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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말 Mar 18. 2021

'가난'이라는 구경거리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한 두 사람의 편지로 이루어져 있다. 하급 관리인 마까르는 이웃에 사는 가난한 처녀 바르바라를 돕기 위해 씀씀이를 줄여 나간다. 1800년대 중반, 지독할 정도로 후진적이었던 제정 러시아에도 자선 단체는 존재했다.


사람들이 그를 무슨 자선 단체엔가 등록시켰는데 거기서 나오는 돈 한 푼 한 푼에 대해서 예멜랴가 어떻게 쓰는지 공식적인 검열 같은 것을 하더래요. 그들은 자기가 돈을 거저 주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을 구경한 대가를 치른 것뿐이에요. (<가난한 사람들>, 154쪽)


150년도 더 지난 일인데, 너무나 생생하다. 바로 지금도 이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1세기, 영국 글래스고라는 전혀 다른 시공간에 사는 대런 맥가비가 <가난 사파리>에서 하는 말을 들어보자.


영국 복지제도를 보라. 사람들이 일자리를 찾도록 장려하기 위해 굴욕감을 이용한다. (<가난 사파리>, 211쪽)


책 제목부터가 <가난 사파리>다. '농노'라는 것이 존재하던 시대와 달라진 것이 없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최소한의 생활비는 '구경'의 대가다. 심지어 대런 맥가비는 자신이 이런 책을 쓰게 된 것조차 그런 '구경거리'의 일환이라고 말한다.


적어도 부분적으로 비참한 회고담이라는 베일로 감싸지 않았다면, 나 같은 사람이 이런 책을 쓸 기회를 얻을 방법은 없다. (<가난 사파리>, 199쪽)


김희경은 <이상한 정상가족>에서 말한다. 적극적인 공감은 훌륭한 것이지만, 이루기 어려운 것이다. 따라서 스티븐 핑커의 조언대로, 우선은 남에게 해를 끼치지 말아야 한다는 원칙부터 실천해야 한다.


핑커가 '네 이웃과 적을 사랑하라'보다 더 낫다고 추천한 이상은 다음과 같다. "네 이웃과 적을 죽이지 마라. 설령 그들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이상한 정상가족>, 296쪽)


도스토예프스키의 마까르, 그리고 영국 글래스고 빈민가의 래퍼 대런 맥가비도 바로 그것을 바랄 것이다. 적극적인 도움보다도 훌륭한 것은, 저급한 동물을 쳐다보는 것과 같은 잔인한 시선을 거두는 것이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보다 단지 운이 나빴던 사람들을, 자선이란 미명 하에 '구경거리'로 전락시키는 행위는 단순한 악행일 뿐이다. 그것이 제도라는 이름으로 행해진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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