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말 Mar 14. 2021

[간단 메모] 요즘 읽은 책들

2월 15일부터 3월 14일까지 읽은 책들이다. 이언 스튜어트의 <우주를 계산하다>가 강신주의 <철학 vs 철학>을 제치고 현재 시점에서 올해의 책 자리를 차지했다. 나의 최애 시인 실비아 플라쓰의 시집 <Ariel>을, 하루에 한 편씩 읽어서 끝까지 읽었다. 그리고 Lady Godiva를 그린 아주 재미있는 그림 하나를 알게 됐다.


*****


* 싸우는 식물 (이나가키 히데히로) - 식물은 싸우지 않는다. 공생한다. 이 사람도 나무에게 인생을 배우는 듯.


* 좋은 생명체로 산다는 것은 (사이 몽고메리) - 동물생태학자 사이 몽고메리의 (티끌보다도 가벼운) 경수필 모음. 감정 과잉에, 과장법 점철... 읽는 데 낭비한 시간이 아깝다.


* 오늘부터의 세계 (안희경) - 코로나로 인한 세계의 변화 가능성을 진보적 시각에서 풀어낸 책. 급조된 감이 있고 편향된 시각으로 쓰여진 책이지만, 분명 새겨들어야 할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 에스에프 에스프리 (셰릴 빈트) - 진지하고 제대로 된 SF 논문 모음집.


* 초예측 (오노 가즈모토) - 대담집. 코로나 이전에 쓰여진 책이라 화상회의 이런 거 아니고 직접 면담한 기록들이다. 유발 하라리와 재러드 다이아몬드가 나온다는 점이 강점. 닉 보스트롬은 굳이 찾아 읽을 필요를 못 느끼겠다. 이런 형식의 책이 그렇듯, 깊이는 매우 얕다. 그러나 이런 책에서도 언제나 배울 점이 있다는 것도 나는 잘 알고 있다.


* 초예측, 부의 미래 (마루야마 슌이치) - NHK 다큐 <욕망의 자본주의 2019>를 책으로 엮은 것. 유발 하라리, 스콧 갤러웨이, 장 티롤 등이 등장한다.


* 미술에게 말을 걸다 (이소영) - 글솜씨 정말.


이 책에서 건진 유일한 수확, Patrick Murphy의 <Lady Godiva>


* 교양으로 읽는 우리 몸 사전 (최현석) - 배울 게 끝이 없다.


* 의자의 배신 (바이바 크레건리드) - 의자가 위험하다는 한 마디를 위해 이렇게 두꺼운 책을 쓰다니.


* 인생학교: 일 (로먼 크르즈나릭) - 인생학교 시리즈 중 제일 아닌 듯.


* 우리는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가 (조지 월드) - 별 감흥 못 받았음.


- 한마디: 차 안의 인간을 사랑하기란 어렵지요. 그럴 때 인간은 다시 몸집 대비 두뇌 비율이 아주 낮아져버리니까요. 이때 인간은 중간 크기의 공룡과 비슷해져서 위험합니다. (118쪽) - '차 안의 인간'이란 존재를 몸집 대비 두뇌 비율로 설명하는 기막힌 한 수.


* 경제 시그널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 - 의도를 가지고 사실을 왜곡하는 게 부끄럽지 않은가?


* 가난 사파리 (대런 맥가비) - 가난 동물원이 아니라 사파리인 이유는 이 책이 글래스고(저자가 살았던 동네)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파리가 바로 그곳에 사는 동물들을 보여주는 것처럼. 이 책의 문제는 저자의 생각이 아주 잘못됐다는 데 있다. 가난의 책임이 사회나 구조가 아니라 개인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개인에 자기 자신을 포함시키며 자아비판을 한다 (빅맥세트를 앞에 두고). 그런 인식이 자아 발전에 밑거름이 될지는 몰라도, 정치적으로는 매우 해로운 것이다. 저자가 계속해서 지적하는 무력감과 함께 지배층이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그런 자책감이다. 게다가 설명만 들어도 열받는 글래스고 프로젝트라는 걸 한다는 '행위예술가' 따위에게 입바른 말 좀 했다고 사과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나, 이제 아들이 태어났으니 철 좀 들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어이없다. 저자에게 가장 감명 깊은 부분은 그가 그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를 미워하지 않는다는, 않았다는 점이랄까.


- 한마디: 좌파는 걱정스러우리만치 자기 인식이 부족하고 우리의 분노가 언제나 정당하다고 병적으로 믿고 있다. 이것이 사회정의의 더 큰 목적을 약화시키고 있다. (422쪽)


* 탁월한 아이디어는 어디서 오는가 (스티븐 존슨) - 웃기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진짜다.


