 레비는 한 독일 부부의 편지를 소개하고 있다. 그 부부는 나치의 범죄에 치를 떨고, 레비와 같은 홀로코스트 희생자들의 불행에 대해 죄책감을 표하지만, 그뿐이다. 무엇보다 그 부부는 자신들 역시 나치의 희생자이며, 나치의 공포정치에 저항하기 위해 목숨을 걸 수는 없었다고 항변한다. 레비는 이 뻔뻔한 부부에게 일침을 가한다.


도움을 주려는 시도들이 있었다는 것은 저도 알고 있고, 또 위험한 일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 살아온 저는 "전체주의 국가에서 반란을 일으킨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독일의 점령 후에도 이탈리아에서는 빈번했던, 그리고 히틀러의 독일에서는 너무나 드물게 행동으로 옮겨진, 억압받는 사람에 대해 연대감을 보여줄 훨씬 덜 위험한 천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221쪽)


문제의 핵심은 이 부부와 같은 사람들이 독일인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이들은 딱히 악인이 아니며, 자신들의 과거에 대해 어느 정도 반성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유대인을 지구상에서 몰아내겠다고 공약한 히틀러를 국가 지도자의 자리로 보낸 것 또한 바로 이들이다. 프리모 레비가 지적하듯, 히틀러는 선거 유세 과정에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이것이 인간인가>는 프리모 레비의 첫 번째 수기다. 이 책이 갑자기 유명해지는 바람에 그는 홀로코스트 수기를 여러 권 더 쓰게 된다. 그 결과 그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책임을 가장 예리하게 파헤진 역작,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를 쓰게 된다. 그러나 이 역작을 완성한 다음 해인 1987년,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


이방인에 대한 적개심은 인간 역사를 걸쳐 언제나 존재했다. 그러나 그것을 논리적으로 체계화시켜 말살 기계를 만든 것은 나치가 처음이었다.


수용소는 엄밀한 사유를 거쳐 논리적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 세상에 대한 인식의 산물이다. 이 인식이 존재하는 한 그 결과들은 우리를 위협한다. (12쪽)


그 인식의 '산물'은 사라졌다. 그러나 과연 그 '인식'도 사라졌을까? 코로나 사태와 함께 표면으로 드러난, 전 세계적인 외국인 혐오 현상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너무나 명쾌하게 보여준다. 프리모 레비의 지적은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불행하게도, 어쩌면 그것은 인류 역사 전체를 걸쳐 유효한 명제로 남을지도 모른다.


도입부를 제외하면 이 책의 내용은 전부 한 개인의 수기다. 그가 겪은 일들, 그리고 그 당시 어떤 생각을 했는지, 그뿐이다. 그들은 기차로 아우슈비츠까지 오는 나흘 동안 물을 마시지 못했다. 수용소에서 첫날, 잠을 자기 위해 누운 그들에게 들려오는 라디에이터의 물 떨어지는 소리는 고문, 아니 조롱이다. 매일 아침 기상 사이렌이 울리기 직전에 사람들은 잠에서 깬다. 기상 사이렌으로 갑자기 꿈에서 깨는 비참함을 피하기 위해 스스로 단련된 결과다. 나중에 먹기 위해 빵을 남겨두는 대신 그 자리에서 다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람들은 온갖 핑계와 이론을 만들어낸다. 이탈리아인들끼리 매주 일요일 저녁 수용소 한 귀퉁이에서 만나기로 했지만, 그들은 곧 그만두었다. 점점 줄어드는 숫자를 세는 것이 너무 괴로웠기 때문이다.


내게 가장 강렬하게 다가온 한 장면은 아래의 장면이다. 화학 공장에서 일하면 추위에서 해방될 수 있다. 바로 그 기회를 잡기 위해, 레비는 면접자에게 말한다.


"1941년 토리노에서 최우등으로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이렇게 말하는 동안 나는 그가 내 말을 믿지 않는 것 같은 확신이 든다. 솔직히 나 자신도 믿기지 않는다. 더럽고 상처투성이인 내 손, 진흙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포로복만 봐도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정말로 토리노에서 대학을 졸업한 그 사람이다. (257쪽)


레비는 단순히 대학을 졸업한 정도가 아니라 화학과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사람이다. 적성이든 효율이든, 그 어떤 합리적 기준을 들이댄다 하더라도 화학공장에서 일할 사람으로는 당연히 그를 뽑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아우슈비츠는 합리적 공간이 아니다. 오랫동안 인간적 존엄을 박탈당하고 살아온 레비 본인도 자신이 과거의 그 사람인지, 순간 자신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이다. 그는 그 자명한 사실을 자신에게 다시금 납득시켜야 한다.


이 책이 유명해지고 여러 언어로 번역 출판되면서, 레비는 독일인들을 포함한 많은 사람들에게 편지를 받았다. 자신들에게는 책임이 없다고, 자신들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편지를 그는 이때부터 수없이 받았다. 그래서 그는 담담하지만 분명한 어조로 말한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이 다양하게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독일인들은 알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중략) 아니, 더 정확히 말해 모른 척하고 싶었기 때문에 알지 못했다. (435쪽)


레비는 독일인들의 책임에 대해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나 그는 홀로코스트의 고통을 잊지 못해 그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냉소주의자로 치부되는 게 싫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하기가 조심스럽지만, 지금 수용소를 떠올리면 격렬하거나 고통스러운 감정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짧았지만 비극적이었던 포로 생활의 경험이 길고 복잡한 증언 작가로서의 경험과 합산되어, 그 결과는 분명 긍정적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나의 과거는 나를 더욱 풍요롭고 자신감 넘치게 해주었다. (485쪽)


나는 레비의 이 말을 믿는다. 하지만 그가 자살한 것 또한 사실이다. 그의 극단적 선택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중 하나는 분명 전후 독일인들의 뻔뻔함이었으리라고 나는 조심스럽게 추측한다. 프리모 레비의 아우슈비츠 경험은 길지 않았다. 그리나 그는 화학자로서보다 홀로코스트 증언 작가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로렌초와 같이 선한 사람들을 통해 인간의 선한 본성을 재확인할 수 있었고, 그랬기 때문에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랬던 그가, 끔찍했던 경험으로부터 멀어지고 세월의 지혜를 얻고 난 노년의 나이에 극단적 선택을 해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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