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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15. 2021

아이디어가 마음껏 헤엄치는
산호초의 바다를 만들어라

[책을 읽고]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오는가 / 스티븐 존슨



거창한 제목은 약속을 못 지키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책은 다르다. 이 책은 초지일관 단 하나의 주장을 펼친다.


"아이디어를 보호하기보다는 서로 연결하는 것이 더 좋다." (41쪽)


당연한 얘기다. 그러나 특허를 금전적 권리로 보호하는 현대 법체계 하에서, 이 금언은 실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최초의 웹페이지 생성 툴, '프론트페이지'(대단히 허접한 소프트웨어로 악명이 높다)를 개발해서 대박을 터뜨렸던 기업가, 찰스 퍼거슨은 시답잖은 아이디어를 말해놓고도 누가 훔쳐갈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를 직접 만났던 MBA 교수가 해준 얘기다.


그 기업가의 생각은 이랬을 것이다. '내가 무심코 입밖에 낸 말이 다른 사람에게서 돈 되는 아이디어로 바뀐다면, 나는 큰 손해를 보는 것이다.' 찰스 퍼거슨의 삶의 궤적을 살펴보면, 그가 얼마나 대수롭지 않은 사람인지는 쉽게 알 수 있다. 그러나 돈이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저런 생각을 그냥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디어를 널리 공유하라는 조언을 독자가 받아들이게 하려면, 저자는 대단히 설득력 있는 논리를 펼쳐야 할 것이다.


'다윈의 역설'이라는 것이 있다. 황량한 바다 한가운데 어떻게 산호초라는 오아시스가 존재하는지, 젊은 다윈은 이해할 수 없었다.


산호초는 지구 표면의 0.1% 정도를 차지하지만 우리에게 알려진 해양생물의 약 1/4 정도가 산호초에서 살고 있다. (15쪽)


그 비결은 산호초가 하나의 플랫폼이라는 데 있다. 산호초는 해양동물들에게 먹이를 제공하고, 영양분을 순환시키며, 일부 동물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다. 비버가 나무를 쓰러뜨려 습지를 만들고 나면, 온갖 동물들이 모여들어 습지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같은 방식으로, 인간의 도시가, 그리고 정보의 웹이 혁신의 플랫폼이 된다.


***



시장과 비시장, 그리고 개인과 네트워크를 서로 대립 개념으로 세우면 4개의 사분면이 만들어진다. 1사분면에 시장/개인, 2사분면에 시장/네트워크, 3사분면에 비시장/개인, 그리고 4사분면에 비시장/네트워크를 가져다 놓자. 1사분면의 대표적 사례는 에어컨을 거의 혼자 힘으로 발명한 윌리스 캐리어다. 2사분면에는 진공관을 발명한 드 포리스트와 여러 사람들의 네트워크가 있다. 3사분면에는 뉴턴이나 다 빈치가 위치한다. 4사분면의 대표적인 사례라면 인터넷을 들 수 있다. 인터넷은 시장이 아니라 미국 정부, 즉 미군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상기하자.


르네상스 시기 나타난 혁신과 발명은 대개 3사분면에 위치했다고 저자는 말한다. 아직 시장 경제라는 게 미약했던 시기에, 특출난 개인들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세상으로 가져온 것이다. 이후, 산업혁명까지의 시기는 2사분면이 지배한다. 구텐베르크와 같이 1사분면에서 나타난 예외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의 경우 아이디어는 시장을 통해 공유되면서 발전했다. 예컨대, 우리가 제임스 와트의 발명품이라 생각하는 증기기관을 발명한 사람은 10명도 넘는다.


그렇다면 현대의 혁신은 주로 어느 사분면에서 나타났을까? 시장 경제가 포효하는 2사분면이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하지만, 현대 혁신의 주인공은 4사분면이다. 이는 특허 등 아이디어 방어벽들이 만들어낸 비효율성 때문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혁신에 대한 금전적 보상은 분명 효율적인 유인책이지만, 그 제도 자체는 아이디어의 흐름을 막는다. 그래서 아이디어는 오히려 비시장 측면에서 자유롭게 번성한다. 21세기 플랫폼 경제의 총아들이 대개 돈이 안 되는 영역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굳이 지적할 필요도 없다.


광대한 바다의 대부분에서 생명체의 밀도는 매우 낮다. 반면, 산호초 인근 바다는 마치 도시와도 같다. 유기물을 순환시키는 시스템 덕분이다. 이 시스템은 경쟁의 산물이 아니라 공동작업의 산물이다. 우리는 도시에서 살며 경쟁하지만, 동시에 다양한 사람들과 아이디어에 자극받는다.


그러므로, 아이디어를 가두지 말고 흐르게 놔두어라. 그리고, 새로운 자극을 받는 생활 습관을 만들어라. 길게 설명하고 있지만, 저자는 책의 끝마무리에서 그 모든 조언을 한 단락으로 정리한다.


산책을 하라, 예감을 키워라, 모든 것을 메모하되 폴더는 엉망으로 놔두어라, 뜻밖의 발견을 포용하라, 생성 능력이 있는 실수를 하라, 여러 가지 취미 활동을 하라, 커피하우스를 비롯한 유동적 네트워크에 자주 가라, 링크를 따라가라,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아이디어 위에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게 하라, 빌리고, 재활용하고, 다시 만들어라, 복잡하게 뒤얽힌 바다를 만들어라. (37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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