* 더 커넥션 (에머런 메이어) - 진지하지만 노잼인 책.


* ETF 무작정 따라하기 (윤재수) - 별 내용이 없다.


*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 청소년 노동이 문제가 아니라, 열악한 노동 환경 그 자체가 문제다.


* 코로나 경제전쟁 (리처드 볼드윈 등) - 급조되었으나 꽤 잘 만들어진 책. 책이 나오고 거의 1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이 책에서 보여준 통찰이 얼마나 유효했는지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뉴노멀 교양수업 (필리프 비옹뒤리, 레미 노용) - 원제는 <21세기를 이해하기 위한 새로운 개념들>이다. 한국어판 제목을 참 싸 보이게 정했는데, 내용은 절대 그렇지 않다. 교양수업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제대로 즐기려면 상당한 수준의 사회과학 내공이 필요한 책이다. (물론 나는 그런 내공이 없다.)


* 바이러스 쇼크 (최강석) - 메르스 경험을 토대로 2016년에 나온 책이다. 이런 책이 있었는데 그동안 우린 도대체 뭘 한 건가?


* 창조하는 뇌 (데이비드 이글먼) - 이글먼의 <브레인>과 너무 다르다. 그냥 창의성에 관한 뻔한 이야기.


- 한마디: "단 한 가지 이론을 갖고 있는 사람은 위험하다. 그런 사람은 목숨을 걸고 그 이론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프랜시스 크릭의 명언. 함께 DNA 나선 구조 밝혔는데 인성이 극과 극인 왓슨과 크릭. 크릭은 일단 많은 아이디어를 확보한 뒤 그중 대부분을 포기하는 것이 현명한 접근 방식이라 덧붙였다.)


한 가지 실천해보기: SF 소설에 나온 제품 디자인해보기.


* 우주를 계산하다 (이언 스튜어트) - 태양계 이야기를 할 때만 해도 식상한 전개였는데, 외계 생명과 블랙홀을 다루는 시점에서 갑자기 완전히 새로운 책으로 변신한다. 주류 시각을 완전히 뒤집는 엄청난 명저. 올해의 책 강력 후보다.

* Ariel (Sylvia Plath) - 선집이 아닌 형태의 시집을 끝까지 읽은 건 처음인 듯. 내가 제일 좋아하는 시인인 Sylvia Plath의 시집이다. 타이틀 시인 Ariel도 그렇고, 실비아의 가장 유명한 시들이 나온다. 시집인 만큼 모든 시가 좋지는 않지만, 실비아의 강렬한 이미지를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겨우 48쪽의 시집이지만, 실비아의 시가 얼마나 읽기 어려운지는... (E. E. Cummings도 그렇고, Wallace Stephens도 그렇고, 나는 왜...)

* 헬스의 정석 (수피) - 분명히 많이 배웠지만, 쓸데없는 내용이 너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개개적인 운동을 어떻게 하는지, 예컨대 스쿼트는 어떻게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루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집어라.


* 철학의 역사 (나이절 워버턴) - 너무 막 던진다 싶을 정도로 엄청 일반화시킨 서양철학사 개론. 그래도 철학은 재미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겨우 40여명에 불과한 철학자들의 선택이다. 칸트는 유일하게 2개의 장을 차지하고 있는데, 하이데거, 루크레티우스, 데모크리토스는 보이지 않는다. 알프레드 줄스 에이어가 철학사에 포함되는 책은 처음 본다. (참고로 알프레드 줄스 에이어는 내가 철학을 처음 접할 당시 읽은 학자라 내게는 각별한 존재다.) 내용을 심하게 단순화시킨 것도 문제가 되는데, 예컨대 노년기 비트겐슈타인이 논박하는 대상은 그 누구보다 청년기 비트겐슈타인이라는 사실을 말하지 않는 것은 (특히 초심자에게) 대단히 부실한 설명 방법이다.


* 도시의 발견 (정석) - 중언부언, 말도 안 되는 비유,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을 자서전... 글을 정말 성의없이 썼다. 본인도 말하듯 도시학이라는 게 별 게 아니라는 걸 증명하려고 쓴 듯하다.


* 가난한 사람들 (도스토예프스키) - 역시 도스토예프스키. 단숨에 읽었다.


* 코끼리를 쏘다 (조지 오웰) - 위대한 인간 조지 오웰의 산문집. 특히 기숙 학교 시절을 다룬 '너무나 즐겁던 시절'(제목은 당연히 반어법이다)은 비슷한 소재를 다룬 빌덩스로망인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나 <데미안>(이건 빌덩스로망에서 끝나는 작품은 아니지만)보다도 좋은 듯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청소년 노동이 문제가 아니라, 위험한 노동 환경이 문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