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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Feb 26. 2021

[책을 읽고] 싸우는 식물 / 이나가키 히데히로

식물은 싸우지 않는다. 공생한다.


식물은 균류와 싸운 끝에, 균류의 침입을 막는 것이 아닌 함께 사는 길을 택했다. 꽃가루를 노리는 곤충은 꽃가루의 운반책으로 쓰며 상리공생의 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또한 동물과의 싸움을 통해 씨방이 먹히는 피해를 막는 것이 아니라 밑씨를 지키던 씨방을 이용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232쪽)


이 책의 목차는 아래와 같다.


제1라운드 식물 대 식물

제2라운드 식물 대 환경

제3라운드 식물 대 병원균

제4라운드 식물 대 곤충

제5라운드 식물 대 동물

제6라운드 식물 대 인간


불안한 예감이 느껴진다면, 제대로 짚은 것이다. 식물은 서로 공생하고, 환경에 적응하며, 병원균, 곤충, 동물을 상대로 주고 받는 협력 관계를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인간만은 달랐다. 곤충과 초식동물을 방어하기 위해 만든 테오브로민과 캡사이신이 인간에게는 별미다. 질소고정이라는 엄청난 난제 역시 인간은 비료를 만들어 해결했다. 어떻게든 환경과 타협해 살아남으려는 잡초를 인간은 제초제로 죽인다. 그렇게 해서 인간이 가는 길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원래 모든 생물은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다. 인류는 숲의 나무를 베어내 생물의 터전을 빼앗고, 식물과의 싸움에서 승리했다. 결국 인류는 모든 생물을 몰살하고, 모든 식물을 멸종으로 내몰 것이다. 그러면 생명 탄생 이전의 지구환경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인류의 힘으로 식물이 바꿔놓은 지구환경을 이윽고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놓을 것이다. 다른 생물과 '공존'하기를 택한 식물이 옳은지, 다른 생물의 생존을 허락하지 않고 멸종으로 내모는 인류가 옳은지, 정답은 곧 나올 것이다. (235쪽)


시니컬한 저자의 농담을 뒤로 하고, 이제 식물이 생명체, 그리고 환경과 공존하는 모습 몇 가지를 살펴보자.


식물의 조직을 이루는 재료로서 질소는 대단히 귀중한 자원이다. 그러나 흙속에서 얻기는 쉽지 않으며, 경쟁이 치열하다. 반면, 공기의 80%는 질소다! 공기 중의 질소를 이용할 수 있다면, 그것은 그 식물에게 블루 오션이다. 그것을 해낸 것이 바로 콩과 식물이다. 콩과 식물에 기생하는 뿌리혹박테리아가 질소 고정이라는 엄청난 일을 해주는 것이다.


잠깐. 식물은 공생한다고 하지 않았던가? 뿌리혹박테리아에게 콩과 식물은 어떤 혜택을 주는 걸까?


놀랍게도 콩과 식물의 뿌리에서 발견되는 뿌리혹은 뿌리혹박테리아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식물 자신이 뿌리혹박테리아를 위해 준비한 것이다. (99쪽)


질소고정은 뿌리혹박테리아에게도 대단히 힘겨운 일이다. 그래서 뿌리혹박테리아는 평소에 질소고정을 하지 않고 검소하게 살아간다. 그러나 일단 콩과 식물의 뿌리혹에 입주하고 나면, 뿌리혹박테리아는 그야말로 열일을 한다. 이런 대변신에는 콩과 식물의 전략적 선택도 한몫한다. 식물은 질소고정 실적이 안 좋은 뿌리혹을 도태시키고, 질소가 충분히 확보되었다고 판단하면 더 이상의 뿌리혹을 만들지 않는다. 분명 공생이기는 하지만, 꽤나 냉혹한 계산이 깔려 있는 공생이다.


환경에 대응하는 식물의 전략은 크게 세 가지로, 각각 C, S, R이라 불린다. C 전략은 경쟁 전략으로, 강자가 택하는 전략이다. 다른 나무를 마음껏 이용하고 죽이기까지 하는 덩굴식물 같은 경우가 해당할 것이다. 약자는 S 또는 R의 전략을 선택한다. S는 스트레스 내성형 전략으로, 스트레스가 많은 환경을 선택하여 경쟁을 피하는 방식이다. 포식자를 피해 춥디추운 남극에서 살아가는 펭귄과 같은 경우로, 식물계에서는 선인장이나 고산 식물이 대표적이다. 선인장은 심지어 수분 증발이 심한 낮에는 기공을 닫아버린다. 수분을 빼앗길 확률이 적은 밤에 기공을 열어 이산화탄소를 비축하고, 낮에는 비축해둔 이산화탄소를 이용해 광합성을 한다. 수분 증발을 줄이기 위해 표면적이 적은 가시 모양의 잎을 만드는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애처로운 것으로는 R 전략이 더하다. R 전략은 교란 내성형(ruderal) 전략을 뜻한다. 척박한 환경을 선택하는 대신, 어떤 환경에든 적응하는 임기응변이 R 전략의 핵심이다. R 전략의 대표주자가 바로 잡초다. 예컨대 잡초의 하나인 질경이에게는 밟히는 것조차 기회가 된다. 비에 젖으면 씨에서 점액성 물질이 나와 끈적해지는데, 이것을 이용해 질경이 씨앗은 사람 신발이나 자동차 바퀴에 붙어 이동한다.


잡초는 인간이 사는 곳에서만 살 수 있다. 잡초의 전략은 다른 식물이 적응하지 못하는 변화무쌍한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길가나 빈번하게 잡초를 뽑아주는 밭 등이 바로 그런 환경이다.


선문답 같지만, 잡초를 뽑지 않으면 잡초는 없어지고, 잡초를 뽑으면 잡초가 생존할 수 있다. (223쪽)


인도의 환경운동가 반다나 시바에 따르면, 아마란스는 유전자변형 씨앗을 제외한 모든 식물을 말려죽이려고 만든 제초제에 내성을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아마란스는 몬산토를 비롯한 유전자변형 씨앗 거대기업들에게 씨를 말려야 할 '잡초'가 되었다. 과연 잡초는 인간이 있어야 비로소 존재하는 그런 존재인가 보다.


Amaranth 뮤비의 한 장면 (c) Nightwi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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